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구 아들 만난 맨시니 “이제 편한 마음으로 살 것 같다”

 
지난해 6월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진 레이 맨시니(왼쪽)와 고 김득구 선수의 아들 지완씨. 지완씨는 한국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1982년 11월 13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호텔 특설링에서 한국의 복싱스타 김득구(1955~82)는 14회 혈전 끝에 미국의 복싱영웅, WBA 라이트급 챔피언 레이 맨시니의 펀치를 맞고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리고 나흘 뒤 그는 임신한 약혼녀를 놓아두고 스물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배고팠던 시절, 헝그리 복서의 죽음 앞에 한국민은 자기 일처럼 슬퍼했다.

 올해 김득구 사망 30주기를 맞아 비운의 복서 김득구와 불운의 복서 맨시니의 스토리가 재조명된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크리걸의 '레이 맨시니 전기'(『The Good Son: Life of Ray 'Boom Boom' Mancini』)(18일 미국 출간)와 이 전기에 바탕한 동명의 다큐멘터리(감독 제시 제임스 밀러)를 통해서다. 밀러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지난 20일 워싱턴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책과 다큐멘터리의 클라이맥스는 지난해 6월 이뤄진 김득구의 약혼녀 이영미(53)씨와 아들 지완(29)씨, 그리고 맨시니(51)의 만남이다. 지난 21일 크리걸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두 가족의 상봉 과정과 그 가슴 먹먹한 순간을 들려줬다.

어린 아기 때의 지완씨를 안고 있는 어머니 이영미씨. 이씨는 김득구 선수가 숨질 당시 지완씨를 임신하고 있었다. "김득구 선수의 유족, 이영미씨와 아들 지완씨는 그동안 언론 접촉을 극구 꺼렸습니다. 하지만 레이 맨시니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싸웠던 복서였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책 테마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인터뷰를 허락했고요. 그런 중에 먼저 지완씨가 맨시니를 만나보겠다고 했습니다."

 크리걸은 책 집필을 위해 지난해 한국에 장기간 체류했다. 그때 서울에서 치과의사로 활동 중인 지완씨를 만났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의사로 일한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대견스러웠죠." 그는 지완씨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한다.

 "뭔가 이제서야 제 인생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의 끈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경기를 봤는데, 정말 30년 전에 엄마 뱃속에 있던 나를 위해 열심히 싸웠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구나… 가슴 깊이 느꼈어요." 지완씨가 한 얘기다.

 맨시니를 만나기로 결심한 지완씨는 지난해 6월 미국으로 출발하기 앞서 아버지와 맨시니의 복싱 매치를 봤다고 한다. 처음 본, 아버지의 마지막 경기 장면이었다. 링에 쓰러져 들것에 실려가는 아버지를 본 뒤 마음이 바뀌었다. '맨시니가 아버지를 죽였다.' 만나지 않겠다고 맘 먹었지만 밀러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작진까지 모두 와있는데, 취소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LA행 비행기를 탔다.

 6월 23일. 맨시니는 샌타모니카 집 앞에서 이리저리 걸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링에 섰을 때도, 이렇게 떨린 적이 없었는데…." 흰색 자동차가 그의 앞에 섰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 파란 스포츠 재킷과 카키 바지를 입은 젊은 청년 한 명이 차에서 내렸다. 김득구 선수의 아들 지완씨였다. 그의 어머니 이영미씨도 함께였다.

1982년 11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호텔 특설링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14회전. 김득구 선수는 맨시니의 펀치를 맞고 쓰러져 나흘 뒤 숨졌다. 맨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만나고 싶었다네. 자네 역시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막상 만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 공기 흐름 조차 멈춘 것 같은 몇 초의 순간이 흘렀다. "어머니부터 소개해 드릴게요." 지완씨가 검은색 카디건과 블라우스를 입은 어머니 영미씨를 가리켰다. 영미씨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맨시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 이제 제가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지완씨가 말을 이었다. "맞아요. 이제 아저씨도 편하게 사실 때가 됐어요."

김득구 그날 저녁 샌타모니카의 한 레스토랑에서 맨시니와 지완씨 모자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난 그 사건 이후 평생을 죄책감 속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복싱에 대한 열정도 다 사라졌고요." 맨시니의 말에 지완씨는 "건강을 위해서도 빨리 그만두길 잘하셨다"면서 "저도 사실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경기를 본 뒤 당신을 향해 증오심이 생겼었죠. 하지만 차분해진 뒤 다시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당신의 잘못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그때 이영미씨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가 아기를 가지고 있었잖아요. 저한테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던 거였어요. 어떻게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걱정했죠. 하지만 이렇게 만나니 우리 가족, 그리고 맨시니 가족도 칠흑 같은 과거에서 비로소 해방된 것 같아요."

 밀러 감독은 김득구 사망 30주기가 되는 오는 11월 17일, 맨시니와 지완씨 모자가 다시 만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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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구선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는데 아드님이 멋지게 성장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