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가 그대로 살아있는 한국 사학계

 

이병도와 식민사관의 망령

근대적 역사 서술과 조선사 편찬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로 우리 고대사를 삭제한 일제는 도처에 식민사관의 독버섯을

심어 놓고 물러갔다. 그 치명적 독버섯 중의 하나가 일제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이병도이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 왜곡

의 선봉장인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의 제자로, 1927년 조선사편수회가 조직을 확대 정비할 때 이마니시 류의 수사

관보로 들어가서 한민족 고대사를 왜곡하는 데 헌신적으로 기여한 자이다.

 

 

쓰다 소우기치(1873~1961)

일제의 식민사학 이론을 만들어 낸 중심인물.

한국 강단 사학계의 태두인 이병도의 와세다대 유학시절 스승이다.

 

이병도(1896~1989)

 

식민사학의 하수인이 되어 환국, 배달, 고조선 시대의 실존을 부정했던 이병도는 죽기 얼마 전, "단군은 신화 아닌 우리 국조"(1986.10.9.<조선일보>)라고 민족 앞에 고백하였다. 그의 와세다 대학 동창생인 최태영이 3년간 설득한 결과였다. 1989년 두 사람의 공저로 <한국 상고사 입문>을 지어 공개 강연회를 며칠 앞두고 작고하였다.

 

일제가 물러간 후 그는 이승만의 후원을 등에 업고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일제 식민사학이 날조한 한민족사를

그대로 계승하거나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답습하였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백남운 같은 사회경제사학계열의 사학자들이 월북하고, 안재홍, 정인보 등 민족사학의 거목들이 납북되자, 이병도와 그 제자들은 식민사학을 증사학으로 위장시켜 한국 역사학계를 독차지하였다.①

그리고 쓰다의 조선사 이론에 조선 후기의 노론사관②을 가미해 만든 이론을 한국사의 정설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학계는 식민사관과 노론사관에 젖줄을 대고 있다.

 

이론異論 을 제기하는 학자는 무조건 재야사학자로 몰아 추방하고 역사 해석권을 독점한 그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득세하는 과정에서 이 땅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과연 어떤 지경에 처해 있겠는가?

 

민족사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아 부분적으로 시정되었지만, 이 땅의 2세들이 보는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일제 식민사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잘못 소개하고 있는 고조선사는 알맹이가 빠진 채 10쪽 내외로 간략히 기술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역사는 불교사와 유교사로 온통 채색되어 있다.

 

 

근대사 서술과 노론사관

근대사 서술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의 근대사는 일본, 러시아, 청나라 등의 침략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외세 항거운동과 독립운동을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

그리고 독립운동사라면 무장 투쟁사를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는 식민지 체제 내의 애국계몽 운동이나 실력양성 운동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무장 투쟁사는 이름만 겨우 소개 되어 있다. 예컨대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항일 투쟁의 중심이었던 3부에 대해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라는 이름만 나오지, 그들의 활동 내용에 대한 구체적 서술이 없다.③ 학생들은 3부가 일제와 어떻게 싸웠는지도 모른 채 이름 외우기에 바쁠 뿐이다.

 

 

 

 

 

 

 

 

 

송호정의 <단군, 만들어진 신화>

대한민국의 교사를 길러내는 교원대학교 교수인 그는 '한민족사는 기껏 2,700년이며 고조선은 허구'라고 말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 땅의 지식인이 응원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3부의 무장 투쟁 내용을 함구한 채, 국사 교과서는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되었으나 곧 이은 일제의 패망으로 본격적인전투에 나서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임시정부의 활동 소개를 마친다.

이 책으로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청산리, 봉오동 전투 외에는 별다른 무장 투쟁 없이 연합국의 승전의 부수물로 한국이 해방된 것으로 인식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땅의 역사 교과서는 독립운동사를 약술하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일제의 역사날조 만행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교과서에 총독부의 주택난 해결 정책은 세밀히 묘사되어 있다. 일본 덕분에 인구가 증가하고 큰 발전을 이룬 것처럼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다.④

 

최근 온 국민이 나서서 일본 교과서에 실린 조선사 왜곡 내용을 질타하고 있지만, 정작 이 땅의 역사 교과서는 일제식민사관의 틀에 여전히 갇혀 있다.⑤ 이 개탄할 현실을 어찌해야 하는가.

 

각주)

① 한국 역사학계 독차지 : 이병도는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면서 이기백, 김철준 등의 1세대 고대사학자를 양성하였고, 1세대는 노태돈과 같은 2세대를 양성했으며, 2세대는 송호정으로 대표되는 3세대를 배출하였다.

송호정은 한국교원대에서 교편을 잡아 식민사관에 물든 역사 교사를 대거 양성하고 있다.(김종서, <신화로 날조되어 온 신 시, 단군조선사연구>, 72~74쪽)

 

② 노론사관 : 노론사관이란 한국 학계가 조선 후기사를 인식하는 사관을 말한다.

노론의 뿌리는 광해군을 명나라의 배신자로 몰아 축출하고 인조를 그 대신 앉힌 서인들이다. 서인이 남인에게 정권을빼앗겼다 다시 찾은 후,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다. 남인게에 역모 죄를 뒤집어씌워 죽인 주동자 그룹이 노론이다. 조선 멸망 때까지 늘 정권장악한 노론의 상당수가 일제의 조선 침탈에 협력하였다. 이 노론 출신의 학자들이 조선사편수회를 거쳐 해방 후 한국 사학계의 주류가 되었다. 노론사관은 또 다른 사대주의 사관이다.(한겨레신문),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노론사관에 일그러진 조선후기사”, 2009.7.18.).

 

참의부 : 참의부는 임시정부 산하의 행정, 군사조직으로 1924년 압록강을 순시하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

의 배에 수백 발의 총탄을 퍼부어 혼비백산 도주하게 만들었다.

정의부는 수많은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한 의용군 조직이다. 3부의 조직과 활동은 독립운동사에서 생략되어도 좋을 내용이 결코 아니다. 그렇건만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본문에 “독립군은 다시 만주로 이동하여 각 단체의 통합 운동을 추진하여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의 3부를 조직하였다. 이 가운데 참의분는 임시정부가 직할하였다”라고만 서술하고 있다.

 

 

④ <한겨레신문>, “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무장독립투쟁 연구 빈약한 이유”, 2009.7.22.

 

⑤ 한민족의 근대사에 대한 은폐는 비단 교과서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해방 후 1980년대까지 역사학들에게 근현대사는 일종의 금기 영역이었다. 그 사이에 독립운동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해줄 전사들은 대부분 고통과 가난 속에 저 세상으로 가야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 금기사항이다 보니, 정의부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 <정의부 연구>가 나온 것이 1998년이고, <참의부 연구>가 나온 것은 2005년이다. 신민부에 대해서는 여태 박사학위 논문 하나 없는 형편이다.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169~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