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삶을 산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느끼나 보다. 받기보다는 나눌 때 더 행복한 듯하고, 나눠줄 때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우게 된다는 경험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건 없건 자신의 일부를 나눠 사회복지시설 등에 후원금을 보내거나, 시간을 내어 직접 방문하여 자원봉사 활동이나 재능 기부를 하는 분을 종종 만나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움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고,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접하면 마음이 따듯해지고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수도사제로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교육을 통해 여러 종류의 현장 체험을 하면서 주변의 힘없고 고생하는 소외된 이들을 만나며 사회의 어두운 현실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됐고, 이런 체험에 대해 성찰하고 함께 대화하는 기회를 자주 가졌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인식과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갖기 위함이었다. 오랜 기간 양로원에서 도우미로 잡일을 하며 노인들과 대화하고 필요한 도움을 드리면서 마음속 기쁨과 슬픔 등을 나누기도 했다. 행려자 집단수용시설인 시립갱생원을 주 1회, 2년 정도 방문하며 그곳에서 기막힌 사연으로 부랑자가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붙잡혀(?) 이 시설에 갇혀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 채 하염없이 살아가는 이들과 아슬아슬한 관계 속에서 일하며 사회의 적나라한 어둠을 엿볼 수 있던 기회도 많았다. 물론 사제가 된 이후였지만, 필리핀의 극빈촌인 어느 지역에 들어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 위에 판자를 엮어 만든 극빈자 집에서 1주일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밤에 잘 때 내 몸 위로 쥐가 기어 다녀도 어쩔 수 없었던 당시 나에게는 아찔한 경험도 있다. 어찌 보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1주일이었음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삶을 일생 살겠다고 마음먹기는 무척이나 힘들겠다. '한시적으로' '교육의 하나로' 일정 기간 그렇게 살아보는 '경험'을 했을 뿐이다. 이런 과정은 내가 살아온 삶에서 '나누는 삶'이라는 의식을 늘 지니게 한 동기가 됐다. 이런 교육을 받아서인지 유학 시절에도, 대학에서 근무하면서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인근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어느 봉사 모임을 통해서든, 아니면 어떤 인연으로 연결됐든 양로원이나 아동복지원 혹은 장애인 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그 시설에 사는 분들과 서너 시간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다 오곤 한다. 이는 이왕에 투신한 수도사제의 소명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픈 열망 때문만이 아니라, 그저 검소한 가난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픈 열망으로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고생하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지' 않고, 내 삶의 자리에서 조금의 시간과 정성, 물질적 여유를 나누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기에 빈민 구제 사업이나 복지 사업에 온전히 투신할 용기도 없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 수도회로부터 받은 사명과 직무가 따로 있기에 시간을 조금 할애해 주변의 힘없고 약한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는 작은 노력일 뿐이다. 젊은 세대 학생들도 돌아보면 우리 주변의 그늘진 곳에서 고생하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가난 체험'이나 '봉사활동 체험' 등을 통해 알게 됐으면 좋겠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서 고생하는 이들을 잊지 않고, 자신의 정성과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여유와 겸손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지니고 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992236?sid=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