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주식, 그리고...

 

얼마만에 돌아온 내 가정 이던가...

딸아인 여전히 크레믈린 처럼 과묵에, 무표정으로 날 낯설어 했다. 본래 워낙 말수가 적은 아이다 보니, 한창 시절의 윗 선배를 대하는 것보다도 딸 아이가 더 어렵게 느껴질때도 있곤 하다. 좋아하는 음식도 가히 엽기(?) 수준이다. 피아노 전국대회 우승을 할 정도로 예술적인 기질이 뛰어난 딸아이의 음식 취향치곤 상당히 컨츄리 하다. 

 

다른 집 그또래의 아이들처럼 피자에 햄버거를 좋아하기 보다는 사골국에 밥 말아먹기, 돼지껍데기 볶음, 막창구이 등을 더 좋아하는 내 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런지... ㅡ.ㅡ

아들 녀석은 딸아이완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아들넘은 감정을 드러내길 좋아한다. 속마음을 갈무리 하질 못한다. 아빠를 보자 첫날만 조금 낯설어 하더니 둘쨋날 부터는 아예 내 옆에서 떠나질 않으려 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컴퓨터 게임을 할때도 내가 곁에 붙어 앉아 있어야만 한다. 때론 응원 안해준다고 구박까지... 

 

이 녀석 역시 음식 취향은 지 아빠나 누나처럼 컨츄리 스타일 이다. 된장찌개나 계란탕만 있으면 한공기 뚝딱!.. 아들은 내가 아내에게 하는 표현 처럼 "의리의 싸나이 돌쇠"다. 겁도 많고 정도 많은 성격에 툭하면 어디서 맞고 들어오는 것까지도 어린 날의 나를 보는듯 하다. 속상한 아내가 "누가 때리더냐"고 아무리 다그쳐 물어도 아들은 절대로 고자질하는 법이 없단다. 

 

자식넘이 누구한테 맞고 다니는 것만큼 부모에게 속상한 일은 없다. 하지만 난 자신을 때린 누군가를 감춰 주려는 아들의 심성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온지 몇일이 지났을까?... 아내로 부터 가슴 시린 얘기를 전해 듣게 됐다. 아들넘이 툭하면 "아빠! 나 변신 로보트 사줘. 아빠, 나 저 게임 캐쉬 끊어줘!" 졸라대는 걸 그저 묵묵히 보기만 하던 딸 아이가 내가 외출 했을때 아들넘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단다. 울어대는 아들넘을 목격한 아내가 딸아이 한테 왜 동생을 때렸냐고 나무랐더니 한동안 침묵으로만 일관 하던 딸이 계속되는 아내의 추긍에 한마디 툭 던지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란다. "아빠 돈 없는데 것도 모르고 바보가 자꾸 아빠한테 졸라대잖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이 따끔 하면서 콧날이 시큰해옴을 느꼈다. '그래! 역시 내 딸 이로구나!' 딸네미는 겉으로 내색만 안했을 뿐, 역시나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날에야 재삼 알게 됐다.

내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가장 으로서 의무와 책임감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빨리 뭔가 해야한다'라는 생각은 간절 했지만... 지난 5년간의 갭이 너무도 컸다.

 

 게다가 내 징역 수발을 들던 의동생 녀석이 사고로 징역살이를 하고, 출소 후 면회를 와서 먹고 살아갈 길에 막막해 하길래 난 출소 후의 안배로 아내에게 관리를 맡겼던 일억여원과 청주 선배의 돈 일억 삼천을 변통해 주었고, 동생은 그 돈으로 봉천동과 신림동 일대에서 소액 대출 사무실을 차리게 됐다. 일년여, 잘 굴러가는가 싶더니, 전문적인 대출 사기꾼에게 나랑 선배의 돈, 녀석의 친모께서 이리저리 융통해준 돈까지 무려 오억이 넘는 돈을 일시에 사기를 당해 버리는 사건이 생겼다. 

 

건설업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고, 조사를 해보니 놈의 큰형은 경기도 부천에서 수백억대의 재산가였고, 둘째 형이란 사람은 인천 지법의 검사 였다고 한다. 사기꾼 놈은 처음엔 소액부터 빌려가 이자에 원금을 꼬박꼬박 갚으며 신용을 쌓는가 싶더니 천천히 금액을 올려 몇천 단위로 대출을 받아가기 시작했단다. 

