2008년 5월 중순쯤의 일이다. 데스크(담당 부장)로부터 필리핀 현장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쌀이 부족해 소요사태가 벌어졌으니 바로 현장에 가보라는 지시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사무소 등에 취재 협조를 구한 뒤 각종 자료를 가방에 쑤셔넣은 채 부랴부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가운데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필리핀뿐이었다. 쌀시장 개방 여부가 한국 농업의 주된 이슈였던 만큼 필리핀의 쌀산업을 다룬 자료는 넘쳐났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훑어본 자료는, 막상 취재할 상황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1년에 4모작이 가능한 쌀 수출국’ ‘1국제미작연구소(IRRI)가 들어서면서 아시아 농업혁명을 이끈 나라’ ‘지난해(2007년) 경제성장률이 30년 만에 최고치인 7.3%를 기록한 나라’…. 이런 나라가 식량난을 겪는다는 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튿날 둘러본 현지 상황은 참담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식량배급소에는 쌀을 사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고, 정부 양곡창고에는 무장경비원이 약탈을 대비하고 있었다. ‘쌀을 달라’는 시위는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졌다. 필리핀의 식량 부족 사태는 두가지 이유에서 발생했다. 첫번째는 농지와 투자 부족이다. 1990년대 들어 국제 쌀값이 1t당 200달러(장립종 기준) 선에서 안정세를 보이자 필리핀 정부는 농업 분야 투자를 절반으로 줄였다. ‘부족한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는 인식 아래 농업을 등한시하고 산업화에만 몰두한 것이다. 국제 비교우위론에 빠진 필리핀 정부는 쌀 수입을 택했고, 우량농지는 골프장과 휴양시설·공장으로 속속 탈바꿈했다. 농민들은 도시로 떠나거나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관광가이드로 나섰고, 그럴수록 농지는 더욱 황폐화됐다. 두번째는 국제 쌀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국제 곡물 거래량은 전체 생산량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쌀시장은 교역량 비중이 4∼5% 수준인 ‘얇은 시장(Thin Market)’이다. 얇은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조금만 변해도 가격이 요동친다. 2006년 하반기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이 줄자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여기에 바이오연료용 곡물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전세계가 2년 동안 애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국제시장에서 거래량이 미미한 쌀은 값이 두배 넘게 올랐고, 그나마 팔겠다는 나라도 없었다. 당시 필리핀은 1t당 1300달러를 주고 겨우 부족한 쌀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그플레이션 직전의 6배 값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식량은 여전히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2019년 기준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겨우 21%다. 그나마 쌀을 제외한 자급률은 3.4%에 그친다. 필요 곡물의 80%를 수입하다보니 식탁물가 상승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신문에 자주 실린다. 그렇지만 빵·라면·과자의 주원료인 밀 자급률이 0.7%밖에 안된다는, 먹거리의 본질적 문제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만약 밀 수출국들이 금수조치를 취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벼 수확을 앞두고 대형 태풍이 전국을 휩쓸면 주식인 쌀 공급에 문제가 없을까? 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 4∼8월 5개월 연속 120포인트를 웃돌았다. 이 지수가 120포인트를 넘긴 건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유엔(UN·국제연합)은 기후 불안정으로 국제 식량시장이 공급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감염병 확산에 따른 수송·분배 제한은 곡물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제2의 애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식량안보에는 문제가 없는지 철저한 점검이 필요한 때다. 김상영 (정경부장) 입력 : 2021-09-13 00:00 https://m.nongmin.com/opinion/OPP/SNE/IND/344550/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