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시민입니다. 아내가 싫어하는 짓이나 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일은 아예 안 하고 삽니다. 굳이 아내의 충고를 무시하며 제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아내와의 다툼·갈등·냉전 등으로 집안에서 분란을 일으켜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보다, 아내의 기분과 비위를 맞추며 사는 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생활하는 2~3일 동안은 집안일을 못하지만, 보통은 집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짬을 내 청소기도 돌리고, 세탁기의 빨래를 너는 것도 제몫이고, 설거지는 항상 제가 합니다. 저도 일을 하고, 아내도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지만, 그 정도 가사 분담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한 번씩 제가 고집을 부려 아내를 당황케 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것도 하루나 이틀 안에 풀곤 합니다. 제가 지나쳤으면 제가, 아내가 지나쳤으면 아내가, 각각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서로 간에 마음의 응어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불신도 생기지 않습니다. 미움도 없습니다. 마음에 상처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부부간 서로 의지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의논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또한 저는 제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를 항상 바라고 삽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을 짓밟고 사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 남을 배려하고 늘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합니다. 특히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며 살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냥 희미하고 짠 맛이 덜하더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술을 아예 안 합니다. 모태신앙 때문이기도 하지만, 항상 맨 정신으로 생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술 한 잔으로 흥을 더 낼 수 있고, 몇 잔의 술로 괴로움과 아픔을 이겨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흥을 낼 수 있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맨 정신으로 고통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술자리에는 일절 가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술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는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저보고는 술 한 잔 하러 가자는 말보다 커피 한 잔 또는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왜 마시지도 않는 술 이야기를 했냐고요? 예, 제가 비록 술은 마시지 않지만, 술을 빚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나오는 농작물 가운데, 살구와 앵두, 오디, 자두, 매실, 왕보리수 등으로 과실주를 담급니다. 그것도 30~35도의 과실주를 사용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매실청(소화불량에 좋다고 합니다), 앵두청(더위에 좋다고 합니다), 살구쨈, 왕보리수청, 산복숭아청(기침, 천식에 좋다고 합니다) 등 농축액만을 만들었습니다. 시원한 생수를 타서 마십니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더위에 지쳤을 때, 그리고 기침과 가래가 끓으면 그에 따라 선별해서 마십니다. 시골 생활 초창기, 제가 열매로 몇 가지 농축액을 담그거나 그 열매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서도 남는 열매가 있어서, 그것으로 과실주를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넘었네요. 지난해에는 과실주를 빚는데 3.6L짜리 과실주 20개를 구입했습니다. 빚은 과실주를 창고에 일정 기간 보관한 다음 열매를 걸러내고 순수 과실주만을 따라냅니다. 그리고 그 술은 제 시골집을 찾는 지인-후배도 있고, 동기도 있고, 선배도 있고, 때 묻지 않고 풋풋한 젊은이들도 있습니다-들에게 취하기 위해 마시는 용도가 아닌, 건강을 위한 약주로 조금씩 마시게끔 한 병씩 드리곤 합니다. 돈을 받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실주를 받아 흡족해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 1월 초였습니다. 6박7일 간의 일정으로 온가족이 마닐라에 다녀온 직후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박누가 선교사님의 의료 선교 봉사 등 삶의 단면을 다룬 프로그램을, 그것도 우연히 재방송으로 접하면서 진한 감동을 받았고, 그 프로그램을 노트북에 저장해 시골에서 한 번씩 보곤 했습니다. 그런 후 지난 2월, 시골로, 풋풋하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모임의 회원들이 1박2일로 놀러와 식사를 하고 약주도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에 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았습니다. 모두 5편 가운데 시간 관계상 1~2편만 보고, 나머지 3~5편은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비록 1~2편을 보았지만, 모두가 저처럼 진한 감동을 받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박 선교사님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해 보는 게 어때?’라고요. 그러자 즉석에서 ‘좋다, 괜찮다, 해 보고 싶다’는 반응이 이구동성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젊은 친구들이 인턴과 레지던트로 병원에, 그리고 약사로서 약국에, 또는 군의관으로, 직장에, 학교에 매인 몸들이라 준비가 필요할 것 같고, 그래서 앞으로 2~3년 후, 비록 즉석에서 제안하고 동의해 만들어진 계획이지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습니다. 그때 외과의사 1~2명, 내과의사 1~2명, 치과의사 1명, 한의사 1명, 약사 1~2명, 간호사 2명, 실무 진행자 1~2명 정도로 팀을 꾸려, 참가할 일행 모두, 한날한시에 6일 정도의 휴가나 말미를 내서 이틀 정도는 휴가 기분을 내고 나머지 사흘은 의료 봉사를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대략적인 계획입니다. 