 

그 돈 역시 두어달만에 시원하게 결제를 하길래 동생은 그 놈을 믿을 수 밖에 없었고, 후에, 몇억이란 돈을 한몫에 빌려갈때는 부부끼리 서로 연대보증까지 서는 등의 치밀함까지 보였다고 했다. 질 나쁜 사기꾼에게 제대로 당한 것이다. 동생넘만 당한게 아니었다.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몇곳의 사채 사무실을 털어 잠수를 타버린 것이다. 

 

말이 변통이지 출소하면 동생넘과 둘이서 뭔가 다시 시작을 해보려던 발판 같은 돈을 그렇게 허무하게 날리고 동생은 몇달 간의 수배끝에 사기꾼의 아내가 자식들과 사는 집을 찾아갔지만, 그런 부류의 작자들이 흔히 그렇듯 배째라 라는 식으로 나왔고, 결국 동생넘은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됐다. 

 

결과는 뻔했다. 결국 원금이라도 찾아 내겠다던 동생은 그놈들로 인해 두번의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 동생놈의 친모(나의 수양 어머니)께서는 고소취하 라도 받을 마음에 사기꾼 아내를 찾아가 악다구니도 쓰고, 애걸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검사라는 둘째 형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구명을 요구했지만 냉정하게 외면 당하셨다고 한다. "당신 동생 때문에 수십여명의 피해자들이 생겼고, 이제 내 아들이 구속까지 됐으니 내 아들 살려내라!"며 울고불고 소리치시던 어머님은 검사실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죄(?)로 직결재판에 회부 되기까지 했고...

 

참으로 불공평 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었다. 힘 없고, 빽 없는 게 죄가 되는 세상 이었다. 높은 양반들께 간절히 몇 통의 탄원서를 올려도 보았지만 울림 없는 메아리만 허무하게 돌아왔을뿐...

 

어쩔 수 없이 난 여윳돈으로만 승부를 걸겠다는 다짐 하에 시작 했던 주식을 아내가 빌려온 천이백의 빚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코스닥을 주종목으로 삼고 들어갔다. 3년여를 주식공부에 매달리면서 난 코스닥 위주로 팠었기에  생소한 종목들은 그다지 없었다. 정해놓은 로스컷(손절매) 원칙 만큼은 철저히 지키면서 데이트레이딩에 들어갔다. 포지션은 "스윙"이었다.(매수 후, 상황에 맞춰 하루 에서 이삼일, 때론 일주일 까지도 홀딩 매매하는 단타 기법의 한가지) 그리고 난, 철저하게 캔들과 ,이동 평균선, 거래량을 바탕으로 매매 타이밍을 잡는 기술적 분석으로 투자에 임했다. 상한가를 예상했던 종목이 10프로쯤 오르다가 조금이라도 주춤거리면 미련없이 매도 해버렸다. 조금 먹고 길게 싸더라도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의지로...

 

얼마 후 생길 사고의 발단 이었던지, 난 연초장세에 맛물려 승승 장구하기 시작했다. 2월의 붙임장세 역시 무난하게 승리를 챙기며 넘겼고, 4월 하순경에 접어 들면서 아내가 빌려왔던 돈 천이백을 깨끗이 청산해 주고도 순 이익은 팔천의 고지를 넘기게 됐다.

정말 신나는 한때 였다. 세상 돈이 다 내것 같은 망상에 젖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이나... 나 자신의 관리에도 철저 하려 노렸했다. 아침 여섯시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전일 나스닥 시장등을 돌아보며 분석을 하고, 밤 열두시가 가깝도록 국내 증시의 변동 사항을 체크 하고나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주식투자에 자신감이 붙다못해 자만심으로 변해갈 무렵... 친구들로 부터 매월 있는 정기모임에 나오라는 전화가 왔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달 간 주식을 이유로 불참 했었기에 '그래! 하루쯤이야 어떠랴...'라는 생각으로  약속에 응했고, 그날 난,몇달만에 3차에 4차를 돌며 흠씬 취해버렸다. 술값으로 날린 기백만원쯤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몇시간, 몇분만에도 충분히 복구 할수 있다라는 터무니없는 자만심은 도대체 나의 어디에서 비롯됐던 것일까???...

