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사생활 얘기이지만, 저와 아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주시는 회원님들께서 저희들 근황이 궁금해 하실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쓰게 된점 , 정말 죄송 합니다. 감사 합니다.

 머리 카락이 듬성 듬성 빠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 보는 아빤 , 마음 속으로 울고 있습니다. 아빠 마음 아파 할까봐,

머리 카락을 빡빡으로 밀어 버린 , 내 아들 제선 의지 강하고, 아빠 앞에선, 눈물 한방울 안흘리는, 내 아들 제선의 마음은 지금도 펑펑 울고 있을 생각하니, 아빠인 내가 너의 아픔을 대신 해줄수 있다면, 좋겠어,....

 대학 다니면서, 써클 활동으로 미식축구를 할 정도로, 건강한 아들이, 군대에 입영 한지,

5개월 접어 들었을때, 머리 아파 하고, 눈 안이 뻑뻑 할때,

난 단지, 장갑차병인 아들이 뜨겁게 달아 오른 장갑차 철판 속에서, 너무 더워서 머리가 아프겠고, 땀이 흘러서 눈에 들어가서 그런가 보구나,,, 하는 이 무지한 아빤,

너의 아픔을 모른체 잠만 실컷 자고 실컷 놀고 있었으니,..

 머리가 아프고, 눈 안이 뻑뻑 해서, 훈련 중에서도, 신병이고 자대 적응 시기라, 혼자서 꿍꿍 앓면서, 머리 아파 잠을 못 잘정도의 상황에서 혼자 고생 했을 제선 , 너의 모습을 상상하니, 무지한 이 아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너무나 미안 하구나.

 자대 의무실에 가면, 기껏 해야. 두통약이나 주어서, 약 복용후, 단 몇시간 두통이 가라 앉고, 또다시 아픔이 찾아오는 데도, 어쩔수 없이 장갑차 끌고 훈련 받아 가며, 아픔을 참아 냈을 제선 ,..

일반 두통약만 주었던, 군대 의무실의 무지함도 야속 하기만 하구나.

 

8월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저녁 무렵 , 중대 행정 보급관의 전화 속에서

머리 속에 종양이 발견 되고, 머리 속에 물이 차는 수두증상 까지 있다는

행보관님의 소식을 전해 듣고, 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 속에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고,

어린 아들, 아직 미성년인 아들에게, “ 너 뇌종양이 있다. 한국에선 수술을 할수 없다. 외국에 나가서 수술 해야 한다,,, ” 라고, 얘기 한, 군 병원 군의관의 그말을 듣고서.

군병원 응급실에서, 혼자 느꼈을 절망과 어두움 속에서, 혼자 울고 있었을 제선,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아직 까지 미성년인 내 아들에게, 함부러 얘기 한, 그 군의관의

무지함에, 난 너무나 속상 했다.

그날 밤, 군병원 면회는 안되어서, 무작정 청평 군병원 응급실에 있는 제선에게 ,

다행히 전화 연결이 되었다.

응급실에 혼자만 있다는 제선의 말을 듣고서, 절대 용기 잃지 말라고 얘기 밖에 못하는 내 심정은, 아팠다.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서, 혼자서, 울고 있을 내 아들, 뇌압이 차서, 누워 있지도 못하고, 눈은 복시로ㅡ 보이는 물체들이 두겹으로 보이는 복시 현상에서도,.

내 아들은, 응급실에서 혼자 뜬눈으로 밤을 세워야만 했다.

 다음날 새벽 , 달리는 외곽 순환 도로 속에서도, 과속을 하면서 까지,

내 보고 싶은 아들 제선을 향해서, 난 달렸다.

운전중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지나 갔다.

제선이 어렸을때, 난, 돈을 벌기 위해서, 같이 있을수  없었고,

 고교 시절에 방황하는 제선에게, 화만 내고 소리만 질렀던, 내 무지함 속에서,

제선이 하던 말이, “ 내가 아빠가 필요 할땐, 아빤, 늘 바쁘다는것 때문에, 자긴 늘 혼자 였다는 그말,. ”

지금도, 혼자 아파가며, 혼자 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감정이

생겼다.

제선아, 넌 절대 혼자가 아냐,, 아빤, 너를 사랑해, 언제 까지나,,

지난 시간 동안, 난 너무나 아이들에겐, 이기적인 모습을 가진, 아빠 였다는 생각에,

운전 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명문 대학, 그게 뭐가 필요해,... 난, 내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매일 공부 해라,, 하며, 몰아 부치기만 했던, 나쁜 아빠였다.

 분당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해서, 환자복을 입고서, 원무과 앞에 있는 아들을 보자,

눈물이 왈칵 오르는 것을 참았다.

