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투데이에 투고하신 기사내용 전문>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4961
 
서경석 목사님 약력(서경석 목사님의 글에서 요약한 내용입니다)
●대학 2학년때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입건. CCC경제복지회 가입.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남편이 박성준씨로부터 사회주의 비밀지도를 받고 사회주의 신봉하게 되었으며 . 그 후 유신체제와 싸우다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20년형 언도. 산업선교 활동을 하다가 YH사건, 동일방직사건으로 두 번 더 노동자와 함께 옥살이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틀은 사회주의를 신봉.
 
●1982년 미국 유학을 가고 88년까지 살면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됨. 82년 교포사회에서 북한방문이 시작되었고 한달간 북한의 아들집에 머물다 온 노인으로부터 들은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됨. 한 밤중이면 아들과 단둘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북한에 대해 진실을 들으셨다함. 제가 다닌 뉴욕 부르클린 한인교회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계셨음.
 
●1988년 귀국해서 운동권 연구기관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서리가 됨. 파악해보니 일반 학생운동만이 아니라 기독학생운동까지 전부 김일성 주체사상파가 되어버림. 기독교단체의 성명서들도 전부 북한방식을 베낀 것이었음.
 
●후배들에게 '기독교운동은 성경말씀에 기초해야지 주체사상론에 기초하면 안된다'고 하였으며 후배 한 사람을 몰래 불러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함. 이를 계기로 개량주의자라 비판하면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직에서 내쫓는 운동을 통해 진보기독교 진영에서 쫓겨나게 됨.
 
●이때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운동)을 시작하게 됨.
-운동권이 '사회주의를 지향'할 때 경실련은 '시장경제체제를 주장'함
-운동권이' 비합법운동을 할 때' 우리는 '합법운동을 주장'함
-운동권이 '민중운동'을 하면 우리는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민운동'을 하였음
-운동권이 '계급투쟁'을 할 때 우리는 '사회적 공공 선(善)'을 추구
-경실련이 주장한 경제정의는 평등이 아니라 사람들이 균등한 기회를 누리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
 
●1994년 경실련에 반하는 참여연대가 생김. 참여연대는 무조건 북한편을 들고 노동자 편을 들었지만 경실련은 그렇지 않았음. 서울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면 참여연대는 노동자 편을 들었고 경실련은 왜 시민들의 발을 묶냐며 시민의 편에 섰음. 이렇게 된 이유는 경실련은 과거 운동권과 단절하고 새출발을 했지만 참여연대는 과거 운동권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
 
●낙선낙천운동은 좌파시민운동의 시작. 2000년 낙선낙천운동을 고비로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을 주도함. 낙선낙천운동은 잘못된 선거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음. 이러한 주장은 당장에는 인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이후의 시민운동은 국민을 향해 법과 질서를 호소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잃고 말았음. 낙선낙천운동은 법위에 군림하고 스스로 판관(判官)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마음대로 휘둘렀고 자기들이 정한 낙선자 명단은 무오(無誤)하다고 하여 일체의 수정을 허용하지 않았음. 그 결과 낙선낙천운동은 편향적인 특정정당 지지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음.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은 그 후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시민운동이 권력화 되고 내부의 언로(言路)가 막혀 낙선낙천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체 허용되지 않았음. 한국역사에서 낙선낙천운동처럼 크게 홍보가 된 시민운동은 없었을 것임.
 
●친북좌파의 들러리가 된 좌파 시민운동.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과 평택 미군철수 시위.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진보진영은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는 영원히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이들이 민노당 주류를 종북(從北)주의라고 비판하고 더 이상 그들과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듦. 만일 그때의 분위기가 계속되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가 청산되었을 것. 그런데 그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짐. 이 촛불시위는 종북좌파들의 작품임.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오종렬, 한상렬 등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을 주동한 사람들이 그대로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동. 촛불시위가 성공하는 바람에 코너에 몰렸던 종북좌파 세력이 다시 진보세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좌파 시민단체들이 다시 종북좌파의 둘러리를 서게 됨. 참으로 불행한 사건.
 
●청산되어야 할 종북좌파 세력. 나는 왜 북한인권문제에 관심 갖게 되었나? 
 
●과거에는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었음. 6.25전쟁을 치른 나라로서 전쟁방지가 우선이고 북한인권은 평화정착 후에 다루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 그런데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서울조선족교회 목사로서 연변에 사는 교인들을 방문했을 때였음. 연변에서 저는 62명의 탈북동포들이 중국공안에 붙잡혀서 북한에 강제송환되었는데 전원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됨. 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한동포돕기를 열심히 하던 때.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면 동포를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자정까지 열심히 일했음. 총살소식을 듣고는 몸이 굳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고 내가 이 소식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음.
 
