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 여덟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동네로 돌아왔다. 이미 난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반년 정도의 복싱 훈련과 웨이트등으로 야무지게 다져진 체구만큼이나 기질까지도 불거질대로 불거져 누가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해버릴만큼 다혈질로 변해 있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어린 나이의 또래들에게 전과라는 건 훈장 같은 작용을 해주었다. 동네,학교 후배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선배, 선배들도 함부로 대하지못하는 후배...난 그렇게 커가고 있었다.

 

당시엔 심야 음악다방이라는 곳이 트렌드를 이루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놀기 좋아하는, 때론 오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의 온상 같은 곳이었는데...밤 아홉시가 넘으면 각 다방마다 피크타임이 된다. 그때부턴 디스코 경연대회라든가,퀴즈쇼같은 각종 이벤트로 홀은 미어터진다. 오죽하면 인기꽤나 구가하는 디제이들이 일하는 다방들에서는 테이블 자리가 부족해 그냥 서서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면서 디제이들의 입담속에 울고 웃는 웃지못할 광경이 연출됐을 정도다ㅎㅎ

 

그리고 그 다방마다 기도라는 걸 두고 영업을 관리했는데...나이트나 룸살롱의 지배인식 타이틀이다. 별달리 할 건 없고 그저 멋모르고 영업방해하러 온 타지역 떼거리들을 혼내서 돌려 보낸다던가 아니면 다른 다방의 어느 디제이가 손님들을 많이 몰고 다닌다하면 대충 공갈쳐서 자기가 관리하는 다방으로 영입을 한다던가...뭐 대충 그런 일들을 하면서 용돈정도나 받고 친구,선후배들 놀러오면 공짜 차 대접등을 하면서 가오나 잡는 게 호사(?)의 전부였지만 그 나이 또래들에겐 그 타이틀이야말로 제대로된 건달로 입성할수 있는 첫 미션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년원을 나오자마자 나를 주축으로 결성된 서클의 얼굴격이었던 난 당시 동네에서 제일 크고 물 좋다던 "축제다방"과 "초목다방" 두 곳의 기도를 보게되었고 그 이력이 간혹 들르는 진짜 달건이(성인 건달)들로 부터 어느정도 눈도장도 찍히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웃지못할 에피소드 하나를 말하고 넘어갈까 한다.

난 중학교를 남녀공학을 다녔다. 그때 동창 여학생 하나가 나를 죽자사자 쫒아다녔는데 외모건 성적이건 평범하기 이를데없는 그 아이가 얼마나 당돌하게 나를 쫒아 다녔는지...동창이나 학교 후배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선생님들까지도 소문을 입에 올릴 정도였다.

 

내가 학교를 중퇴하고 소년원을 다녀왔을 무렵 그 아이는 서울 상명여고에 다니고있었는데...그때까지도 동창들과 내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내가 일보는 다방으로 밤마다 출근을 하곤했다. 집요하리만치 쫒아다니는 그애가 그땐 너무 싫었다. 일부러 피하기도 하고 갖은 못된 짓으로 그 애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도무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가 몇개월 후, 난 큰 사고를 치고 몇년 동안을 그 아이와 만날 수가 없게 되는데...이미 그아이와 난 서로 다른 신분으로 돌아서는 운명같은 걸 겪게된다.

 

그 아이가 가수가 된 것이다. 서울예전(현 서울대학교)을 다니다가 대학가요제에 나가 본선에 오른 경력으로...이모라는 남자가수와 듀엣으로 음반을 내고 데뷔를 한 것이다. 그리곤 그 곡이 히트를 치고... 친구들이 처음 그 소식을 전해줄땐 전혀 믿어지질 않았다. "에이~이 새끼들이 날 손님잡냐? 걔가 무슨 가수를 해? 나 걔 학교 다닐때 노래 하는 거 한번도 못봤는데..." 너무도 평범했던 아이...게다가 나를 그렇게나 쫒아 다녔던 그 아이가 연예인이 됐다는 걸 덜컥 믿을 만한 사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ㅎㅎ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 후 당시 인기있던 "젊음의 행진"이나"영일레븐"같은 코너의 MC를 맡는가하면 솔로로 데뷔 후 신인 가수상을 받고 개그프로에 고정 출연을 하기도 하는 걸 내 눈으로 숱하게 봤으니까...ㅎㅎ

 

당시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들(지금도 변함없이 모이는 동창들) 계모임에 가면 간혹 녀석들이 놀리곤 했다. "야 니가 그때 걔 쫌만 잘해줬으면 너 지금쯤 걔 매니저 하면서 빵빵하게 잘 나갈텐데..." 그러면 옆에서 다른 녀석이 또 놀린다 "야! 쟤가 그때 xx이를 잘 대해줬더라면 걔가 가수 됐겠냐? 보나마나 또 저거 작품(술집 호스테스)하나 나왔겠지 ㅋㅋ" 나쁜 넘들이다. 그 친구들과의 모임은 지난 25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악연이다. ^^

 

아무튼 내 십대의 마지막은 거기까지였다. 소년원을 나온지 팔개월여 만에 난 대형사고를 치고야말았다. 

전쟁(패싸움)에서 상대방 선수가 둘이나 죽은 것이다. 또 한명은 식물인간...

 

우리 쪽 구속된 수만 18명에 실형 8명...최고형은 15년, 난 3년형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