건장하고 잘생기고 멋있었던 제선의 모습이, 초초름한 환자복을 입은, 내아들 제선의 깡마른 모습은 얼마나 혼자서, 마음 고생 ,육체 고생 했을 제선의 모습을 보니,

나의 무지함에 난 괴로웠다.

 

군병원에서 당장 수술을 해야 만이, 살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고서,

나와 함께 가신 누나도, 우린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l

그렇게 건장하게 군대에 입영 했던, 내 아들이, 절망적인 경우에 쳐해 있다는 ,군의관의 말을 듣고서

난,  세상이 컴컴 하고,  너무나 야속 했다.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사랑하는 내아들이  고통을 받는단 생각에,   난,  너무나  괴로웠다.

 난,  밖에 민간인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수술을 하겠다 했다. ( 자비위탁 )

아들을 데려 나와서, 어는 병원을 가야 할지, 막막 했다.

같이 봉사 활동 하는, 의사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군의관이 적어준 “ 의사 소견소” 의 내용을 읽어 주었다, 전문적인 영어와 한글이 적혀 있는 의사 소견소 내용을 읽어 주니,

나의 의사친구는, 30분만 기다리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다행히, 의사 친구는, 신촌세브란스에 신경외과에 전문 교수님께, 예약을 해주어서,.

우린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을 하였다.

 

주치의 교수님 말씀이, 아들의 종양의 위치가 너무나 위험한 생명선 근처에 위치 했기에,

조직을 띄어 낼수 없고,

일단, 머릿 속에 고여 있는 물을 빼내는 수술을 했다.

수술 받는 동안, 난 수없이 기도 했고, 나의 죄를 용서 하셔서, 내 아들에게 희망을 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를 드렸다.

 

원래 두시간 소요 될거라는 수술이 50분만에 끝나고 회복실에서 나온,

마취가 들깨어서 추워서 떨고 있는 제선이를 더 이상 혼자 놔두고 싶지 않아,,

이젠, 더 이상 너를 혼자 놔두는 일은 없을 거야,.. 사랑하는 제선아,

 

다행히, 생명에 위험을 줄수 있는, 뇌에 고여 있는 물을 빼는 수술은 잘되었고,

뇌압도 내리고, 복시로 보였던 눈도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 오고 있다.

조직 검사를 할수 없는 위치에 종양이 있기에, 아들의 주치의 교수님은 피검사를 통해서.

종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택해주셨다.

우린, 교수님의 말씀대로, 교수님의 치료에 의존을 해야만 했다.

지난, 2주 전에 1차 항암 치료를 했다.

1차 항암 치료후, 지난 일요일 Mri 결과, 기적 같은 얘기를 듣게 되었다.

종양의 크기가 반이상이 줄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서,

우린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일 이면, 다시 2차 항암치료에 들어 선다.

우리에겐 희망 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세상이 훤해지는 기쁨을 보게 되었고,

묵묵히 잘 참아 내는 제선이가 너무나 대견 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꽉 껴안고, 난 속으로 울었다.

우리 다시 한번 행복하게 잘살자,,. 하며

 

앞으로, 2차 ,3차, 4차, 5차,, 항암 치료.

연이서, 5주에 걸쳐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지금은 기나긴, 투병 생활의 시작이다.

아직 완쾌는 안되었지만, 의지가 강한 제선이는 꼭 이겨 낼거야,.

 

맨처음 하늘이 무너져 내릴것 같은 충격 속에서,

아직, 나의 어머니와 내 딸은 모르고 있다.

혹시나 모를 충격을 받을것 같아서, 두사람에겐 비밀로 하고 있다.

아직 군에서 훈련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텐데,,

휴가도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휴가 안나오고 있다며, 걱정하시는 내 어머니와 제선의 여동생은 ,.

 

마음 아파 하는 나를 위해서, 헌신적인 도움을 주는 나의 형제들의 고마움이 너무나 크단걸 다시한번 느껴 본다.

한달 내내, 내 아들 옆에서, 간병 하시는 막내 누나의 도움과 헌신적인 사랑이

아들의 경과가 좋아 지는것 같다.

투병 중엔 잘먹어야 한다며, 음식 잘챙겨 먹이는 누나 정말 고마워,,.

 

주위에 많은 지인들과 필고의 회원님들의 관심 깊은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긴 이야기이고 두서 없는 내용이지만, 궁금해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신것 같고,

끝까지, 제 아들 회복 되고, 새로운 삶을 갖을수 있도록, 기도 많이 부탁 드려 봅니다.

감사 합니다. 여러회원님들,,.

사랑 해, 제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