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남부 민다나오섬 강타 12시간새 한달 강수량 퍼부어… 예상 못한 경로라 피해 더 커
10代 한국 교포 소녀 1명 참변, 섬 주민 3만5000명 긴급 대피
 
 
지난 16일 밤(현지 시각)부터 필리핀 남부를 강타한 열대성 폭풍우로 인해 최소 6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만5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필리핀 적십자사는 18일 열대성 폭풍우 '와시(Washi)'로 인한 갑작스러운 홍수로 이날까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65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적십자사측은 현재 실종자 수가 808명에 달하고 가족 전체가 물살에 휩쓸려 갔거나 고립돼 연락이 닿지 않는 마을이 많기 때문에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필리핀 정부는 현재 주민 약 3만5000명이 대피소로 이주했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예상 못한 경로로 새벽에 폭우

열대성 폭풍우 '와시'는 16일 오후 2시 30분쯤 민다나오섬 남동부 해안에 처음 상륙했다. 이후 민다나오섬 중심부를 향해 이동한 와시는 17일 오전 2시를 전후해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내며 섬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카가얀데오로와 일리간에 피해를 집중시켰다. 카가얀데오로시(市)와 일리간시에서만 각각 346명과 20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필리핀 적십자사측은 집계했다.

이번 와시로 인해 사망자가 유난히 많이 발생한 것은 폭풍의 이동 경로가 평소와 전혀 달랐던 데다 폭우가 주민들이 잠든 새벽 2시 전후에 집중돼 피해지역 주민들이 미리 대비하거나 대피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와시가 약 12시간 동안 민다나오섬 일대에 쏟아부은 비가 이 지역 한 달치 강수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카가얀데오로시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현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갑자기 집 안으로 물이 밀려 들어와 어둠 속에서 떠다니는 타이어를 붙잡고 집에서 32㎞ 떨어진 해안가까지 떠내려갔다"고 말했다.

◇구조 난항, 시신 소독할 물 부족

필리핀 정부는 군인 약 2만명을 수해지역으로 급파했지만 폭우로 인해 도로가 유실되고 전기와 수도가 끊겨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리핀 민방위사무소(OCD) 관계자는 "실종자가 너무 많고 (시신의 경우) 일부는 바다로 쓸려가고 일부는 물속에 가라앉아 구조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단기간에 사망자가 몰리면서 장례시설도 극심한 부족을 겪고 있다. AFP통신은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익사한 시신의 몸속에 흙탕물이 스며들어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시신을 소독할 깨끗한 물과 포르말린 등이 부족한 데다 시체를 보관할 공간이 없어 일부 장례업체에선 시신을 쌓아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망자 중엔 우리나라 교민 1명도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교통상부는 카가얀데오로시에 거주하던 김모(16)양이 자택 침수 과정에서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