●연변에서 귀국한 후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을 만나기 시작.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조선족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참혹. 지난 날을 회개하며 “한반도 평화가 우선”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의 가쯔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것. 이 밀약은 미국의 태프트와 일본의 가쯔라가 만나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것을 일본이 용인한다는 밀약임. 이 조약은 두 수퍼파워 간의 조약이기 때문에 세계평화에는 기여하겠지만 우리민족에게는 너무도 절망적인 소식. ‘한반도 평화가 우선’이라는 말은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대가로 북의 김정일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생각. 북한동포들에게는 너무도 절망적인 소식. 그렇다고 해서 북한인권만을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북한인권 못지않게 한반도 평화도 중요. 우리는 한편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다른 한편으로 북한인권을 말해야 함. 당시 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였고, 이 단체는 제가 창립한 한국의 대표적인 북한동포돕기운동 단체임.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친북좌파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저처럼 과거에 통일혁명당 사건에 관련되기도 했고, 독재와 싸우다 감옥도 세 번 갔고, 경실련 경제정의운동도 하고, 북한동포돕기운동도 한 사람이 나서서 젊은이들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됨. 2년을 고민하다가 탈북동포 돕기운동을 하기로 결심.  “탈북난민강제송환저지 국제켐페인”이라는 단체를 창립해서 일년에 몇 번씩 각 나라 중국대사관 앞에서 동시다발로 강제송환을 반대하는 집회를 시작.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수없이 집회를 했고 북한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 펙스를 보내어 저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압박. 실무자가 북돕기를 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해야 하는데 저 때문에 실무자의 북한방문 길이 막혔기에 이용선 사무총장이 찾아와 하소연. 할 수 없이 제가 창립자(founder)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공동대표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북한인권 운동에 나서기 시작함.
 
●언제까지 북한에 굴종하며 살 것인가?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은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함. 70년대에 박정희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해 민주주의의 유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었고, 그때 진보 기독교는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음. 그런데 그 말을 했던 진보 기독교가 지금 와서 북한주민을 보고 빵만으로 살라고 말하고 있고, 이것이야말로 이중잣대이고 북한주민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
 
●1998년 이후 북돕기를 위해 다섯 번 북한을 방문.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 만경대 김일성 생가와 김일성 동상. 그리고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몇 군데를 가야함. 그런데 나는 항상 맨 뒤에서 울면서 따라 다녔으며 아마 안내원은 제가 감격스러워 우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임. 그런데 저는 그것이 아니라 제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감옥을 세 번이나 갔었는데 지금 박정희 정권보다 백배는 더 독재인 김일성-김정일 수령독재체제 앞에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식량만 갖다 바쳐야 하는 내 신세가 너무 처량했기 때문. 
 
●저는 이명박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만큼은 확고하게 지지함. 노무현 정부는 김정일 비위 맞추기와 퍼주기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함. 저는 이 평화는 사이비 평화요, 거짓 평화라고 생각하는데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이기 때문. 진정한 평화는 한발짝이라도 인권개선을 가져오는 평화여야함. 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 남북간 평화가 깨졌나? 그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을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음. 이렇게 되자 그때부터 남북간 氣싸움이 시작됨. 북한은 이명박정부가 노무현정부 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원했고 남한은 북한이 한국을 따라오기를 원했음. 氣싸움 과정에서 북한은 두 번의 승부수를 두었으며 하나는 천안함 폭침이고 또 하나는 연평도 포격이었음.
 
●탈북난민 북송반대 운동은 반드시 승리함. 탈북난민 북송반대운동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민족운동임. 첫째는 1919년 삼일운동이고 둘째가 7,80년대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세 번째가 강제송환반대운동임. 이 운동이 통일과 직결되기 때문. 동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체코와 헝가리가 동독난민을 동독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고 서독으로 보내면서부터 시작.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가? 저는 우리국민 앞에 네 가지 과제가 있다고 생각. 역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종북좌파가 더 이상 우리나라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일. 나이든 어르신이 제일 걱정하는 점도 이점. 우리나라가 종북좌파세상이 되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불가능해짐. 둘째는 포퓰리즘 문제. 아르헨티나,브라질,체코 등 여러나라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주저 앉았는데 우리나라도 똑같은 위기 앞에 서 있음.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포퓰리즘과 싸워야 함. 특히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납세자운동이 중요. 셋째는 기득권세력의 횡포와 독점에 의해 피해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일.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고, 잘못된 재개발정책으로 원주민의 85%가 쫓겨나고, 카드수수료가 대형업소는 1.5%이지만 소상공인은 3%-4.5%인 이 불공정이 시정되어야 하고 사행산업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에 도박이 조장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전관예우도 청산되어야 함. 네 번째는 인간다운 삶, 인간다운 정책이 유지되는 일. 가난한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예산을 쓰고, 북한동포를 돕고, 조선족 동포를 포용하고,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회적 소수자의 편에 서야함.
 
●얼마 전 민간인 불법사찰문제가 불거졌을 때 MB정부가 제가 하는 시민운동을 사찰했음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됨. 무슨 일인가 보았더니 제가 정부의 재개발정책에 반대해서 체인을 감고 길거리에 드러눕는 등 극렬한 투쟁을 했기 때문. 저는 주민의 85%가 내쫓기는 잘못된 재개발 정책에 항의하다가 두 번이나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음. 
 
●저는 보수가 아님. 저는 조선족동포 권익옹호를 위해 여섯 번이나 무기한 단식을 해서 동포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한 사람. 그러나 종북(從北)좌파는 안됨. 배고파 탈북한 주민을 총살하고 3족을 멸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음. 우리가 진정으로 진보가 되려면 김정일, 김정은 편에 서지 말고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의 편에 서야함. 그것이 진정한 진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