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필리핀 일터로 합류한 막내 아우.

한국서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게 하고 민다나오 일터로 불러 들였는데-

가지고 온 짐 중에는 유난스런 것들이 많았습니다.

 

런닝 머신에 자전거식 운동기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고 노래방 기계와 발 마사지 등은 왜 가져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작동하지 못하니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짐 중에는 밥솥(다림솥???)도 있었는데 이게 음식을 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리는 그야말로 ‘만만디’ 솥입니다.

은근한 열기로 익히면 영양이 파손되지 않는다나 어쩐다나-

 

덕분에 그 솥으로 지은 밥을 먹으려면 전날 밤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겨우 아침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태생이 충청도라서 기다리는 것은 잘 하는 편인데도 그 솥밥 얻어 먹으려면

졸리비 햄버거라도 몇 개 먹고 기다려야 할 참입니다.

이것도 밥 한 번 해 먹고 선반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사무실 화장실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새로 온 아우가 검은 모(毛)로 된 칫솔로 이를 닦고 있자 외사촌 아우가 소릴 지른 겁니다.

‘작은 형 그건 큰 형이 머리염색 때 쓰는 칫솔여-’

입에 허연 버큼을 잔뜩 문 아우는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고.

 

가만보니 얼마 전 사무실 아가씨를 시켜 내 새치 머리카락을 염색케 했는데

그 때 아우가 본 기억으로 지레짐작해 소리를 질러 댔나 봅니다.

-이거 숯가루로 물들인 솔이라 원래부터 검은디.

그제서야 염색할 때 쓰는 칫솔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외사촌 아우.

뻘쭘했던지- 그예 뒷소리가 나옵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어떡하지. 여직원한테 화장실 청소할 때 그 칫솔 쓰라고 혔는디’

나도 가만히 있기가 그래서 코러스를 넣었습니다.

‘그걸로 변기를 닦으라면 어떡허니. 슬리퍼 밑바닥이라면 모를까’

이 소리가 제대로 들렸는지 갑자기 화장실서 ‘웩- 웩-’ 소리가 연발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상한 물건 좀 가져 오지마라. 니가 한국서 가져온 것들이

시방 다 이상헌 것들잉께 그렇지. 검은 칫솔모도 별나잖어’

 

이날 이 후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저께부터는 화장실에 있던

검은 칫솔모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막내 아우가 슬그머니 가져다 버린 것 같습니다.

-그려. 잘 혔어. 우린 평범 헌 게 좋다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