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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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나나

 

필리핀에서 흔한 과일 중의 하나가 바나나이죠.

길이나 시장이나 널려 있는 것이 바나나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게는 특별한 바나나가 있습니다.

저희 집 앞 마당에 바나나가 열렸거든요.

 

마당 한 구석에서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바나나는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연초록의 생명력 있는 빛깔로

넓찍한 잎을 볼 때마다

화려한 꽃 보다도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언제 자랐는지 아이에서 갑자기 어른이 된 듯 쑥 컸습니다.

조금 짙어진 초록으로 아름답더니

위쪽에 바나나 열매가 조그맣게 열렸습니다.

 

길에서 보던 바나나나 산에서 보던 바나나 하고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우리집 마당에서 바나나가 자란다...... 생각만 해도 풋풋하지 않습니까?

바나나 한 송이가 얼마나 커 지는지 아시죠?

한 열명이 매 달려 먹어도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로 큽니다.

수확해서 함께 먹을 날만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줄기가 자라고 잎이 자랄때는 쑥쑥 크더니

열매는 참 더딥니다.

익어가나 자주 보는데

영 바나나 나무가 볼품이 없어져 갑니다.

이파리는 누렇게 변색이 되면서 너덜거립니다.

줄기도 시큼시큼해 졌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확 짤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관을 해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열매 한 송이 맺기 위해 바나나가 온 생명을 소진하고 있나 봅니다.

지금까지 봐 온 흔해 빠진 바나나들이 수많은 바나나 나무가 생명을 다 소진하고 남긴 열매다 생각하면 숙연해 지기도 합니다.

 

바나나 나무는 한번 열매 맺으면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죠.

꽃이 필 수 없을 정도로 몸통도 잎도 상했으니 당연하겠습니다.

 

오늘 보니까 늙어가는 바나나 나무 곁에 새 순이 제법 자라 올라 왔더군요.

그것도 세 군데나 말이죠.

바나나 익어서 수확하면 결국은 늙은 바나나 나무는 제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배가 된 생명으로 계속 생명을 이어 가겠구나 생각하면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늙고 싶지 않고, 죽고 싶지 않아서 갖은 애를 쓰지만

늙고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 진 것이겠지요.

오히려 살아 있는 동안 열매 맺고 어찌하든지 새생명을 일으키고자 애쓰는 것이

더 지혜로운 삶은 아닐지..

 

정원 한 귀퉁이의 바나나는 어리석은 인간들조차 깨닫지 못한 영생의 비밀을 살고 있는가 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늙고 죽어가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세월은 흘러 가는데 내 삶에 열매가 없고

나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자가 없는 것이 진짜로 서러운 것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