사실 의료 봉사에 익숙지 않은 젊은 친구들에게 일정 전체를 의료 봉사에 할애한다는 게 지나치게 빡빡할 것 같고 또한 무리일 듯싶어 거기다 약간의 여유가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요 경비는 각각 갹출하기로 했습니다. 회원 가운데 일부는 교회 출석을 하고 있지만, 또 일부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 ‘의료 선교 봉사’로 명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가족들과 동행할는지 아니면 필요 인원만 갈는지 그것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자는 데 의기투합했습니다. 주 대상은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 남성에게 버림받고 어렵게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또한 지독한 가난 때문에 의료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필리핀 사람들입니다. 2~3년 후의 계획이라 조금 막연합니다만, 모임을 가질 때마다 회비를 걷는 등 조금씩 준비를 해서 실행에 옮겨 볼 생각입니다. 뜻이 모이면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작이 어렵지 한 번 물꼬를 트면 그 길은 계속 이어지리라 확신합니다. 그 모임의 명칭이 이른바 ‘생태계 모임’으로, 모임이 꾸려진 지 꽤 됩니다.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저는 차이는 인정할망정 차별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차이로 인해 차별받는 현실에 분개하고 비판합니다. 며칠 전 필고 자유토론란에 올리려고 ‘한국인의 인종 차별 및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혹시 제 글이 본의 아니게, 필고에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더욱이 제 글을 왜곡해 이해함으로써, 상처받는 분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참자’님처럼요. 그래서 괜한 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리지 말까 하는 갈등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종 차별과 다문화 가정 문제가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 실상의 한 단면이라도 드러내 이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함께 생각하면서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갖가지 문제가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갈등과 직결됩니다. 얼핏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는 상위 1%와 그렇지 않은 99% 사이의 빈부 간 갈등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 문제를 비롯해 청년들의 실업 문제, 반값 등록금 문제, 학교 폭력 문제와 성적지상주의 그로 인한 청소년들의 자살 문제, 사교육 문제, 학력 중시 풍조, 자식들 교육 문제, 진보냐 보수냐 또는 좌빨이냐 보수꼴통이냐의 이념 문제, 고령화 문제, 소외 계층 문제, 사회적 약자 문제, 성장 우선이냐 복지 우선이냐는 노선 문제, 의료·KTX·인천공항 민영화 문제, 환경보다는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개발을 중시하는 쪽과 개발보다는 환경 보존에 무게를 두는 쪽 간의 극명하게 대립하는 문제, 원전 만능주의를 고집하는 쪽과 원전을 지양하고 대안 에너지 정책을 요구하는 쪽 사이의 대립 문제, 재개발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의 갈등 문제, FTA 문제, 수입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 언론 장악과 언론사 파업 문제, 민간인 사찰 문제, 권력층의 이권 개입과 그로 인한 비리 문제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여기에 그간 잠복돼 있다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 대표 후보로 지명된 한 이주 여성으로 인해 돌출된 인종 차별과 다문화 가정 문제까지. 사실 이런 문제들은 여러 사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쉽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이건 거기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만 제대로 파악하면 그에 맞는 처방을 제시할 수 있고, 그 처방에 따라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외도 많습니다.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은 경우 말입니다. 여러 문제가 서로 얽히고설켜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지역감정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치러진 총선에서 광주지역에 출마한 이정현과 대구지역에 출마한 김부겸에 대해 들으신 바가 있으시겠지요. 이정현은 광주지역 새누리당 후보로, 김부겸은 대구지역 민주통합당 후보로 각각 출마했습니다. 둘 다 그 지역 사람입니다. 인물과 능력도, 다른 경쟁 후보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후보 모두 지역 타파라는 의미 있는 명분에 자신을 던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두 지역의 유권자들은 유세 기간 중 두 후보의 사람됨과 자질, 경력, 지역 발전을 위한 의욕 등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었지만, 투표에서는 배제했습니다. 왜냐구요? 그 이유는 새누리당은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으로, 또 민주통합당은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으로 각각 각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새누리당 = 영남당’, ‘민주통합당 = 호남당’이란 등식이지요. 뼛속까지 박힌 이런 관념이, 이런 사고가 쉽게 바뀌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인식하듯이 이런 행태가, 이런 감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할 때에는 대부분의 사림들이 머리 따로, 손 따로 하게 됩니다. 비록 머리와 손이 함께 움직이는 용기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혹시 머리대로 투표했다가 자신이 찍은 사람이 실제로 당선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도 갖고 있는 게 사실이구요. 혹시 텃밭이 넘어가면, 그게 계기가 돼 오는 12월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감당이 안 되는 거지요. 과거에는 대놓고 ‘전라도 놈은 무조건 싫어’, ‘경상도 놈이라면 치가 떨려, 그래서 싫어’라고 표현했습니다. 1970~1980년대에 그런 식의 거친 표현을, 사람들은 입 밖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습니다. 사회 분위기 때문입니다. 