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 23 -
머리가 아픈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
면접이 끝나고, 며칠 후... 난 드디어 내가 일하기로 한 병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처음 이,삼일은 수습 기간이랍시고 달리 하는 일 없이 그냥 시간 죽이기 였다. 병원이나 환자들 분위기 파악 정도만 하라는 것이었다.
'착하다!... 정말로 순수하다...' 환자들을 접하고 난 후, 내가 처음 느낀 점이다. 그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여린 사람들 이었다. 알콜 중독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 자기 가족들에겐 도대체 어떤 우려를 주었길래...' 알콜 중독자라고 해서 대부분이 거리의 부랑아쯤으로나 생각했던 난 처음부터 심한 충격을 받았다. 입원 전의 직업들도 다양했다. 그중엔 고위 공직자 출신인 분도 있었고, 농협 지점장, 방송국 카메라 감독등... 심지어는 내가 입사한지 얼마 후, 채모라는 톱탤런트의 남동생도 입원이 결정되어 최근 까지도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근황을 접하고 있다.
신경 정신과 계통의 병원에서 통칭하는 환자 분류 "NP"... 정신 질환자들 이다. 이들은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결론으론 대부분 평생 완치가 없다. 평생을 집과 병원을 오가며 살아야 하는 운명들이다.
몇일 후부터 내게 일이 주어졌다. 몇달째 받아내지 못하는 입원비를 해결 하라는 것이었다. 서너 건을 해결 하는 데 정확히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두어 건은 현찰로, 한 건은 조만간 갚겠다는 지불 각서로 ... 오너는 대만족 이었다. 지난 수년간 포기 상태나 다름없던 입원비 건만도 수십여 건에 달하는데 이젠 만족스런 해결사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난... 입원비 해결사 였다.
명함만 원무과 주임일뿐, 난 거의 매일을 외근이랍시고 차안에서 지내다시피 두어 달을 지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거기서 또 성남으로... 대구로, 논산으로... 대략 칠,팔십 프로는 해결한듯 싶다. 입사 후, 매달 통장으로 입금되는 월급의 액수보다 두배가 넘는 돈을 따로 받았을 정도이니...
다행히 남자 직원들도 성격이 시원시원한 녀석들 이었다. 다들 나이가 나보다 한참 아래이다보니 사적으론 형님이라 부르며 잘들 따라주었다. 삼개월째 되던 날, 오너는 게시판에 공고를 붙였다. 난 계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월급도 오십프로가 인상 되었고...
정신병원의 원무과 일이란 별다른 게 없다. 환자 유치를 얼마나 잘 하는지, 그리고 그 환자를 얼마나 오래 입원시켜 둘수 있는지... 사무장의 능력은 오로지 그것으로만 평가 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사무장이 환자를 꾸준히, 많이 유치할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사설 앰블런스(129) 지부장들 이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반복되는 입원 경험으로, 129사무실 명함 몇개씩은 보관하고 있다. 알콜이건, 정신 질환이건 결국 완치는 기대하기 힘들기에...
한마디로 병원이 업소라면 129지부장들은 삐끼나 다름 없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인 것이다. 그들이 환자를 데려다 주면, 병원에선 사무장을 앞세워 은밀히 리베이트를 건네준다. 당연히 현찰로 건네야 한다. 리베이트 자체가 불법이기에 근거를 남기면 안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나 나나 몸뚱아리로 살아온 처지들이기에 서로 몇다리만 건너면 형으로, 아우로 인사 나눌수 있는 연줄들이 내겐 있었다. 병원이 안양시에 있었는데 오너가 유일하게 안양 지역의 앰블과는 교류가 없었다. 안양에는 당시 세곳의 사설 앰블런스 지부가 있었는데 한곳의 지부장과 내 불알친구가 십여년의 우정으로 만나는 막역한 지기 사이였다. 술자리에서 친구로 소개를 받게 되었고, 몇번의 향응을 제공하자 얼마후 부터는 그쪽에서 데려오는 환자들만도 한달에 대여섯건이 넘게 되었다.
그렇게 입원을 하게된 환자들을 입원,치료 하고 있다는 서류를 심사평가 위원회라는 곳에 제출하면 형식상의 평가를 하고 다음달 부터 국가에서 돈을 지급해 주는 것이다. 숙식비와 재활 치료비, 약값등의 명목으로 한 사람당 상당한(?) 금액을...
