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 22 -
꽈배기 인생...
흔히들 말한다. 삶의 기복이 심한 사람을 일컬어 꽈배기 팔자 같다고...
게임을 해도 그런 날이 있다. 하필 잡을 때마다 번번히 2등 카드를 잡는가 하면, 어쩌다가 최고의 하이를 잡고 보면 아예 손님이 없어 잡지 않은 것만 못한 그런... 그럴때마다 "난 재수가 없어도 정말 더럽게 없는 놈인가 보다" 라는 식의 심한 의기소침에 젖기도 하고...
지구대로 잡혀가 있던 당시의 내 심정이 그랬던 것 같다. 할수만 있다면 시간을 몇일 전으로 돌리고만 싶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쯤... 충남 온양까지 그 시간에 달려와 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니... 와 달라고 부탁을 할만큼 염치 있는 사고가 못된다는 게 망설임의 큰 이유 였을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취기도 가셨을 즈음... 사고를 당한 택시 기사가 지구대로 찾아왔다. 생각보다는 멀쩡해 보이는게 그나마 안도가 좀 되고... 무조건 내 과실 이었다. 난 짧지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내가 많이 취해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도 별 무리없이 내 사과를 받아 주는 듯 했다. 어차피 나중엔 병원 진단서가 첨부 될 것이고, 합의도 봐야 겠지만, 당장은 내 사과를 순순히 받아 주는 그가 고마웠다. 택시 기사가 병원으로 가고 나자, 경장 계급의 경찰이 나를 불렀다. "이 장현씨! 술 좀 깼어요?" "네~ 깼슴다~" 대답속에 절로 한숨이 묻어 나왔다.
"차 없이 가실 수 있겠어요? 집이 서울 이던데..." 전혀 뜻밖의 말에 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몸도 다치신 것 같은데 일단 집으로 귀가 하셨다가 병원 가서 치료 받아 보세요. 그리고 30일날 아산 경찰서로 출두 하셔서 조서 받도록 하세요." 그러마 하고 그곳을 나온 난 택시를 잡아 타자마자 서울을 외쳤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갈비뼈 쪽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일단 호랑이 굴에서 한발은 빠져나온 셈이다.
다음날 교통사고의 경험이 몇차례 있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봤지만 상황은 너무도 암담 했다. "너 꼬여도 너무 꼬인다. 왜 그렇게 되는 일이 없냐..." 혀를 끌끌 차던 친구는 직접 온양까지 내려가 상황을 알아보고 돌아왔다. 첫마디가 "현아, 니 차는 포기해야 겠다. 견적만 4백이 넘게 나올 것 같다더라. 앞바퀴가 아예 뒤로 밀렸어..." 신호등 값만 해도 대략 3,4백은 잡아야 했다. 공공 시설물, 특히 신호등은 페인트만 벗겨져도 신호등 값을 다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다 그렇게나 순박해 보이던 택시 기사는 병원 침대에 드러누워 버린 상태...
남은 시간이래야 고작 이틀... 어영부영 합의금만 천 이상이 나올 듯 싶었다. 원만히 합의가 이루어 진다는 전제하에서... 돈도 돈이지만 또다시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설령 아내가 다 이해를 해주고, 합의가 다 해결 된다쳐도 불구속 재판의 가능 여부 조차도 의문 이었다. 음주에 뺑소니, 인사 사고까지 겹쳤으니... 게다가 난 아직도 가석방 기간 중이라 만에 하나 재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게 된다면 가석방이 취소가 되어 버릴테고 그러면 그 기간 까지도 복역을 해야만 한다는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절친한 불알 친구들 몇몇과 선후배들이 모였다. 이른바 회의 비슷한게 논의된 끝에 일단은 내가 잠수를 타는 게 유리 하다는 쪽으로 중지가 모였다. 이틀이란 시간 동안 사고 처리에 합의 까지 이뤄 낸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고, 온양이라면 가까운 거리도 아니였기에...
잠수를 타면서 친구를 내세워 피해자와 합의를 보고, 변호사도 미리 선임한 상태에서 운좋게 자수 기간이라도 겹쳐 준다면 사고는 쉽게 해결이 될것 같다고들 나를 위로했다. 내 스스로도 그렇게 나를 정당화 하고, 위로 하기로 했다. 병원으로 아내를 불러 대충 설명을 했더니, 내 얘기 내내 고개를 떨군채 듣기만 하던 아내가 내 말이 끝나자 고개를 들어 한마디 했다.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난 오빠가 이 정도로 무책임한 사람 인지 몰랐어. 나랑 아이들을 생각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극복했어야지...
