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픈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

 

병원일을 하고 나서 얼마 후 부터인가, 난 환자들을 내 나름대로 분류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자는 머리가 아픈 분... 알콜중독자는 마음이 아픈 분으로...

 

그들에게 향하던 연민은 조금씩 고이고 쌓여서 정으로 변해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과의 나날들 속에도 나름대로 배울게 있었고, 여기저기 곳곳마다 크고 작은 감동들이 흠씬 배어 있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와 오너 사이엔 미묘한 갈등의 싹이 조금씩 움트고 있었나 보다.

 

오너... 경남 마산 출신인 그는,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말이 적합한 인물 이었다. 당시 오십을 갓 넘긴 나이의 그는, 찢어지도록 가난한 농사꾼의 맏아들로 태어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보고자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단돈 삼천여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구로공단의 공장 직공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장이 학력의 고작인 그에겐 쥐꼬리 만큼의 급여지만 매달 지급되는 월급 봉투와 허름한 기숙사, 제공되는 하얀 쌀밥 만으로도 감지덕지 였다라는 말을 자주입에 달았다. 한 공장에서 나이 마흔이 되도록 성실히 일을 한 덕분에 관리직 계장이라는 직책 까지 올랐지만, 얼마 후 몰아닥친 감원자 명단에 오르면서 이십년 가까이 헌신을 다한 직장에서 퇴출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손에 남은 건, 경기도 광명시의 허름한 주공 아파트 한채와 허리띠 졸라메고 모은 현찰 3천여만원...

 

'개인택시를 몰아볼까... 아니면 동네에서 자그만 구멍가게라도 하면서 먹고 살아볼까...' 고민하던 그에게 인연이 찾아 들었다. 당시엔 사설 앰블런스 붐이 일어나려던 시기였는데, 지인 한 사람이 그에게 이 일을 권했고, 몇일의 장고 끝에 그는 경기도 광명시에 무허가 앰블런스 사무실을 내고 중고 구급차 두 대로 처음 이 NP(정신과) 계통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운이 따를려고 그랬던 건지... 그는 그리고 십년 정도를 앰블런스 계에 몸담으면서 돈을 벌게 됐다. 그리고 십년 후, 그는 십억여 원의 돈을 모으게 됐고, 병원 사업쪽으로 진출을 하면서 이년도 안돼서 안양시와 안산시에 각각, 그리고 경기도 청평에 준종합 병원까지 인수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어렵게 자수성가한 그는 푼돈에도 상당히 인색한 사람 이었다. 환자들은 그에겐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연히 환자들의 복리나 처우등은 형편이 없었다.

 

병실 에어컨이나 TV등에 문제가 있거나 교체비로... 도서, 비디오테잎등의 구입비조로 수시로 청구서를 올리고 하다못해 환자들 식단이 조금만 부실해도 부하 직원이나 주방쪽에 호통을 치는... 하지만 직원 관리, 환자 관리, 수납비 관리에 술상무 노릇까지 충실히 해내는 내가 그에겐 손에 쥐고 있자니 뜨겁고 버리자니 아까운 "뜨거운 감자" 임에 분명 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환자들과의 오전 상담을 위해 병동을 한바퀴 돌고 내려 오는데, 병동 스테이션(간호사실)으로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인터폰을 드니 외래 간호사에게서 친구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고 하기에 별생각 없이 외래로 나가자, 웬 야무진 체구의 낯선 사내 한명이 내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이 장현씨 맞죠?" 순간 올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옴을 느낄수가 있었다. "노량진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몇달전에 온양역 앞에서 차사고 내신적 있죠?" 숨고를 틈도 주지 않으려는듯, 재차 말을 이으며 수갑을 내밀었다. 놀란 토끼눈으로 간호사가 우리 두사람을 번갈아 보며 어쩔쭐 몰라 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한숨처럼 내뱉었다. "네... 제가 이 장현이 맞습니다..." 수갑을 채우려는 그에게 "부탁인데 여긴 직장이니 그냥 갑시다." 생각외로 단호했다. "안됩니다! 당신은 기소중지자라서 도주의 우려가 크니까 순순히 말 들어요!" 어차피 시간 길게 끌어봤자 험한 꼴만 보일 뿐이라는 생각에 난 손을 내밀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경찰차에 오르는데 회의중 이다가 간호사의 전갈을 받은 원장과 오너가 헐레벌떡 뛰어 내려왔다. 어떻게 된거냐며 묻는 그들에게 난 그저 죄송하다는 한마디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들은 더이상 날 기다리거나,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구질구질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재차 묻는 그들에게 형사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노량진 경찰서로 오시면 정황을 알수 있어요!" 그런 형사의 말을 자르듯이 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바쁘신데 오실 필요 없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경찰서로 향하는 차안에서 난 물었다. "어떻게 병원에 있는 걸 안겁니까?"

