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준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102125185 

 

필리핀 타귁시(Taguig City)의 빈민가. 열린의사회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6·25 참전국 순회 의료봉사 현장은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필리핀 특유의 높은 습도 때문이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허벅지와 종아리에서 흘러내린 땀은 연신 신발 속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열린의사회 소속 봉사단원들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백승재 관동대 의대 교수(37)는 의료용 장갑을 끼고 여자아이의 머리에 두 엄지를 가져다 댔다. 순식간에 피고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이는 눈물이 가득 번진 눈을 감아버렸다. 백 교수는농가진이라고 불리는 세균성 감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6·25 때나 나타났다는 피부병입니다. 위생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손을 대 감염되는 거죠.”

 

지난 4일 필리핀 타귁시의 6·25 참전국 의료봉사 현장에서 백승재 관동대 의대 교수(오른쪽)가 환자 상태를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아이의 머리뿐 아니라 등과 가슴 등 온몸에 농가진이 번져 있었다. 백 교수는 아이를 달래가며 가슴에 청진기를 댔다.

 

백 교수가 의료봉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해 겨울부터다. 사고로 어깨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휴직했다. 갑갑하고 불안한 마음에 작은 병원의 단순 업무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찾았다. 그러다 열린의사회 의료봉사를 안내하는 글을 보게 됐다. 연세대 의대 시절 1년간 휴학하면서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도 한 그였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일이었다.

 

이후 네 번이나 해외봉사를 떠나 에티오피아와 인도 등에 다녀왔다. 소속 병원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연월차 휴가를 이용하고, 자기 돈으로 항공권을 샀다.

 

백 교수는내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내 자신이 무슨 사명을 띠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최첨단 의료장비가 속속 등장하면서 손기술의 몫은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환자의 마음과 가족의 지지, 경제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이 의사의 몫이다. 그 바탕은 인문학인데, 난 싼 값에 그 공부를 하는 셈이라고 했다.

 

백 교수 옆에 있던 서삼석 치과 원장(49)은 마취제 주사바늘을 환자의 입속에 찔러 넣더니 순식간에 치아 두 개를 뽑아냈다. 이렇게 수백명의 입속에서 치아가 쑥쑥 빠져나왔다.

 

“치아가 부서지면서 뽑히면 다시 못 씁니다. 하지만 이렇게 통으로 나오는 것들은 치료하면 살릴 수 있어요. 그런데 다시 치료받을 가능성이 없으니 빼달라고 합니다. 아이들 이를 뽑을 때는 정말 안타깝죠.”

 

서 원장은 경남 진주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의료봉사를 위해 이틀간 병원 문을 닫았다. 함께 봉사온 수련의와 공중보건의들은개업의가 병원 문을 닫고 오기는 쉽지 않다. 하루만 닫아도 환자가 줄어든다며 서 원장을대단하다고 했다.

 

서 원장은 올해로 의사 10년차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경남 남해 등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8년 만에 교직을 떠나 2년간 도배일을 했다. 그러다 치과대학에 편입해 40세에 늦깎이 의사가 되었다.

 

그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절박한 상황에서였다. 돈이 없어 고용의사부터 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으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월급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일을 배우면서도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에 나환자촌 진료를 시작했다.

 

안상현 서울아산병원 수련의(29)도 봉사에 함께했다. 그는 연구에 뜻을 두고 임상의 대신 약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는 아내와 함께 의료 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왜 한국을 놔두고 해외로 봉사를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한국에서는 쉽게 치료되는 질환이 필리핀 등에서는 치명적 질병이 되고 있다이들에게 기본적 의료만 주어지면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