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명 상해치사, 징역 삼년...생각 할수록 캄캄하고 먼 길이었다. 1984년도에 3년형을 언도 받았으니 만기 년도는 87년도였다. 과연 그날이 오기는 할런지...도저히 오지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혈기왕성한 나이의 내겐 아득하기만한 세월이었던 것이다.

 

인천 소년 교도소...

얼마전 "주먹이 운다"라는 영화를 보고 소년 교도소가 천안으로 옮겼다는 걸 알게되었다. 당시의 인천 교도소는 그야말로 인간의 타고난 천성까지도 개조시킨다는 말이 돌만큼 살벌한 곳이었다. 일단 소년수들 이다보니 재소자간의 구타는 말할 것도 없고 교도관들의 구타나 체벌이 엄청 심했다. 소년원에서 직원들한테 맞던 건 인천 교도소에 비하면 애들 장난질 이었다.

 

말 그대로 소년원은 소년원, 교도소는 교도소였던 것이다.

인천하면 떠오르는 세가지가 있는데..."눈물 고개","꽈배기" 그리고 "오대 악마"다. 

 

먼저 "눈물고개"란 처음가면 각 공장으로 사역을 나가기 전까지 2주동안 순화교육을 받으면서 대기하는데 그들을 "비취업수"라 한다. 비취업수들은 소 연병장에서 육체 순화교육을 받는다. 이때 교관들은 교도관들 중에서도 성질이 잔혹하면서도 무술 유단자들로 선별하는데 이들이 돌리는 뺑뺑이가 거의 삼청교육대 수준이다. 점심밥을 먹자마자 식당에서 소연병장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 내려갈땐 토끼뜀(조금이라도 빨리 돌리기위해)올라올땐 올챙이 포복을 시킨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올챙이 포복이 어떤 건지를 잘 알것이다. 그나마 호떡 두께만한 가다밥 한그룻 먹여놓고 그렇게 몇바퀴 뺑뺑이를 돌고나면 열에 아홉은 그 자리에서 오바이트를 쏟아내고야 만다. 오바이트를 하고나면 눈물이 핑~돈다해서 그 언덕을 눈물고개라 한다.

 

그리고 "꽈배기"란 엄지 손가락 굵기 정도의 전선 케이블을 꽈배기식으로 꼬아 만들 체벌 봉인데 그걸로 한대씩 맞으면 곡괭이 자루나 각목으로 빳다를 맞는 건 오히려 양반이다. 전선 케이블이 채찍처럼 온몸을 휘감으며 때리게 되는데 한대씩 맞을때마다 정말로 머리칼이 곤두설만큼 고통이 심하다.

 

마지막으로 오대악마란 당시 교도소내의 이백여명 교도관들중 제일로 악질인 다섯명의 교도관들을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얼마나 나이 어린 재소자들에게 심한 처우를 했으면 재소자들이 암암리에 오대악마라는 닉까지 지어불렀을까?...

아무튼 난 어려서부터 가위바위보 못하기로, 줄 잘못서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거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대악마중 제일 악질이라는 박모 교도관의 공장으로 배치가 된것이다.

 

공장내 백여명 재소자들 중 제일 대빵인 소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되는 2년여 까지 주구장창 매에 길들여지며 살아야 했다.

처음 두달쯤 지났을 때인가? 이어지는 구타를 견디다못해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의무실로 진찰 받으러 간 사이 난 가석방이고 뭐고 다 포기해버리고 주먹으로 의무실 안의 유리창을 모조리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소위 우악~이란 걸 죽여댔다.

 

 "씨발넘의 징역...여기가 민주주의 국가야? 교도소가 사람 패죽이는 곳이야? 으아악~씨발 차라리 날 죽여 씹새끼들아~" 곧바로 꽁꽁 묶여서 독방에 갇혔고 독방에서 묶인채로 찢긴 손등을 꼬맸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눈앞이 거의 보이지않는다. 독방에 갇혀서도 난 머리로 쇠창살을 들이받았다. 띵~한 통증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이~ 개새끼들아 이따위 개돼지처럼 취급할거면 차라리 죽이란 말야~" 뭔가 뜨끈한게 눈가로 흘러내린다. 들이받은 머리통이 깨져 피가 흘러 내리고 그 피가 얼굴을 온통 적시고도 마룻바닥에 뚝뚝 떨어질때까지 손발이 꽁꽁 묶여 흐르는 피를 닦을 수도 없다. 그때의 내 모습을 내가 볼수 있었다면 아마도 악귀와도 같은 내 모습에 내가 진저리를 쳤을 것 같다. 

 

의무과장이란 개기름 철철 흐르는 사내와 좀비같은 무표정의 여자 간호사가 연락을 받고 오자마자 마취도 없이 뚝딱뚝딱 몇방 꽤매더니 가버린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자해로 인한 피를 보고나니 왠지모를 후련함도 밀려온다. "아~비록 가석방이야 물건너 갔지만 그 악마같은 놈 밑에서 벗어나는구나" 그러고보니 살것도 같았다. 

 

그러나 평안함과 후련함은 아주 잠시였다. 그 악마같은 놈이 직접 상관에게 찾아가 나를 독방에서 풀어주지않으면 옷을 벗겠다라고 공갈을 치고서 날 데리러 온 것이었다. 모자를 삐딱하게 쓴채 독방으로 들어선 그는 워카발로 대뜸 내 쬬인트부터 걷어차더니 느물거리며 한마디 뱉었다. "야이 짐승같은 새끼야! 니가 감히 내밑에서 깔창을 날려? 그리고도 살아 나가길 바래?" 포승줄과 수갑에 묶인 채 개처럼 끌려 그 공장으로 들어서는 날 누구하나 측은하게 마주 봐주는 이 없었다. 한결같이 증오에 찬 시선들 뿐이었다. "저 또라이 새끼땜에 괜히 우리까지 죽었다..."라는 표정들 속에서 난 절망을 느껴야 했다.

 

그 추운 겨울날... 나를 연병장에서 직접 두어시간 뺑뺑이 돌린 후, 탈진 상태로 쓰러져있는 내게 다가온 악마는 마지막 만찬을 즐기듯 찢어져 꽤맨 왼손등을 워카발로 무자비하게 밟아댔다. "아악!~" 질러대는 내 비명소리엔 아랑곳하지 않은채 몇번 더 밟고 비벼대자 꽤맨 자리는 살이 다시 찢어지고 실밥이 터져 나갔다. "아아악!~" 아무리 참으려 이를 앙다물어도 입술을 비집고 비명이 터져나왔다. "조용히 해 이 개새끼야! 넌 사람새끼가 아니고 개야. 아니 개보다 더 못한 놈이야" 일갈 하더니 "야 소대장! 소금 가져와" 소리 친다. 잠시 후 소대장이 가져온 굵은 왕소금을 한웅큼 쥔 악마는 정말로 악마처럼 음산하게 씨익 웃더니 내 왼손목을 발로 밟고 찢어지고 터져 갈라진 손등위에 소금을 뿌려댔다. "끄윽..." 몇번인가 꿈틀이나 거렸을까? 비명도 제대로 지를 사이없이 내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정신을 잃어가는 중에도 난 속으로 중얼 거렸나보다 "나가면 넌 내가 반드시 죽인다...이 개새끼 넌 꼭 죽인다..."  

 

"기절" 이란 걸 또 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