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 눈을 잘 파는 편입니다.

좀 색다른 것이다 싶으면 벌써 눈이 돌아가는-

그러자니 이쁜 여자만 지나가도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 갑니다.

하물며 짧은 치마라면야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마눌도 처음에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환자 아니냐’며 흉을 봤습니다.

그런 인간이 요즘은 ‘꽃미남’만 보면 자기가 더 눈을 팝니다.

이 병은 전염성도 강한 가 봅니다.

한국에서 이 병을 오래 앓은 탓인지- 필리핀서 재발해버렸습니다.

 

어제 밤이었습니다.

산책 길에 송아지 만한 개를 끌고 다니는 피노이들을 만났습니다.

더럭 겁도 났지만 호기심에 한 눈을 팔며 걷다가

그만 타이어를 갈라 만들어 놓은 과속방지턱에 걸려 넘어 지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크게 넘어 졌는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개’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것도 모자라 제대로 일어도 못나 네발로 기었습니다.

개가 봐도 웃음이 날만큼 말입니다. 헌데 피노이가 볼 때는 어떨가 싶어졌습니다.

순간 ‘한국인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와타시노 오케이- 스미마생 사요나라’

말도 안 되는 일본말 흉내를 낸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순발력?입니다.

내가 썩은 고목 넘어가듯 하자 더 놀란 것은 옆에 있던 피노이들입니다.

멀쩡하게 걸어 가던 외국인이 자기들 치맛단 아래서 코를 박고 쓰러져 버렸으니

그녀들이 더 놀랄만 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들에게 괜찮다고 손짓을 해 주고는

절룩거리며 집에 와 상처를 보니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무릎은 뼈가 보일 만큼 까져 버렸고 팔꿈치와 어깨 종아리 등등-

제법 견적?이 나왔습니다.

아우들이 무슨 일이냐고 깜짝 놀라 약을 사러 나가고- 한참을 더 야단법석을 떤 뒤에야

난리가 대충 수습이 됐습니다. 여유를 조금 찾게 되자 아우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야들아. 내가 피노이들 앞에서 넘어져 망신을 당하긴 했어도 나가 일본사람 흉내 내서

한국인 자존심은 지켜냈다. 내 순발력 대단하지-

자다가 봉창 뚫는 내 말에 아우들이 기가 막힌지 한 마디 합니다.

 

‘그려 순발력 좋은 이가 그렇게 대책없이 나가 떨어지남-. 이구 남사스러워서 원’

마누라한테는 다쳤다고 하면 분명 ‘또 한 눈 팔다 그랬지’ 할 것 같아 전화도 못합니다.

결국 한국인 자존심은 내가 다 무너뜨리는 것 같습니다만-.

 

그나저나 한 눈 잘 파는 이 병은 언제쯤이나 치료가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