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

 

좋은 일 뒤엔 늘 액운이 따르는가 보다. 제대로 된 첫번째 사업에 미역국을 마시고도 난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평정을 잃치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썼던 것 같다. 자라오면서 늘 내 마음 속에 담아온 꿈이란게 뭐였던가!... 그저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빠로 살고파 하지 않았던가!... 난 지금 그 꿈을 이룬 것이 아니던가!... 

 

풍요롭진 않았지만 영업을 마치고 동이 터올 무렵 귀가를 하노라면 그 시간에 맞춰 아내가 큰길가 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겁 많은 내 아내가 그 새벽시간에 나를 마중 나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딸아이 방문 먼저 열면 마치 동화 속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처럼 너무도 이쁜 내 딸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더이상의 욕심이 생기질 않았다. 빚이야 평생이 걸릴지언정 갚으면 그만이다. 다만 지금의 이 행복이 영원으로 이어지기만을 난 바라고 또 바랬다.

 

생각보다도 가게의 영업이 그럭저럭 현상유지를 해주었기에 조금씩이나마 빚을 갚아가고 있었고, 처갓집 식구들과의 관계는 탄력을 받은 듯,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세상 살맛이 났다.

 

무엇보다도 딸아이의 작용이 컸다. 내딸은 유난히 피부가 뽀얗고 하얗다. 하얀 드레스를 입혀 밖엘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한번씩은 쳐다보면서 "아이가 너무 이뻐요"라며 칭찬을 해주거나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일쑤였다. 몇년이 지난 후에도 아내와 난 가끔 농담을 하면서 웃어대곤 했다. 아마도 아빠와 엄마의 열성 인자는 전혀 물려받지 않고 최고 우성 인자만을 물려 받은 게 내딸일 거라고... 특히 피아노에 소질이 있었던지 피아노 학원엘 보낸지 일년여 후, 학원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들을 따로 만나뵙고 싶다면서...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그 후로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까지 딸아이는 피아노에 묻혀 자라게 된다.

 

딸아이를 보러 오셨다며 처음 집에 발을 들이신 장모님은 그 후론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주셨다. 오실때마다 딸아이의 옷가지니 인형이니를 바리바리 사들고 오시더니 간혹 굴비셋트나 인삼을 저며 담은 토종꿀등을 싸들고 오셔서 슬그머니 아내에게 밀어주고 가시는 일이 잦아지셨다. 그래도 맏사위라고, 맏사위를 먹이라고...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아내는 두번째 임신을 했다. 두번째 아이가 아들이건 딸이건 전혀 상관 없었다. 세상이 다 내것인양 기쁘기만 했다. 하루에 두갑, 세갑씩 피워대던 줄담배를 끊기로 결심하고 금연에 들어갔다. 산모인 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이젠 정말로 평범한 야인의 길로도 만족하며 살수 있겠다'는 만족감에 난 하루하루가 행복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 최대의 시련이 악마의 손길과도 같이 나와 내 가족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체, 난 마냥 행복에 도취해 내일을 꿈꾸며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장래만을 기약하고 있었다.

 

내 가게가 위치하던 당시의 송파구 신천동은 방배동 유흥업소들이 한물 가면서 새로이 떠오른 신흥 상권이었다. 당연하게도 전국의 건달입네, 식구입네를 자청하는 군소 조직들이 신천동 일대의 여기저기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전주 덕진파, 전남 영광파, 정읍 썬나이트파, 광주 학동파, 광명 소하동파... 난 당시 동대문 꼬맹이 두어 넘을 데려다가 가게의 영업을 맡기고 있었다.

어느날 동네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각 조직들간의 세력확장 싸움으로 답을 내린 경찰과 검찰에선 그 일대에 후리가리(단속)를 띄웠고 업소마다 초 비상이 걸렸다.

 

미짜(미성년자) 아가씨들이 매상의 핵심을 이루던 업소들은 앞다퉈 무기한 영업정지를 감해했고, 나또한 그에 편승해 당분간 가게 문을 닫을 수 밖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난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예전 바닥의 선배들이 어차피 게임 할거라면 어려운 후배 하나 도와주자면서 내 가게에 와서 게임을 놀아주기로 했다. 로우바둑이 오천풀 정도의 약소한(?) 게임 이었으나... 하룻밤 데라만 이백 가까이 떨어질때도 허다했다.

 

가게 문을 닫고 게임을 돌린지 근 열흘 쯤이나 됐을까?... 평소 게임하러 자주 오던 카센터 사장넘의 소개로 새 멤버 두어넘이 게임을 하러 왔다. 머리엔 무스인지, 왁스인지를 덕지덕지 쳐바르고, 올때 마다 차가 바뀌었다. 조금은 찜찜했지만... 어차피 다들 내겐 좋은 손님들 이었다. 가뜩이나 녀석들은 매너까지 괜찮았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놀러와서 올때마다 이,삼백개쯤은 빠트리고들 가곤 했지만, 전혀 뒷끝이 없었다. 녀석들이 내 가게에 게임을 하러 온지 몇일이 지났을때, 게임 도중 올인을 당하자 백만원짜리 수표 두장을 꺼내더니 바꿔 달라기에 조회 후 별 문제가 없길래 바로 환전을 해줬다. 당연히 10%의 수수료는 옵션이었고...

 

그후... 이녀석들의 딱지(수표)교환이 잦아졌다. 어느날인가...난 백만원짜리 수표 넉장을 내민 그들에게 현찰 320을 건네줬다. 이번엔 20%의 수수료를 공제한 것이었다. 돈을 세어본 한넘이 날 의아하게 쳐다보길래 그냥 씨익~하고 웃어줬다. 둘중의 하나였다. 툭하면 차가 자주 바뀌고, 일주일에 거의 5,6백 이상을 잃는 날이 비일비재 한데도 거의 동요들이 없는 녀석들... 재벌 2세가 아니라면 범죄꾼들 이었다. 내 짐작은 후자에 가까웠다. 재벌 2세쯤 되는 넘들이라면 고작 송파구 따위에 게임을 하러 올리가 없었다.

 

잠시 내 얼굴을 응시하던 녀석 중 한 넘이 맞받아 씨익~하고 쪼갰다. 무언 중에도 내 짐작에 수긍을 했던 것이다. 

 

"눈치 빠르네~ 난 범죄자요..." 그 녀석 맞빡에 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