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 14 -
혼자 달리기...
경제적인 기반은 어느정도 생긴셈이지만... 난 여전히 아내와 아이를 찾으러 갈 자신이 없었다. 벌레 쳐다보듯, 날 보시면서 진저리를 치시던 장모의 얼굴이 내 마음속엔 또렷히 각인되어 나의 손과발을 꽁꽁 묶어 버린 것이다.
한판...그래! 한판이면 끝난다. 이돈을 한판만 제대로 튀길 수만 있다면...
호구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구라를 칠만한 재주도 없거니와, 설령 재주가 있더라도 구라는 절대로 안된다." 철저히 실화로만 게임을 해서 90% 이상 이길 수 있는 그런 물반 고기반의 어장이 내겐 필요했다. 보름여가 지났을까? 여의도에서 룸싸롱을 운영하던 친구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론 이 비가 영영 그치지않고 내려서 폭우로 변하고 홍수로 범람 한다면?... 폭우가 홍수로 번져 논과 밭이 다 떠내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차피 내디딘 한발 이었다.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지워버렸다.
여의도... 뉴욕의 맨하탄을 모델로 만든 금융가의 중심!!!
그곳엔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하루에도 수백, 수천억의 매매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돈 많은 유한마담들, 강남의 졸부들, 한푼 두푼 남편의 박봉을 쪼개 모은 그야말로 피같은 종잣돈들을 움켜쥔 까칠한 주부들의 돈 까지도 주식의 "주"자도 모르면서 "주식 하기만하면 돈 번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여의도의 증권가로 공수되곤했다. 친구녀석이 내게 소개 시켜준 물 좋은 호구들이란 바로 증권사의 직원들 이었다. 친구의 말을 빌자면 당시의 증권사 직원들이 얼마나 경기가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매주 거의 이삼일 이상은 친구의 업소로 밀려와 술들을 퍼마시고 간다고 했다. 그것도 수백만원어치의 술값을 전혀 부담없이...
여담이지만,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후 난 주식공부에 수년간 매달린 적이 있는데... 주식이란 통계와 분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지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주식투자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철저한 자기관리와 통제다. 그렇다면 그때 그 직원들은 그렇게 거의 매일을 술독에 빠져들 지냈으면서 과연 분석은 언제하고 얼마만큼 명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고객들의 피같은 돈을 거래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에 혼자 울화를 삭인 적이 있기도 했다.
아무튼 난 친구의 소개를 받아들였다. 친구 가게의 밀실을 약간 개조한 룸에서 게임은 시작이 됐다. 판이 판인 만큼 타임비나 데라는 전혀 없었고, 그날의 승자가 장소와 음료등의 제공비를 적당히(?) 건네면 됐다. 여기서의 적당히란 금액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우바둑이 일,삼만 풀 게임이었다. 패턴 베팅은 노다이에 의무적으로 보스부터 만에 삼만, 그리고 십만까지니 기본 앤티가 십만원 출발인 셈이다. 판이 몇판 돌다보니 귀찮다고들 아예 기본 엔티 한장씩(십만원) 박아넣고 치다가 나중엔 그나마도 엔티 십만씩에 패턴 베팅도 따로 치는 광란의 도가니가 이어졌다. 저녁 컷까지 가려면 광분질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그들과의 판에서 거의 기천 가까이 넣어야 하는 판도 허다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돈을 돈같이 여기질 않는, 그래서 더 무서운 상대들과의 일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런 게임에 어지간히 익숙해진 카펜더들이었고 난 데모도나 다름없는 어리버리였으니...
게임 이틀 전, 친구의 소스로 난 만원권으로 천만원을, 십만원권 자기앞 수표로 육천을 준비했다. 나머지 2억여원의 돈은 통장에 고스란히 담은채 자켓의 안주머니에 찔러넣고...
게임 전날...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선배의 가게에 들러 간단히 한잔만 한다는 게 밤을 새워 퍼마시고야 말았다. 긴장탓인지 취할만큼은 아니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을 것이다. 아침은 해장국 국물만 몇술로 간단히 때우고 사우나에 들러 한바탕 땀을 뽑고나니 어느정도 컨디션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두어번의 양치질에도 뿜어져 나오는 술 냄새와 간간히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기 외에는...
저녁 여섯시... 친구의 가게에 도착하니 맞으러 나온 친구가 보자마자 코를 움켜쥐며 "너 어제 술 마셨냐?" 묻더니 혀를 끌끌 찬다. 난 그저 히죽~웃어주기만 했다.
문제의 룸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선수 두엇을 소개시켜 준다. 넉넉한 삶에 이골이 난 놈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객장에서 무수한 고객들을 상대해봐서일지... 상당히 당당하고 자연스레 손을 내민다. 그런 그들의 포즈 조차도 내겐 긴장으로 다가왔다. 기가 먼저 죽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게임 전 간단히 요기거리가 제공된 걸 먹고들 있었나보다. 보니 전복죽이다. "정사장! 나도 한그룻 줘바라. 곱배기로!" 흘끔! 나를 돌아다본다. 여섯시 반경, 선수들이 다 모였다. 서로 다들 구면인터라 보자마자 악수들을 하고 어깨를 툭 치기도 하는 폼새들이 눈에 거슬리고 슬며시 또 야코가 죽을려고 한다.
