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집집마다 밥짓느라 아궁이에선 연신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오른다.

산속 마을은 오후 다섯시만 되면 어둠이 군데 군데 짖게 깔리고 여섯시가 채 못되어도

세상은 암흑으로 변하고 만다.

쌀이 떨어져 밥을 못짓는 집에서는 산 지천으로 널린 바나나를 삶고 그것으로

배를 채우고 아침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았다.

 

가난한 시골 마을 일수록 아기들 수는 많았다.

보통 한집에 열명씩은 낳는것 같았다.

저녁 여섯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니 당연히 아기는 많이 생길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전기도 없어서 방안으로 들어서면 노숙을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일년 내내 따뜻한 나라여서 그런지 가난때문인지 모르지만 생활 필수품이 절실하게 부족하였다.

 

집에 고장난 자전거라도 있는 집안은 형편이 좋아 보일 정도로

두발로 걷고 맨손으로 연장이 필요한 일까지 해치우는 기적같은 일이 시골마을에서는 늘상인듯 보였다.

영양 상태가 부족한 듯 보이는 삼개월쯤 되보이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이방인들을 보고 하얀 치아를 들어 내며 웃음을 보이는 아낙의 모습에서

운명의 손짓 처럼 아낙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아낙의 집에는 열일곱살 딸과 여덟살 아들 네살 아들 그리고 삼개월된 사내아기가

쌀이 떨어진지 오래였고 몇날 몇일을 산에서 나는 나물이나 과일로

다섯식구가 연명해서 살고 있었다.

남편은 어디에 갔는지 생사를 모르고 죽었다 라고 둘러대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남편의 걱정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삼개월된 아가의 울음에 묻혀진듯 했다.

 

아낙은 인호와 막걸리에게 바나나와 엘로우 파파야를 내놓았다.

엘로우 파파야는 아직 덜 익은 듯 보였는데 씹는 맛이 메론 같았고

아직 단맛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입안에 맴도는 시원함은 열대 과일의 왕이라고 하는

두리안보다 몇배나 더 맛이있었다.

시골 마을 산에 바나나와 주렁주렁 매달린 파파야가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 같았다.

 

" 여기서 가정부로 보내면 천페소를 받는데 도시로 나가면 이천페소를 받는 것으로 압니다."

열일곱살 딸 디바인을 불러놓고 아낙은 인호와 막걸리에게 부탁하듯 이야기를 꺼내었다.

쌀 떨어진 집에서 딸을 가정부로 보내려는 엄마의 마음은 눈물로 밖에 표현할수 없는지

아낙은 연신 눈시울을 적신다.

막걸리는 디바인을 민박집 헬퍼로 일을 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한달에 천페소든 이천페소든 디바인의 동생들을 위해서 뭔가 수입원이 절실하게 보였고

삼개월된 아기와 바람불면 날아갈듯한 집 구석 구석은 디바인을 도시로 내몰고 있었다.

 

이천페소이면 한화로 오만원이다.

오만원으로 다섯식구가 한달동안 입에 풀칠하고 살수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는다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다.

 

두세람이 해산물 식당에 가서 회 한접시에 소주 두세병을 마시면

만페소가 훌쩍 넘던데 다른 나라 이야기 처럼 다섯 가족은 어찌 한달 생활비가

소주값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적은 돈이면 만족 스럽다는 이야기란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 할수가 없고 사실이란 것을 받아 들일수가 없는 현실이 아이러니 할수밖에 없다.

디바인은 몇일 뒤에 짐을 꾸려서 세부로 혼자 올라오기로 하였다.

인호와 막걸리는 여행을 마치고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세부로 돌아왔다.

여행중에 고용한 카렌도 디바인도 몇일 후면

다시 만나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