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인 B(47)씨는 지난 3일 오후 8시쯤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반지하 쪽방에서 숨졌다. 방세를 받으러 왔던 집주인 이모(여·5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B씨는 한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일하면서 필리핀의 아내와 아이를 부양해 온 '기러기 아빠'였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2004년 직업교육 비자로 입국해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서울 도봉구의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처지가 같은 필리핀 여성 A씨를 만나 2005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아내 A씨는 "필리핀으로 돌아가서 살자"고 했지만, B씨는 "나는 한국에서 돈을 벌겠다"며 혼자 남았다.

부인과 아들이 필리핀으로 돌아간 뒤 B씨는 불법 체류자 신세를 이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매달 2일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보냈다.

외롭고 힘든 생활, 당뇨와 고혈압이 그를 쓰러지게 했다. B씨의 지갑에는 필리핀으로 송금하려고 봉투에 담아둔 현금 100만원이 남아있었다.

B씨의 시신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병원에 안치됐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