 

이런~ 사이버 수사대에게 걸린 것이었다. 숙직 하면서 간혹 심심하면 들어가곤 했던 모 음악 사이트의 ip가 추적에 걸려든 것이었다.

 

"담배 줄까요?" 형사가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물고 연기를 내뱉으며 핸드폰을 꺼내 친구 몇몇에게 전화를 돌렸다.

"나 달렸다!" 놀라며 되묻는 친구들에게 노량진 경찰서라는 말만 해주고 전화를 끊은 난,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대충 상황을 그려 보았다. 어차피 교통사고 건이니 합의만 되고, 온양쪽에서 말방귀 꽤나 낀다는 변호사만 선임해서 작업 들어가면 두어달 고생으로 끝일텐데...

 

중요한 건, 돈 이었다. 아내에게 이젠 또 뭘 팔라고 할 것인가... 아니, 설령 내가 만류한다 해도 아내는 분명 뭔가라도 처분한 것을 찾아내어 날 빼내려 할 것이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날 잡아간 형사는 경찰서 보호실 기둥에 한쪽 수갑을 채우더니 어딘가로 가 버렸다. 이미 날 검거했다는 전갈을 보냈을 것이고 이제 몇시간 후면 아산 경찰서에서 날 데리러 올 것이다.

 

바로 뒤따라 온건지, 오너와 오너의 친동생인 안산 병원 사무장이 형사계로 들어섰다. 어떻게 될것 같은지, 자신들이 뭘 도와 줘야 하는지를 다그치듯 물어봐주는 그들이 일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뭔가 조금은 어색하고 형식적인 태도 라는게 그들의 눈빛과 어투에서 느껴졌다. 말만이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로 그냥 그들을 돌려 보냈다. 그들이 가고나자 아내와 친구들이 들이 닥쳤다.

 

"현아! 오늘 밤에 친구들이랑 형들이랑 다 모이기로 했어. 바로 합의 보고, 변호사 선임 할테니 조금만 고생해라... 교통사고일 뿐이니까 1심에서 나올수 있을거야..." 곁에 있던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수갑에 묶인 내 손목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제 아내는 더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알수 있다. 나보다도 아내가 더 많이 힘들고, 아파하고 있다는 걸... 뭔가를 다짐한 듯, 입술을 야무지게 깨문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뒤쪽의 형사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 사람이 누굴 패죽이기라도 했나요? 왜 사람을 이렇게 묶어 놓고 있는 거죠?"

 

친구들은 뜨악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나 역시 그렇게나 흥분한 아내의 공격적인 모습은 처음 보는터라 피식~ 하고 입가로 웃음이 배어났다. 역시 부부는 닮아 간다더니... 

 

쥐죽은 듯한 잠깐의 고요를 깨며, 한 형사의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아내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네에~ 원래 사람 때려죽인 현행범 보다는 교통사고 기소중지자의 점수가 훨씬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