그놈의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다. 간은 배 밖으로 나오고, 건방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게으르고 태만한, 더구나 자기관리에 실패한 자에게는 추상같이 냉엄한 곳이었다. 철저한 분석과 통계하에 매매에 임한다 해도 변수라는 상황하에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는 게 주식인데 난 전일의 시장 분석도 못했고, 개별 종목을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은 채,그저 습관적으로 간단한 분석하에 몇몇 종목을 골라 매수 버튼을 클릭해 버린 것이다.

 

그건 분석이 아닌 통박이고 도박에 다름없는 짓 이었다. 그날은 수익도 손해도 없는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끝났지만, 난 이미 돈을 버는 재미보다는 돈을 쓰는 재미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지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술자리를 갖는 날들이 늘어갔다. 당연히 손실은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이러지 말자! 라는 생각에 화들짝 정신을 차려 모든 매매 포지션을 정리하고, 이,삼일... 시장을 관망만 하던 나는 입술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에 휘말렸다. 조바심에 매매중독 증세 까지 나타난 것이었다. 상한가를 예상하고 몰빵으로 매수한 종목이 7,8프로 정도 오르는가 싶더니 대량의 매도 물량과 함께 4,5프로가 빠지면서 주춤 거리기 시작했다. 수수료나 건진 수준에서 여지없이 매도 사인을 냈어야 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내 분석에 신앙처럼 확신하던 난 '이건 분명히 물량확보를 위한 세력들의 흔들기다!' 라는 미련에 젖어 매도 타이밍을 놓쳐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됐고, 결국 그날 내가 매수한 종목은 하한가로 곤두박질을 쳐버렸다. 

 

그날 장 막판에라도 하한가에 전 물량을 매도 했어야 했다.다음날은 동시호가 부터 매수 물량 전혀 없는 하한가, 다음날도... 팔고 싶어도 팔수가 없었다. 4일째 되던 날에야 간신히 물량을 정리... 천만원도 남지 않았다.

 

그날부터 정확히 사흘 밤낮을 술만 마셔댔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고, 다음날 눈을 뜨면 부대끼는 속을 진정시킨답시고 해장술로 다시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돈도 돈이 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또 졌다는 자괴감이 더 컸다.

 

삼일째 되던 날 온양의 모선배로 부터 연락이 왔다. 룸싸롱을 오픈 했으니 개업 떡이나 먹으러 와 달라는... 술이 덜깨어 몽롱한 정신으로,만류하는 아내를 뿌리친채 차 시동을 걸었다. 이성을 잃고 자제심을 잃어버린 난 정신병자나 다름 없었다. 선배의 가게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만취한 난 행선지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엑셀을 밟아댔다. 

 

지리도 잘 모르는채 얼마가량 차를 몰았을까? 밀려오는 졸음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몇번 흔들고 눈앞을 보니 불과 몇미터 전방이 온양역앞 삼거리였고, 광장을 가로 막은 가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의식중에 핸들을 좌측으로 휙 돌리자마자 "쾅!" 굉음과 함께 본네트가 훌쩍 뒤집혀 시야를 가로 막았다. 

 

조수석으로 신호등을 들이 받은 것이다. 급하게 핸들이 돌아간 차는 중앙선을 침범했고, 마주오던 택시를 들이 받고서야 시야를 덮었던 본네트가 그 충격으로 제위치로 돌아가긴 했으나 덜렁 거리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취기에 분별력을 잃어 엑셀을 밟았던가 보다. 덜컹거리며 몇십미터를 더 달리던 나는 뒤쫒아온 경찰차가 앞을 가로막자 경찰차마져 들이받고서야 정지할 수 있었다.

 

근처의 파출소 지구대로 연행이 됐다. 음주수치 0.273 나왔다. 만취였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순경에게 면허증을 내밀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갑자기 옆구리에 불로 지져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왼쪽 늑골이 두 대 금이 가고,오른쪽 손목이 부러졌다는 걸 나중에 병원 진단으로야 알게 됐다. 앞이 캄캄했다.

 

또 골인인 것이다. 그렇게나 지긋지긋해 하던 그 곳... 나를 향해 욕을 하고 또 했다.

 

개보다 못한 놈... 넌 사람되긴 글른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