내가 맡은 일이 그것들 이었다. 매달 지급되는 판공비로 일주일에 두어번 각 앰블런스 지부장들과 술자리에서 교류를 나눈다거나, 환자의 보호자로 부터 입원의뢰 전화 혹은 상담을 오면 그럴듯한 말포장으로 보호자를 납득시켜 내 병원에 입원을 유도 하는 것...
한동안은 승승장구 였다. 술 좋아하는 넘에게 술상무란 직책만큼 보직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 좋아하는 넘에게 사람 사귀는 것만큼 만족스런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병원의 입원한 환자들 중, 반 이상이 물갈이(?)되어 내 연줄로 입원된 환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병원의 반은 나로 인해 먹고 산다고 주위에서 농담을 해댈 정도로... 그만큼 오너는 나를 더욱더 신뢰하고 아꼈다. 나역시 만족했다.
원룸을 빼고, 거처를 아예 병원 숙소로 옮겼다. 일주일에 두번이나 당직을 자처한 적도 태반 이었다. 당직비도 당직비지만... 하루빨리 일을 배워 나중에 좀더 큰 병원으로 옮겨 간다면 그때부터 내 남은 인생은 보장이 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병원에서 일한다는 타이틀은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것이기에... 난 욕심을 부린 것이다.
자연스레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그들이 병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이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에게도 자유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난 하나하나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나역시 영어의 몸으로 꽤나 긴 세월 동안 애타게 자유를 그리워하며 살았던 과거가 있는 몸 이다. 그들의 고통을, 애환을 어떻게 모른다고 할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하루하루 고민하는 날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병원 생활 일년 육개월간 두명의 환자가 죽어 나갔다. 둘다 알콜로 속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는데...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에서도 그걸 모른채 방치(?)되어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두통을, 복통을 호소해 종합 병원으로 옮겨 갔을땐 이미 죽음이 목전인 상태였다.
미아리 일대에서 한때는 족쟁이로(사교춤쟁이) 전성기를 구가했다던 사내는 결핵이 심했다. 개인적으론 내가 형이라고 부르던 이였는데... 당뇨까지 심해서 매일 하루 두번 혈당체크를 하고, 인슐린을 맞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 난 그의 가족이 단 한번도 면회 오는 걸 본적이 없다. 지금도 제일 기억에 남는 환자중 한분 이다.
이 상x... 수원이 집인 젊은 알콜 환자였는데, 젊은 나이에 성격도 거칠고 전력도 화려했던 놈이다. 요양원에 기도원으로 돌고 돌다가 내 병원으로 들어왔는데, 의외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이 지극했다. 오너와 원장을 설득하고 가족들을 설득 시켜 입원 3개월만에 퇴원 조치를 하고 병원내 운전사로 취직을 시켰다. 컴퓨터 서적을 사다주며 사회를 알아가는 공부도 시켰다. 툭하면 다른 환자를 구타하거나 병원 내 형광등을 깨서 자해를 해대던 꼴통 한놈을 사회로 밀어넣은 것이다.
뿌듯한 일도 간혹 있었지만, 환자들을 볼때마다 괴로움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분들껜 참으로 죄송한 표현이지만 어찌보면 그들은 인간시장에 내놓여진 상품에 진배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이란 그들의 자유를 최대한 오랫동안 속박 하도록 가족을 설득하고, 병원에서 정말 다루기 힘든 심한 치매 노인이나 정신 질환자들이 나오면 다른 병원이나 요양원등으로 넘기면서 그쪽으로 부터 또다시 리베이트를 받아 병원측에 바치는 일...
내 앞에서 너무도 공손하게 읍소를 하는 환자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입,퇴원 문제의 최고 결정권자로 안다. 물론 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다. 그점이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퇴근 후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지더니, 하루라도 술을 거르면 잠을 못이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서서히 중독 되어가는 과정이 느껴졌다. 매일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도 부족해, 점심밥을 먹으면서 반주를 마시곤 했다.
어느날 아내가 안양으로 날 보러 왔을때... 그날도 어김없이 만취까지 간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말 했다고 한다.
" 난 죽으면 보나마나 지옥으로 갈거야... 나 같은 놈이 지옥으로 보내지지 않는다면 지옥이란 자체가 없는 거야..."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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