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계단식논 '위험유산' 탈출기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11년 만에 제자리 찾아
현지전문가 "지역공동체 주민의 역할이 핵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유네스코가 해마다 개최하는 세계유산위원회는 새로운 세계유산을 발굴해 등재하기도 하지만, 이미 등재된 유산을 목록에서 해제하거나 '위험에 처한 유산'(heritage in danger)에 넣기도 한다.
필리핀 루손섬 북쪽 산악지대 코르디예라스 산맥의 계단식 벼 경작지는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불과 6년 뒤인 2001년에는 '위험유산'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런 이곳이 올해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3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마침내 위험유산의 굴레를 벗었다.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채택 40주년을 기념하고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공동으로 오는 10-11일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세계유산보존과 지역공동체의 역할'을 주제로 개최하는 국제회의는 세계유산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이에서 유네스코 필리핀위원회 위원이자 마닐라 피티대학 건축대학장인 조이슬린 메낭가야 교수는 코르디예라스 계단식 논이 어떻게 해서 세계유산으로의 면모를 되찾았는지를 소개한다.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메낭가야 교수는 다른 무엇보다 "지역주민과 필리핀 당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한 덕분에 이곳을 위험유산 목록에서 삭제할 수 있었다"고 총평했다.
그에 따르면 이 계단식 논은 역사가 2천 년에 달하지만 최근 들어 "더 나은 생활방식에 대한 열망과 필요"에 압박을 받아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경관이 훼손됐다. 이 과정에서 이 지역에 전래하는 고유의 전통이나 무형유산 또한 위험에 노출됐다.
메낭가야 교수는 그러다가 급기야 위험유산 목록에까지 오른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다시 회복하고, 나아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으며, 앞으로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논과 지역민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유산협약의 진정한 본질, 즉, '보전'을 달성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면서 "지역공동체, 환경, 경제라는 세 가지 중심축이 균형을 이룰 때 (계단식 논의) 유산 가치도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낭가야 교수는 유산 가치를 살리기 위해 당국과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주민이 합심해 벌인 일들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계단식 논 구하기 운동'이라는 시민단체가 조직되고, 거기에 지역주민이 참여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는가 하면, 지방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 지역 농산품 판로를 개척하고, 각종 문화관광산업도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곳에서 생산한 '티나원 품종' 쌀은 당국의 노력으로 해외 수출의 길도 열었다고 소개했다.
메낭가야 교수는 코르디예라스 계단식 논이 처한 문제점이나 개선방향이 비단 필리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보호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틀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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