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 7 -
들개...
제대로 머물러 있을 공간도, 먹이를 주면서 키워줄 주인도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아야만 했던, 당시의 난 말 그대로 들개였다. 아니, 함께 무리를 지어 헤매어 줄 동료들에게 조차 외면 당해야했던 난 어쩌면 들개 보다도 못한 처지였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졸업식때 마지막으로 본 친형을 찾아갔다. 태어난 배는 달랐지만 같은 아버지의 피를 타고 태어난 친가쪽으로의 유일한 사이인 형...
키는 작지만 타고난 완력과 야무진 배짱으로 형은 십대시절부터 서대문과 종로쪽에서 "서대문 돼지" 라고 하면 어지간한 이들은 한 수 접어주는 건달이었다.
형은 첫눈에 알아봤다. 내 헤어 스타일과 입고 있는 옷차림새만으로... "참내...니가 건달이 되다니..." 너무도 어이없어 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 형 앞에서 난 고개만 떨구고 있어야 했다.
어이없어 할만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난 태어날때 부터 잘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 순댕이중의 왕순댕이 였다고 한다. 자라면서도 그저 겁 많고 나약한 어린아이였을 뿐, 한치도 나의 그런 싹수를 본적이 없었던 형으로선 내가 칼질을 하고, 빵을 다녀오고, 몸에 문신질을 했다는 자체가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학급에서 싸움도 잘하고 덩치도 컸던 녀석의 소위 꼬붕 노릇을 하게됐다. 녀석의 심부름으로 책가방을 대신 녀석 집으로 들어다 주던 걸 우연히 형이 목격한 것이다. 그날 난 형에게 우리 집 옆의 교회당 뒷마당으로 끌려가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다. 사내새끼가 깡도 배알도 없다면서... 어머니가 교회를 나가시다가 돌아가셨고, 형이라는 이에게 교회 안에서 디지도록 맞았으니 이래저래 예수란 분과 나와는 아마도 악연인듯 싶다.
그간의 내 사정을 듣고 난 형은 "어차피 생활 할거면 변방 골짜기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4대문 안으로 들어와 생활하라"며 나를 동대문 식구였던 형의 친구에게 인사 시키고 이스턴 호텔뒤의 "이스탐블"이라는 스텐드 빠의 영업부장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확실히 시내다 보니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다들 아다마(일급)들 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교분을 쌓았던 분은, 당시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x희씨였다. 키는 자그마하고 체구도 왜소했지만 당차기가 어지간한 건달들 뺨칠만큼 대찬 성격의 소유자... 본인이 고생을 많이 하면서 정상까지 올라서인지 정도 많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분이었다.
난 그 분을 "누님"이라 불렀고 그 분은 나를 볼때마다 "우리 막둥이"라 부르며 가끔 분장실에서 대기중에 구운 문어발 안주로 소주를 한잔씩 나눠마시기도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동대문에서의 일년여간 생활에 근처 청량리, 종로, 명동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았고 ,내 입지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난 내 바닥과 불알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곳, 그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결국 난 구로동은 아니었지만 바로 옆동네인 가리봉동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스물 넷의 나이...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타동네,타식구였지만...그동안의 내 이름 정도는 2,3년 아래위로 듣고 기억해 주었나보다. 날 기꺼이 받아주었고, 난 순천파의 일원이 되었다.
어린 시절...내게 첫 징역을 안겨주었던 그가 내 오야붕이 된 것이다.
그는 날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도 그를 몰랐던 걸로 하자며 내 자신과 타협해 버렸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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