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 18 -
사회 보호법...
전화를 받고 사색이 되어 달려온 아내에게 또다시 철창 안의 내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펑펑 눈물만 흘리는 아내를 보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어 버렸다. "걱정마! 두어달이면 재판 받고 바로 나가니까... 알았지?" 아내는 그때서야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정말? 정말이지?" 하고 물어 왔다. 당연히 그렇게 될줄로만 믿었다.
기껏 폭력 사건이래야 피해자와 합의가 되고, 고소취하장만 받아내면 나머진 변호사가 알아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쯤으로 빼내줄 테니까...
다음 날 부터 아내의 얼굴은 유치장 면회실 안에서나 볼수가 있었다. 구속영장이 떨어지고 몇일이 지나자, 주변 지인들이 건네주는 희망적인 얘기도 있고, 또 나의 확신도 있다보니 아내의 얼굴은 수심이 많이 가셨고, 간혹 내가 우스운 말이라도 건네면 미소로 답해 주기도 했다.
검찰로 송치되기 전날... 면회를 온 아내는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아기 낳기 전엔 나올 수 있는거지? 이번엔 꼭 오빠가 지켜보는데서 아이를 낳고 싶어. 저번엔 혼자서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울컥! 가슴속 한켠이 미어터질 듯 아파 왔지만, 난 환하게 웃어줬다. "그래! 길어야 두달에서 석달이야. 아무 걱정말고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돼. 이번엔 내가 당신 곁에 꼭 같이 있어줄께. 미안해... 널 또 혼자 있게 해서..." 그렇지만 그날 아내와의 그 약속은 내가 평생을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어 간다는 걸, 나도 아내도 모르고 있었다.
다음날 검찰로 송치 되어 검사실에서 조서를 받는 도중... 난 일이 묘하게 꼬여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저 <폭력 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이상,이하의 수준도 아닌 사건을 살인미수로 몰아가고 있었다. 당시 내가 정x주를 잡아다 놓고 후배들에게 "이새끼 광명시 야산에다 파묻어 버려!"라는 지시를 내린 것을 정x주란 놈이 똑똑히 들었다고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뜨아해 하는 내 앞으로 검사실 계장이란 자가 놈의 진술서를 툭 밀어놓는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설령 공갈로라도 난 결코 그런 말을 하지않았다. 하물며 지시라니... 난 완강히 부인 했다.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우리쪽을 지켜보던 삼십대 초, 중반쯤의 검사가 "저 친구 질이 아주 나쁜 친구구만~ 무조건 부인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나! 순순히 시인하고 동정 받으라구!" 말끝에 유들유들한 권위가 잔뜩 배어 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쓴웃음만 나왔다.
그런 나를 보면서 심기가 상했는지 검사가 한마디 더 뱉었다. "저사람 전과랑, 예전 재판기록들 다 뽑아 보세요! 내가 직접 조서 받을테니..." 다음날 부터 내 자신과 인내심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매일 아침 여덟시 반경이면 교도관들이 나를 부르러 왔다. 나가자마자 수갑과 포승줄에 꽁꽁 묶여 호송버스를 타고 검찰청으로 향한다. 그나마 도착하면 바로 조서를 받는 것도 아니다. 자기들 볼일 다 보고, 밥 먹을 거 다 먹고 나서 오후 늦게나 느즈막한 시간에 여흥거리 삼듯 나를 부른다.
난 그때까진 꼼짝없이 묶인 채로 검찰청 내 대기실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있다가 식사때가 되면 수갑찬 손으로 개밥을 먹어야 했고, 또다시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열흘동안 토,일요일을 빼곤 꼬박 그짓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열흘째 되던 날, 비둘기장(검찰청)으로 불려간 난, 그날따라 점심시간 전에 호출해주는 것만으로도 화들짝 반가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열흘간 난 이미 길들여진 것이다. 너무도 단순한 그들의 심리전에...
"어이! 이젠 기소 붙을 날도 몇일 안남았는데 슬슬 정리를 하자구." 의자에 앉혀지자마자, 나같은 놈들은 하도 많이 상대해봐서 이골이 났다는 표정으로 계장이란 자가 주절 거렸다.
"그러니까 자네는 죽여버리란 말은 절대로 한적이 없다는 거지?" "같은 말을 몇번이나 반복해야 합니까?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조서는 다 꾸민걸로 아는데 또 조서를 꾸미는 겁니까?" 이런 씨발~ 또다시, 똑같은 질문질 이었다.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야 이사람아! 물으면 묻는데로 대답만 하면되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검사나리께서 버럭 고함을 치더니 이내 돌아서서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는 걸 내가 듣고 말았다.