대신,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음으로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마음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소위 지역감정 문제의 진화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알게 모르게 진화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바이러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항생제가 나올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항생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그러면 과학자들은 또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 해로운 바이러스를 박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항생제에 적응하면서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이러스는 발전해 왔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항생제 남용입니다. 제가 일주일에 2~3일 머무는 시골 주위에 소를 키우는 축사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돼지 축사들도 있습니다. 한우만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축사도 있지만, 우유를 얻기 위한 젖소 사육 농장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세한 젖소를 전문적으로 사육해 고기로 출하하는 축사도 있습니다. 이른바 비육우입니다. 상점에서는 ‘육우’라고 합니다. 소들도 한우건 젖소건 사람처럼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립니다. 심각한 질병에 걸릴 때에는 담당 수의사가 방문해 진단하고 처방한 대로 약을 투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오랜 사육 경험을 가진 축산농가 주인이 직접 약을 투여합니다. 심지어 출산의 경우도 주인이 직접 송아지를 받습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항생제만 투여하면 힘이 없거나 기력이 약한 소들도 보통 거뜬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숱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생제를 달고 사는 농장 주인들은 항생제의 남용과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키우던 소가 한우든 혹은 거세한 젖소든 값만 제대로 쳐 준다면 중간 판매상에게 넘기거나 도살장으로 넘깁니다. 사람들이 항생제 범벅인 쇠고기를 먹든 말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와 이 문제를 갖고 대화를 나눴던 한 수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의 항생제 투여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이루어지듯, 소들도 수의사의 처방에 따라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축사 주인이 마구 항생제를 투여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항생제를 지나치게 많이 투여한 소고기를 소비자가 먹게 되면, 소의 항생제가 사람에게 축적되고 그러면 그로 말미암아 사람의 질병을 치료할 때 축적된 항생제로 인해 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생제 투여가 많은 쇠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잡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발달한 과학을 앞세워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개발했지만, 잡초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왔고, 앞으로 계속 새롭고 강력한 제초제가 나오더라도 잡초를 박멸할 수 없다는 게 그간의 역사입니다. 그렇다 보니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잡초 때문에 생육이 부진한 작물들을 잘 자라게 하고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서 비료를 개발하고, 그에 따라 퇴비 대신 비료를 듬뿍 주는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그간 살포했던 다량의 제초제와 비료로 땅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땅을 살리려면 퇴비로 땅심을 북돋우고, 한동안 땅을 놀리면서 손으로 일일이 잡초를 제거하는 그 옛날 방식의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없는 사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앞서 언급했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진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의 원인을 나름대로 찾으려고 노력하고 최선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차선책을 강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나,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것,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혼자 힘보다는 여럿이 함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대처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 용기 있는 삶이요, 올곧은 행동이라 믿습니다.

 

 끝으로 제가 올 초 <한국인의 품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를 시작으로, <한국인 관광객, 봉입니까 아닙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사람, 어떻습니까?>, <이런 말, 어떻습니까?>, <시 한 편, 어떻습니까?>, <완득이 엄마, 이자스민 학력 위조 논란>, <한국인의 행복 지수>, <베트남의 반한 감정, 그렇다면 필리핀은?>, <아내 오미론(五味論)>, <지금 ‘뗑깡’부리고 있습니까?>, <한국인의 인종 차별과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단상>, <이자스민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입니다> 등 모두 13편의 글을 필고에 올렸습니다. 취지는 제가 올렸던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5년 가까이 필카페24와 필고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제 그 도움의 일부라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제 글이, 오히려 회원님들을 불편하게 하고, 눈살 찌푸리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면서 동시에 앞으로 필고에서의 글을 접겠습니다. 그리고 2~3년 후 의료 봉사 계획이 가시화돼 실천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때 오늘 밝힌 약속을 지킬 수 있게끔 자문을 구하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