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남중국해 분쟁의 거센 파도가 중국-필리핀 관계를 '일촉즉발'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중국은 자국민들의 필리핀 여행을 중단시키는 등 경제적 압박을 시작했다.

양국 선박이 남중국해의 분쟁 지역인 스카보러섬(중국명 황옌다오)을 둘러싸고 한달 넘게 대치 중인 가운데,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지난주까지 스카보러섬 해역에는 14척의 중국 선박이 들어와 있었으나 이번주 들어 33척으로 대폭 늘었다고 필리핀 정부의 집계를 인용해 홍콩 <명보>가 10일 보도했다. 중국 어업지도선들은 필리핀 어선들이 스카보러섬 해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사태는 지난 4월8일 필리핀 군함이 스카보러섬 해역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 선원들을 단속하려 하고, 중국이 순시선을 파견해 이를 막아서면서 시작됐다.

 

중국
수입 차단·어업 지도선 확대
"핵심 이익에 도전 용납 안돼"


중국은 필리핀에 대한 경제적 압박 카드도 꺼내들었다. 중국의 주요 여행사들은 필리핀으로 가는 단체여행을 중단해 중국인들의 필리핀 관광이 사실상 끊긴 상태라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국가질검총국은 9일 사이트에 필리핀에서 수입되는 과일에서 박테리아가 자주 발견돼 검역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바나나 수출의 절반이 중국으로 향할 정도로 중국은 주요 시장이다.

총성 없는 '말의 전쟁'도 격렬해지고 있다. <환구시보>는 10일 1면에서 '필리핀이 전쟁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고, <신화통신>은 "중국은 이웃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길 원하지만, 핵심이익의 최저선에 대한 도전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의 푸잉 부부장은 8일 알렉스 추아 주중 필리핀 대리대사를 불러 "필리핀의 긴장 고조 행위에 대응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필리핀
정치인·민간단체 등 항의 시위
"무력 충돌 땐 미 지원받을 것"


필리핀 정치가들과 민간단체들은 11일 국내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등 각국의 중국 대사관·영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알베르토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은 성명을 발표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필리핀을 지원할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은 지난달 16~27일 미군과 함께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해상훈련을 실시하는 등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강화해 왔다.

싱가포르국립대학 양팡 교수는 <비비시>(BBC) 방송 중문판에 "1974년 중국과 베트남이 시사군도를 둘러싸고 무장충돌을 벌인 것처럼, 이번에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 소규모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필리핀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고,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에 경계심을 가진 상태에서 중국은 충돌이 확대되는 것은 최대한 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