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50대 후반의 일본 아줌마가 한 분 산다.
 
남편은 필리피노인데 지금 일본 가서 일하는 중이고, 아줌마는 개 세 마리를 킷츠라 부르며 혼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집을 나서면 동네 피노이들은 무서워서 슬슬 고개를 돌린다.
 
이유인 즉슨, 이 아줌마한테 한번씩 치받쳤거나 어떤 피노이가 처절하게 치받쳤다는 걸 소문으로 들었기때문이다.
 
동네에서는 주로 사소한 걸로 싸운다. 쓰레기통에 신경을 쓰지않아 냄새나게 만든다든가, 시끄럽게 군다든가, 아줌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다 걸렸다든가.
 
한 가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일이다.
 
이 아줌마 바로 옆집에 사는 피노이 하나가  대문밖에서 그집을 들여다보며 개똥좀 잘 치우라고 안좋은 소리를 했다.  비온 다음날이라서 냄새가 좀 났나보다.
 
물론 이 일본 아줌마한테 그러지는 못하고, 그집에 와서 종종 일하는 피노이에게 그랬다. 
 
외출했다 돌아온 이 아줌마는 이 얘기를 듣자 곧장 불만을 제기한 이웃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냄새가 좀 났나봅니다.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집에 할 얘기가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주세요. 이집 주인은 나고, 또 내 키츠(개)들인데 왜 다른 사람한테 얘기합니까?"  
 
개똥냄새 난다고 투덜거렸던 피노이, 그 담부터 이 일본 아줌마가 보이면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뭐, 그런 걸 갖고 이 아줌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아줌마 과거시절의 화려한 전적을 안다면 피노이들,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표적인 전투는 이민국에서 피노이가 뒷돈 5000페소 달라며 여권 연장 안해주고 슬슬 약을 올리면서 벌어졌는
 
데, 그때 이 아줌마는 마닐라 이민국까지 찾아가고 연결연결로 방송국 기자까지 동원해서 이민국을 쑥밭으로 만
 
들어놓았다. 돈달라고 했던 피노이는 물론 다른 직원들까지 싹 물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좀 꺼림직한 일은 그 방송국 기자가 얼마 후에 총맞아 죽었다는 사실이다. 범인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일본 아줌마는 총맞아 죽은 그 기자를 두고 이렇게 추측한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이렇게 피노이들과 전쟁만 벌이느냐, 그렇지는 않다.
 
큰 수해가 나서 강변 빈민가에 대충 집짓고 살던 피노이들 열댓 명이 죽어나가고 가재도구 몽땅 쓸려나갔을 때  
 
이 아줌마 온 동네 돌아다니며 혼자 모금활동 벌였다.
 
우리집에도 찾아왔는데 사실 피노이 도와봤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일 한다고 하는데 나몰라라 할 수 없어서 천 페소 주었다.
 
그러자 이 아줌마 고맙다고 나에게 90도로 인사하고 또 인사한다. 
 
자기자신 위해서 쓸 돈도  아닌데 이렇게 깎듯이 인사를 하는 통에 나도 덩달아  좋은 일 하신다고 인사를 굽실굽실.
 
이 아줌마 그렇게 반나절 동네를 돌았는데 안타깝게도 걷은 성금은 보잘 것 없었다.
 
내가 준 돈을 제외하면 헌옷가지 몇 개와 100페소 남짓이 전부란다. 가장 많이 낸 집이 20페소.
 
그래도 꽤 번듯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빌리지인데,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하다 싶다.
 
어쨌든 그 아줌마, 한 포대에 1200페손가 1500페손가 하는 쌀을 다섯 포대를 사서 다음 날 수해현장으로  출동했다. 뭐 그 쌀은 전부 다 이 아줌마 돈으로 산 거라고 해도 되겠다.
 
이 아줌마 그곳에 출동할 때 은근히 나도 같이 가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난 할 일도 있고 또 남 돕는데 그렇게까지 열정적이지는 못한 편이라 조심해 잘 다녀오라는 말만 했다.
 
현장에 도착한 아줌마, 쌀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호통치면서 줄을 세우고 한 바가지씩 쌀을 나눠주고 돌아왔다.
 
바랑가이나 시청에 그냥 전달만 해주고 와도 될텐데 굳이...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이 아줌마 단호하게 아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한 번 그렇게 전달했더니, 받은 사람 아무도 없고 쌀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여튼 거기 다녀와서 쌀보고 달려드는 피노이들 줄 세우느라 목이 아파 죽겠다고 얘기하는 그 아줌마...
 
참 대단하다.
 
장수로 치자면 용맹함과 자상함을 두루 갖춘 명장이라고나 할까?
 
거기다가 그로부터 며칠 후, 좋은 일 했다고 시장이 연회에 초대한 것을 단 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쓸 돈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 도우라고.
 
이러니 누군들 그 앞에서 감히 까불 수 있겠는가?
 
슬그머니 나까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일본에서 일하는 그집 남편은 아내에게 종종 사정조로 말한다고 한다.
 
제발 조용히 남들처럼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 안되겠냐고.
 
한때는 다 뜯어고치겠다고 바랑가인지, 시장인지 출마한다고 선언해서 남편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고 하니
 
그 심정 알만도 하다.(필리핀에서는 설령 귀화했을지라도 외국인은 무조건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줌마, 안 그럴 것 같지만 남편 말은 잘 듣는다.
 
때때로 우리집에 놀러와서 자신을 분노케한 피노이 얘기를 하며 불끈 전투태세를 갖추는듯 하다가도 
 
에휴, 남편이 남들처럼 살라고 했으니 그렇게 해야지요 하면서 호호호 웃는다.
 
그럴 때 보면 50대가 아니라 20대 새색시같다.
 
하여튼 이 일본 아줌마, 정말 천하무적이다.
 
여기에 총 차고 카우보이 모자 척 비껴 쓴다면 적어도 반경 10km 모든 동네는 고요히 Peace에 잠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