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후배 얘기입니다.

이것 때문에 저도 어젯밤에 경찰서/바랑가이를 돌아다니며 밤을 지새웠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네요.

경험 많으신 고수분들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자세하게 사건 순서대로 쓰려다보니 글이 깁니다. 양해 말씀 먼저 드립니다)

 

우선, 토요일 밤 케존에 있는 띠목서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후배 2명이 모처럼 기분전환으로 띠목에서 가볍게 술 한 잔 할 요량으로

서클 근처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자정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아직 어디를 들어갈지 정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왠만한 술집이나 바 등에서 나오는 사람,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 등으로

길거리에도 사람이 꽤 있었죠. 토요일 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13살 정도의 남자 아이들 세 명이 꽃 목걸이 같은 것 있죠? 그것을 들고 코앞까지 와서

사달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거절을 할까, 어떨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앞호주머니에서 뭔가가 슥~빠져나간 것을 느꼈답니다.

그 순간 이 후배가 당황해서 뭐지? 라고 생각하고 약 10여초 정도 멍하게 있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뒤 쪽에서 필리핀 커플이 그 아이들에게

'너네가 저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가져가는 것을 봤다' 라며 목덜미를 잡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을 타서 바로 옆 술집의 가드도 도와서

처음에 다가왔던 3인조 어린이소매치기단을 손 안에 넣었죠.

 

그리고 간단한 몸수색을 했습니다. 왜, 공항 같은데서 몸 검색을 할 때 하듯이

있을만한 곳을 옷 밖에서 두드려보고 하듯이 찾아봤는데 문제는 핸드폰이 이 세명 모두에게 없더랍니다.

(도로변이라 옷을 벗길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아직까지도 아쉬워 하는 부분이

속옷 안까지 찾아볼 생각을 못했다는 점입니다.) 

 

여기까지도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아이폰이 없어졌다는 상황에 더무 당황해서

이 아이들이 분명 가져간 것 같은데  핸드폰이 안 나오니 100퍼센트 확신도 못하겠고

그 짧은 순간에 어딘가로 흘려서 못찾게 한 것 아닌가, 다른 누군가였나 살짝 고민하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갑자기 아이들 셋 모두가 자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밀쳐내고 뛰더랍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뛰어나가는 방향이 2차선 도로에 차들이 엄청 질주하고 있는 상황이라

위험해서 다른 사람들은 같이 달려 잡아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고

아이폰을 잃어버린 후배 한 명만이 정신없이 쫓아가 봤지만 거리를 좁혔다고 생각하는 찰나

넘어지는 바람에 놓쳤습니다.

 

다시 사건 장소로 돌아오니 도망가다가 바로 가드에게 잡힌 한 아이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소란을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바로 옆 바랑가이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요

(south triangle barangay 입니다)

그 잡은 아이와 후배들이 차를 타고 우선 바랑가이까지 갔습니다.

 

그리고는 간단한 조서를 작성합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후배 이름과 그 아이 이름,

사건 장소와 시간, 그리고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경위를 쓰는데

그 아이는 무조건 자기는 아니라고, 다른 애가 범인이라고, 그런데 자기는 닉네임밖에 모른다고

그러면서 잡아떼는 겁니다. 닉네임밖에 모르니 어찌할 도리가 없지요.

윽박을 질러보고 타일러봐도 자기는 그냥 친구인데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반복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랑가이에서는 친절하게 후배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고

분명 이 아이가 범인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조건 찾도록 힘을 써 주겠다. 등등

또한 아까 쫓아가다가 넘어져서 심하게 깨진 손바닥과 무릎을 보면서도

정말 치료를 해 주고 싶다 이런 반응을 보여서 다소 안심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는 자기들이 내일 사건장소랑 그 아이들이랑 다 찾아보겠으니 우선 돌아가 있으라고 합니다.

 

자, 여기서 불안함을 느낀 후배가 그래도 현장에서 잡은 이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를 가야 하지 않느냐

지금 더 찾아봐야 한다, 주장을 했는데 바랑가이에서는 그런건 우리가 처리하는 것이라며 믿으라 합니다.

우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을때 우선 돌아가 있고 내일 저녁 10시에 다시 와 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이 후배는 돌아오면서 꼭 이아이는 잡아두고 있어달라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이모저모를 들어본 저희 부부는 우선 밤 10시에 오라고 한 것부터가 조금 이상해서

바랑가이에 전화를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들려온 답변이 찾아봤는데 없더라 10시에 오는건 너 마음이다 알아서 해라...라는 얘기만 하네요

뭔가 우리만으로는 확실한 정보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필리핀 친구 한명에게 부탁하여 바랑가이, 경찰서에 전화를 해 보고 같이 저녁 10시무렵에 찾아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같이 직접 겪은 일입니다.

