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쇼파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막걸리 민박집 앞에

필리핀 아가씨가 고개를 90도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막걸리는 의아해 하며 밖에 서있던 아가씨를 거실로 들어오게 하였다.

" 여기서 이백미터 떨어진 한국인 집에서 운전수 겸 헬퍼로 일했는데 한국 사장이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혹시 여기서 운전수 나 헬퍼를 구하시지는 않아요?"

" 아가씨가 운전수로 일했다고?"

" 네... 여행사 가이드인 한국 사장 집에서 일개월동안 운전수겸 헬퍼로 일했어요."

스물 두살 제인은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무엇을 묻기도 전에 막걸리가 원하는 대답을 척척한다.

고개 숙이고 인사하는 것은 어찌나 잘 배웠는지 90도 인사를 연신 해댄다.

" 여기 우리집은 어찌 알고 찾아왔어?"

" 정문 가드에게 한국 사람 사는 집을 물어서 찾아왔습니다."

민박 손님들이 시내 관광을 원할때면 제인과 함께 보내면 될듯 싶어서 막걸리는 제인을 선뜻 고용하기로 했다.

 

카렌과 디바인에게 제인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런데 디바인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에 가겠다고 한다.

막걸리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시무룩 한 얼굴로 집에 꼭 가야 겠다는 것이다.

제인이 무슨 일인지 다그치듯 물어보자 엄마가 가불을 해서 돈을 가져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몇일 되지도 않았지만 아마도 디바인 엄마가 큰 곤경에 빠져 있다는 직감이 왔다.

 

다음날 아침 여섯시부터 디바인 집으로 가기 위해 카렌과 제인도 준비를 서둘렀다.

승용차로 오십키로 거리지만 탑스에서 삼십킬로미터를 더 가야하고

승용차로 들어갈수 없는 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십키로 미터 정도 가야한다.

아침 밥을 맛있게 먹고 소풍길에 나섰다.

카렌도 디바인도 제인도 승용차를 처음으로 오랫 동안 타서 그런지 바방에 도착하니

멀미가 나고 기진 맥진이다.

도저히 더이상 갈수가 없다. 막걸리는 바방 계곡 마을에 기증해 두었던 열마리 돼지를 살피러

가자고 하였다. 막걸리가 마을마다 돼지를 열마리씩 기부하면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때 돼지를 처분해서 도움이 되라고 기부하였던 곳이 마침 그곳이었다.

승용차를 세워두고 삼십분을 걸으니 카렌도 제인도 디바인도 생기가 다시 도는 것 처럼 보였다.

열마리였던 돼지는 일곱마리만 남아있었다.

벌써 세마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했으리라 막걸리는 생각하였다.

 

조그마하던 새끼 돼지들이 100키로 진짜 돼지들로 성장했다.

돼지는 4.5 개월이면 100키로까지 살이 찐다니 진짜 돼지 답다.

돼지들을 구경하고 계곡길을 따라 승용차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삼십분은 더 승용차로 달려야 디바인의 집이다.

디바인의 표정은 몇년만에 집에 가는듯 밝은 표정이고 동생들을 볼 기대에 잔뜩 부풀어있었다.

열일곱 소녀가 다섯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었으니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

 

차를 숲길에 세워두고 길가에 카오보이들의 오토바이에 올랐다.

비가 한번 오면 산길 도로는 진흙탕으로 뒤틀리고 태양이 내리쬐면 그대로 굳어버리고

길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변해버린다.

디바인의 집에 도착했을때는 삼개월 아기를 보듬은 디바인의 엄마가 디바인을 반겼다.

방안으로 안내를 받아 막걸리가 들어갔을때는 막걸리 혼자 편히 앉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에서 어찌 다섯 식구가 살았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막걸리가 화장실을 물었더니 화장실이 없단다.

그냥 아무곳이나 다 화장실이라하니 편하기는 하다.

 

디바인 집 밖 아무곳에다 실례를 하고 돌아서는 길에 사오개월쯤 되어보이는 검정 강아지가

몇일을 굶었는지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힘들게 걷고 있다.

디바인의 집 주변에는 농작물들이 수천평 있지만 시골이 더 무섭다고

도둑으로 몰릴까 남에 것에는 손을 대지 않는지 디바인의 세 동생은 영양이 매우 부족해 보였다.

디바인이 가불 받은 천페소를 어머니 손에 쥐어 주니 디바인 엄마의 혈색이 돈다.

막걸리 한끼 식사값도 안되는 돈으로 디바인 세 어린 동생과 디바인 엄마는

한달을 아니 그 이상을 식량도 사고 삼개월된 아기 약값도 할것이다.

 

손을 흔드는 디바인 동생들을 뒤로 하고 산골 마을에서 승용차가 있는 도로까지

카오보이들이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왔다.

승용차는 곧장 내달려 막탄 공항으로 향했다.

막탄 공항에 있는 백화점에 카렌을 데리고 들어갔다.

( 앞으로  백화점이라 하겠습니다.)

" 카렌 벌써 열흘째 아무 문제 없이 하루에 오천페소씩 이기고 있으나 너의 일은

오천페소만 이기면 무조건 나를 백화점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내가 잘못되면 디비안도 제인도 카렌도 문제가 생길것이다."

" 네..."

백화점 창구에서 블루칩 스무개를 받아들었다.

이기고 지고 공방전은 세판을 넘기지 않고 손쉽게 오천페소 승리를 거머쥐었다.

 

백화점은 내 할일만 조용히 하고 떠나면 아무 문제가 없기 마련이다.

백화점은 눈으로 구경만 하여도 가슴 설레이고 떨리는 곳이다.

삶에 백화점이 필요없는 사람은 그냥 시장에서 고스톱 구경으로도 족한 것이 세상이다.

백화점이고 시장이고 내 필요에 의해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은 때론 잘못되기도 하고 잘되기도 한다.

 

막걸리는 블루칩 스무개를 디파짓하고 백화점에서 카렌의 손을 잡고 나왔다.

백화점에서 있는 시간이 짧을 수록 덜 피곤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