심호흡 한번 길게 하고 친구를 불렀다. "정사장 나 두통이 심한테 게보린 있으면 한알만 먹자." 잠시 양해를 구하고 그 방에서 나와 다른 룸으로 들어가 앉은 내게 친구가 이내 두통약을 갖고 왔다. "야! 그건 됐고, 나 술 한잔만 주라"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냐며 펄쩍뛰는 친구앞에서 난 또한번 씨익~하고 웃어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친구는 인터폰을 눌렀다. "야! 나 마시던 술 남은 거 있지? 그거 좀 갖고와라!" <레미마틴> 독한 코냑 이었다... 약 먹으라고 가져온 머그잔에 가득 한컵을 따라 숨도 안쉬고 들이켰다. 그리고 담배 한대를 피워물자 거짓말처럼 마음의 동요가 가셨다. 이제 남은 건 얼마나 많은 적군을 무자비하게 도륙을 내고 전리품을 회수하느냐였다. 난 그렇게 속으로 자기최면을 건 것이다. 패배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밀실로 돌아가 사과를 하고 자리에 앉자 판은 돌기 시작했다. 첫판부터 난 무차별 돈질을 했다. 탐색전이라 내 스타일을 파악하려고 그랬는지 몇판은 내 독주로 돌아갔다. 하지만...
패턴 깨끗한 세븐 메이드(1.2.3.7)! 마바리들이라는 게 더 문제였다. 한넘이 비바람 맞으며 들어와 저녁 땁컷 따더니 식스 메이드로 판돈을 긁어 간다. 약이 조금 치밀어 오른다. 그 판을 시작으로 카드가 꼬이기 시작했다. 4연속인가? 5연속 2등카드...
누군가 말했다.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에서의 2등은 준우승이라는 타이틀이라도 남지만, 포커판의 2등이란 최악의 패일뿐이다" 내가 그랬다. 준비해간 현금과 수표가 거덜이 났다. 눈앞이 하얗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뚜껑만 잔뜩 열렸고, 내색을 할순 없어서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는 나...
속주머니의 통장을 꺼내 친구에게 건넸다. "반만 현찰로 갖다주라.." 친구는 말릴 엄두도 안나는지, 몇초간인가...내 얼굴을 잠시 응시하더니, 본인이 보증을 서겠다면서 선수들의 양해를 구한 뒤, 통장을 가져가고 일억의 칩으로 대체해 주었다.
이젠 정말 빼도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그판에 내 모든 인생을 걸 수밖엔 없었다!!!
또 한번 잠시 양해를 구하고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타올로 얼굴을 닦으면서, 물끄러미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답이 나왔다. 난 페이스를 잃고 있었다. 무리하게 레이스질에 동참을 했고, 무리하게 확인질을 했던 것이다.
재입장하자마자 난 달라져 있었다. 패턴 레이스는 어김없이 내가 주도를 했지만, 컷트부터 코파기로 갔다. 패턴 5 위론 무조건 컷에, 패턴 안경메이드 이상은 무조건 버렸고, 더이상의 블러핑은 자제를 했다. 두판만 먹자! 그것도 확실한 승리여야 한다. 불과 열댓판이 흘렀을까? 제대로 한판을 먹어왔다. 아침 컷후의 스테이집(1.2.3.5)에 난 점심 컷후의 골프를 잡았고, 역시 또 한집이 점심 컷후에 세븐 메이드 였다. 그 한판으로 난 본전을 찾고도 몇백개인가를 이기고 가게됐고, 다음판 패턴 식스 메이드로 끝까지 따라와 역시 식스메이드를 건진 같은 넘에게 탑으로 이기게 됐다. 그리고 나서 서너판 후 부터인가? 비슷한 양상들이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불 붙듯이 카드가 올라와 줬다. 마침내 한넘이 손을 털더니 당좌수표를 한장 꺼내놓는다. 액면가가 내가 그날 가져간 돈보다 두배 이상 큰 거액이었다. 약이 바짝 오른 것이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차피 그놈은 아까의 나만큼이나 뚜껑이 열려 있었으니... 그와 내가 다른 건 난 빨리 회복을 했다는 것이고, 그놈은 나보다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었다.
그날 난 골프만 여섯번을 잡았다. 워낙 마바리들이라 세븐이나 안경정도만 잡아도 돈질을 해대던 치들이 내가 워낙 잘 맞으니까 나랑 겜블만 붙으면 꽁지들을 사리기 바빴다. 진카든 블러핑이든 이젠 돈질만 하면 다섯판에 네판은 내것이었다. 난 그저...중간에 걸친 패이거나, 블러핑일때 상대방이 되빠꾸를 날리면 마음 편하게 죽어만 주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나머진 시간이 다 해결해줄 일이었다. 그렇지만 상대가 거액의 당좌까지 꺼내든 이상, 더이상의 욕심은 리스크란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선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결단이리라...
난 물 한컵을 부탁하는 척 하면서 친구넘에게 슬그머니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녀석의 허겁지겁 액션으로 취하는 별 무리없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히려 녀석들은 안도하는 표정들도 있었다. 대략 내가 가져간 금액의 한배 반 이상을 이기고 나왔다. 친구가 빌려준 보스턴 백에 현금과 수표등이 가득 담겼다. 차안으로 함께 자리를 옮긴 친구에게 "야! 나 뭐 해볼라구 그런다. 그러니 조금만 받아라" 백개짜리 수표 열장을 건넸더니, 친구넘은 굳이 마다를 한다. 의아해하는 내게 상체를 바짝 들이대더니 녀석이 말을 이었다.
"장현아! 너 내 가게 인수 안할래?"..."왜? 니네 가게 장사 잘된다고 일대에 소문이 쏴~하던데..."..."응~나 영등포 선배분이랑 매니지먼트를 하려고 준비중이거든."
매니지먼트? 되묻는 내게 녀석이 또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그게 요즘 대세인데, 애들 제대로 키워서 한방만 터트리면 강남에 5,6층 짜리 건물 한채는 너끈히 세울수 있다." 구미가 동했다.
잠시 담배를 한대 태우고 나서 난 조금은 흥분된 톤으로 말을 건넸다.
"야! 그거 나도 같이 한번 해보자. 나도 투자할란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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