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다시 온 지 얼마 안되서 어느 작은 모임에서 한인들을 알게됐어요. 나보다 몇살 많은 아줌마가 작은 분식점을 했는데, 내가 봐도 창피할 정도로 분식집 공간이 작고 허접했어요. 간판은 차라리 없는게 나을 정도로 대충 만들어서 밖에다 걸어 놓고, 돈도 없어서 어느 지인한테 돈 빌려서 식기들이랑 이것저것 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후지고 좁은 공간에서 일할 필리핀 직원을 구하더군요. 손님도 별로 없던데... 어느날 20대 초반의 필리핀 여자가 이력서 들고와서 인터뷰한 후에 분식집에서 일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그 필리핀 여자가 일 그만뒀다면서, 분식집 아줌마는 "필리핀 애들 뻔하지.. " 하면서 그 필리핀 여자를 안좋게 말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금방 일 그만 둔 필리핀 여자가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분식집 공간이 워낙에 좁고 답답해서 나 같아도 오래 못 있겠더라고요. 같이 대화 나눌 필리핀 사람도 없고, 혼자서 일하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을 꺼에요. 그런데 어느날 이 아줌마가 이사 간다고 몇몇 한인들이 도와주러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따라 갔는데 이사를 밤에 하대요. 이삿짐 다같이 옮기고 나서 집에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세상에나.. 그 아줌마가 몇달치 집세 안 내고 집주인 모르게 밤에 이사 한거였어요. 돈 없다고요. 어떤 한국인은 그 아줌마한테, 집주인한테 돈 없다고 끝까지 버텨서 집세 내지 말라고 가르치더군요. 나는 잠시 '이게 뭐하는 건가...' 혼란스러웠어요. 졸지에 나는 집세 안내고 야반도주하는 범죄(?) 를 도와준 사람이 되버렸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마인드로 필리핀에 사는 한국인들도 있다는 걸 알게됐고 저는 그 모임에서 나왔어요. 집세 안 내고 야반도주 하는 것 범죄에 속하나요? 이런 경우 모르고 도와준 사람은 처벌은 안 받지요? 지금도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참 어이없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