 

먼저 바랑가이에 갔습니다. 어제 담당했던 여자분이 계시네요.

그런데 도착할때부터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아이를 물어보니 이미 엄마가 와서 데려갔다합니다.

언제 그랬냐고 물으니 아침 8시에 보냈답니다. 바랑가이에서는 8시간 이상 잡아둘 수 없다네요.

찾아는 보았냐고 물어봤지만 거의 의미가 없는 물음처럼 여겨졌습니다.

후배도 어제 친절했던 태도와 180도 다른 분위기라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대신 데려간 엄마가 주소를 남겼으니 나중에 너가 이 곳으로 찾아가보면 될거다 라며 안내합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이 엄마가 자기 친구라고.

 

이미 밤 12시가 되어가는 늦은 시간이고 아무런 권리도 없는 저희가 직접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우선 경찰서를 먼저 찾았습니다.(계속 필리핀 친구가 앞장서서 물어봐주고 다 했습니다)

어제 잡혔던 아이와 엄마를 찾아서 강하게 얘기해서라도

도망갔던 다른 아이들을 잡고 싶다, 그런 내용을 전달했더니

왜 어제 그 사건 있고서 바로 오지 않았냡니다. 이런 사건은 24시간 지나면 효력이 없어지는 거라면서요.

그래서 경찰차를 타고 문제의 바랑가이까지 다시 갔습니다.

 

이번에는 필리핀 친구, 경찰까지 대동하고 바랑가이에 도착했네요.

도착하자마자 경찰 2명이 그 바랑가이에 있는 여자분한테 따지듯 뭐라고 막 합니다.

필리핀 친구가 전하는 말이, 왜 절차상 어제 바로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느냐 란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갈 때도 이 사람(후배)이 있는 상황에서 납득시키고 보냈어야지

그런 것도 없이 알아서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 좀 시위하듯 언성높여 얘기하더군요.

우리 앞에서 보란듯이 몇마디 지적을 받은 그 바랑가이의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좀 전에 가서 아이는 어디 갔느냐 해도 뭐라뭐라 말이 많았던 사람이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더 늦어지기 전에 아이와 그 엄마와 얘기하고 싶다니까

이 여자분이 직접 나가서 엄마를 불러 옵니다.(이미 추궁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하고요)

엄마가 딱 보기에도 행색이 남루하고, 형편이 힘들어보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와서 화가나서 페어뷰에 있는 아빠한테 보냈다 합니다.

또 그 사이에 바랑가이에 있는 사람들이 그 엄마한테도 막 뭐라고 하네요.(저희 보는 앞에서)

분명 아이를 왜 그렇게 키웠느냐, 그 아이가 아니라면 다른 아이라도 이름을 대야하는거 아니냐

시위하듯 쏟아지는 언성을 그 엄마는 또 묵묵히 듣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이름을 댔다는 주요범인이라고 하는 아이의 닉네임을

이번에는 바랑가이 여자가 기록부를 막 뒤지더니 주소랑 본명을 보여주네요

(왜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래도 그 아이를 찾아가서 추궁하기는 앞서말씀드린 법적효력시간이 지났기에 대화밖에 안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모든 일이 다 벌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1. 바랑가이에 아이를 데리고 간 이후, 바로 경찰서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서

또다른 범인을 자백할 정도로 강하게 추궁하는 것은 이미 불가하다 합니다.

2. 아이를 제대로 된 절차없이 내보내고 이런 효력을 잃는 것에 대한 안내를 해 주지 않은

바랑가이의 잘못은 경찰의 따끔한 지적으로 이미 자기들끼리는 상쇄된 모양입니다.

3. 연락처를 남겨서 추후에 어떤 이유로든 그 닉네임으로 불렸던 우두머리 아이가 잡혀온다해도

이미 아이폰은 일찌감치 처리했을테고 돌려받을 길은 없겠죠. 그 아이가 언제 잡혀올지도 모르고요.

4. 그나마 여행자보험이나, 아이폰 보상처리부분을 생각해서 바랑가이와 폴리스리포트를 작성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미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특히 이 나라에서는)

후배한테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해줬지만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나봐요

 

우리나라라면 적어도 이 아이가 아니면 엄마한테,

엄마가 아니라면 행정절차를 무시한 관공서의 직원한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요

그래야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지,

분명히 잃어버린 사람은 있는데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나봅니다.

 

김규열 님 사건과 같은 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마당에

이 정도 일은 정말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 중 하나일 뿐이겠지요.

안그래도 정 떨어지는 일 많았는데 진짜 한국 돌아가고 싶다고, 씩씩대는 후배에게

어떤 위로를 해 줘야 할지,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