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박고, 요 몇일동안 필고가 매우 시끄럽군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보이는 모습은 달리 보이겠지요. 또 그렇게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칼이라는 자로 재단을 하는 것이 세상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여러 회원님들이 글을 올리시는 것도 역시 더불어 사는 삶의 소통의 방법들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필부필부요, 갑남을녀요, 장삼이사겠지요. 더불어 세상을 살기위해서는 모두가 지켜야 할 윤리라는 기준이 있어야 겠지요. 윤리적인 기준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결국 법이라는 틀로 개인을 구속하는 것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서 겠지요. 저는 어느 한 편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가치관이 만나서 부디치고 싸우고 다시 조화와 화합을  이루어 나가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야 세상이 더 살기 좋은, 살맛나는 세상으로 발전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윤리라는, 더불어 사는 틀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저라고 완벽한 윤리주의자도 못됩니다. 저도 필부필부니까요. 신호를 위반하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기도하고. 나의 가치관을 주장하기도 하고, ㅎㅎㅎㅎ, 그렇지만 이런 행동을 하고 난 뒤,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싶으면 반성하기도 하고, 사과하기도 하는 촌부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저는 삶의 방향성은 있습니다. 제 삶의 방향성을 대변해 주는 시 한 편을 소개드릴까 합니다.(ㅎㅎㅎ 이 것이 이 글을 쓴 목적입니다.)  이 시를 읽어 보시고 화합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신의 자(가치관, 생각등)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는 일은 조금은 자제하는(신이 아니니까ㅎㅎㅎ) ,한편으로는 윤리적인 삶을 살고자하는, 더불어 사는 필고가 한 순간이나마 됐으면 합니다.

 

가자,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