"아무튼 무식하고 못배워 처먹은 새끼들이 기집 장사나 해 처먹고 지랄들을 한다니까..." 이런 좆같이... 뚜껑이 제대로 열리고야 말았다. 결국 나도 되빠꾸를 날려버렸다. "이것보슈, 검사님! 아무리봐도 나랑 비슷한 연배 같은데 말이 좀 지나친거 아닙니까? 그리고 못배워 처먹은 놈이 술장사 해처먹는데 검사님이 뭐 보태준거 있습니까? 아니면 내 가게 와서 술 한잔 팔아준 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죄 지은 놈이라곤 해도 인격까지 무시하진 맙시다.
" 찬물을 끼얹은 듯 검사실이 조용해졌나 싶더니 마주앉은 계장이란 자가 벌떡 일어나, 내 따귀를 후려 갈겼다. "이 자식이 죄 짓고 온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난 완전히 이성을 잃어 버렸다. 벌떡 일어났지만 꽁꽁 묶인 몸에, 사태를 짐작한 교도관의 제지까지 겹쳐 물리적인 아무런 것도 행사할 수가 없었다. 그게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으아악! 이런 씨발넘들이 싸대기를 쳐?" 괴성을 지르면서 앞의 책상을 엎어버렸다. 컴퓨터 모니터가 엎어지고, 서류 파일들이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졌다. 분이 덜풀린 난 계장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다. 교도관들의 제지에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향해 이를 가는 검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악질새끼, 두고봐라! 넌 내가 내 이름 석자를 걸고서라도 똘똘 말아서 한동안 세상 빛 못보게 해줄테니..." 어차피 막가는 판이었다. 그에 질세라 나도 맞받아 소리를 질러 버렸다. "맘대로 해봐, 이 씨발넘들아! 징역 평생 사는 것도 아니고, 빵 살고 나가는 날, 니들은 물론이고 니들 주변의 개새끼들까지 자근자근 씹어 죽여줄 테니까..."
결국 마무리 조서는 받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내 앞엔 소란에 놀란 다른 방의 검사, 직원들이 뛰어와 어이가 없다는 표정들을 지으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소란 피우는 우리 안의 동물을 신기한 듯 바라보듯이...
더이상은 검찰에서 날 부르지 않았다. 그래도 난 별로 우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은 죄 만큼의 국가와 법에서 정해 놓은 양형이란 틀이 있으므로...
몇일 후, 구치소 배방계의(재소자들의 사방배치 담당을 맡은 부서) 아는 부장이 사방으로 날 찾아왔다.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내심 이유모를 불안을 감춘채 "웬일이유? 부장님이 여기까지?" 주저주저 그가 내민 손엔 내 사건 공소 서류와 함께 진한 녹색의 수번이 들려 있었다.
녹색 수번!!! 보호 감호를 청구 받은 재소자만의 인식 표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제서야 검사가 악에 받쳐 질러대던 소리가 떠올랐다. 결국 이거였던 것이다.
보호감호... 동종 범죄로 3회이상, 합친 형기 5년 이상을 복역한 자에 한해, 그 죄질이 나쁘거나 또다시 동종 범죄의 재범이 우려되는 자들만을 추려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 수용함으로써 사회를 보호키 위해 만들어졌다는 5공 군부 시대의 작품!!!
자신이 받은 징역을 다 살고 나서도 부과된 보호감호 형기인 7년을 더 복역해야 한다...
심장이 마구 요동을 치고, 다리가 후들 거렸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당연했다. 앞으로 최소한 십년여 징역을 예약 받은 자의 입에서 무슨 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점심도, 저녁밥도 거른 채... 멍하니 앉아 창밖만 응시를 했던 것 같다. 이젠 모든 것이 다 끝 이었다. 내 인생은 다 끝난 것이다. 옆에선 감히 아무도 말을 걸어올 엄두도 못낸다.
취침시간... 잠자리에 누워 한동안 천장만 응시하는데, 불현듯 그제서야 아내와 딸아이가 떠올랐다.
'이젠 마누라도, 딸아이도... 머지않아 태어 날 둘째 아이와도 다 끝난 거다. 이젠 정말로 다신 볼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렇게 해 주어야만 한다...'
순간 절망이 온몸을 엄습 해오면서 귓가로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 썼다. 눈물이 쉬이 멈출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난 뺑끼통(화장실)으로 허적허적 걸어 들어갔다. 입을 틀어막고 꺽,꺽 거리며 긴 시간을 그렇게 소리없는 통곡을 했다.
애써 울음 소리를 죽였지만, 방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쉽게 잠이 들순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나 나, 모두들 갇힌 자의 아픔과 비애를 함께 겪고 있는 처지였기에...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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