괴롭다고, 속 상한다고 해서 모든 걸 술에 의지하려 했던 오빤 비겁자야!" 처음으로 내게 실망을 느낀다고 했다. 처음으로 나와의 앞날이 걱정 된다고도 했다... 아무런 말도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미안 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 오른 손목에 깊스를 하고 옆구리는 압박붕대로 단단히 고정을 한채, 다음날 난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그리곤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사고 해결이 될때까진 언제 또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밥상을 마주하게 될지 몰랐기에 난 되도록 천천히 밥을 씹으면서 아이들의 얼굴에서 오래오래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아내가 알아서 잘 둘러대줄 것이다. 교통사고후, 기소중지가 걸리기 까진 대략 한달 정도가 걸린다고 했지만 난 바로 원룸을 하나 임대해서 거처를 옮겼다. 경기도 시흥시 였다. 그리고 경찰서에 출두 하지 않았다. 내가 없는 상황이어선지 합의도 해결이 되지를 않았다.
휴대폰도 내것은 아예 죽이고 후배의 명의로 된 휴대폰을 새로 개설해서 사용했고 외출도 가급적 자제키로 했다. 가끔 밤이 되면 하도 갑갑해서 밤공기라도 쐴겸 외출을 나가기도 하는데 어린 의경들만 지나가도 가슴이 뜨끔하곤 했다. 간혹 아내가 밑반찬에 세탁물등을 들고 찾아 올때면 마치 난 소풍가는 어린 아이처럼 들뜨기도 했다.
합의가 지진부진한 상태로 결국 한달여를 넘기고 말았다. 기송중지자로 수배가 내려졌다. 이젠 진짜로 도피자인 것이다. 그만큼 마음은 더 위축이 되어 가고, 더 힘든 건 하루종일 방안에서만 숨어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료 했다. 그러던 며칠 후 친구로 부터 제의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냐는...
툭하면 깨지고 터져서 치료를 받으러 간다거나, 그런 사람들의 병문안은 자주 가봤던 곳!!! 전과자를 직원으로 채용할 병원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 것이며, 설령 취직이 된다해도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할수 있을 것인가???... 의아해 하는 내게 머뭇머뭇 설명 해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난 뜨악해 버렸다.
신경 정신과... 말로만 들어본 정신병원 이었다. 알콜 중독자들과 정신 질환자들을 입원 이라는 명목하에 격리 수용하는 곳...
원무과 주임으로 초봉 백십만원, 보너스 이백프로, 그리고 노력한 만큼의 인센티브도 조금은 보장이 될거라고 했다.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의 급여에 고개를 흔드는 내게, 친구는 열심히 설득했다. 딱 한가지 내 마음을 동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참으로 우습게도... 이동시나 외출시에 병원 앰블런스를 이용한다면 검문의 위험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이 부분에서 난 크게 웃었지만, 결국 내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 또한 그 이유였다. 또다시 징역이란 생각조차 끔찍했으니...
마침내 병원의 실질적 오너인 이사라는 사람을 만나 면접을 보게 됐다. 그가 설명하는 내 주된 업무란... 삼개월 이상 밀린 입원비나 치료비등을 받아 내는 일과(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보호사로 있는 젊은 남자 직원들의 관리 였다. 말이 관리 일뿐, 특히나 보안을 요하는 성격의 그런 병원이다보니 젊은 직원놈들의 혈기를 다스려 달라는 요구나 다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삼개월 이상 밀린 입원비들을 해결만 하면 받아낸 액수의 몇프로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노라 했다. 그제서야 친구가 말했던 인센티브의 내막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제대로된 직장이라면 당연히 기피하는 나 같은 출신을, 나 같은 전과자를 왜 굳이 쓰려고 하는지도...
그는 나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다. 이미 전해들은 내 과거도, 내 전과 사실도, 하다못해 마지막으로 다녀온 청송이라는 타이틀(?)까지도... 오너란 사람은 해결사에 곡마단 원숭이도 필요했던 것이다. 잠깐 망설였지만 역시 난 결정은 늘 빠르다. "해보자!" 결심을 굳혔다. 그리곤 마음 속으로 다짐 했다.
'이 길 또한 내 팔자에 있는 거라면 그냥 받아 들이고 말자! 하지만 이젠 그 누구에게도 속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이용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나를 이용하려 든다면 난 그를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 해졌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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