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고 하는 짓... 폐인으로 가는 길...

 

그날은 그렇게 아내와 온밤을 꼬박 술로 지새웠다. 이른 새벽... 택시에 태워 아내를 돌려보내고, 사우나에 들러 간단히 샤워만 하고 오너와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근신의 의미로 청평 공사 현장에서 두어달만 견뎌라!" 오너가 말하는 근신의 의미가 무얼 뜻하는 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지만... 따라주기로 했다.

 

말이 인부들 관리였지... 이건 생노가다 였다. 청평의 겨울 추위... 장난이 아니었다. 보일러도 안들어오는 그곳에서 난 정말로 개같이 일했다.

 

보편적인 노가다와는 성격부터 달랐다. 완공일을 맞추기 위해 오너는 강행군을 지시했고, 거기까지로의 모든 악역은 내 몫이었다. 현장 인부들을 다그치고 독려 하는 것에서, 각종 자재들을 구입하는 일, 물론 현장 노동일 까지도... 난 1인 다역을 해내야 했다.

 

다들 철야 작업까지 끝내고 나면 씻는 것도 뒷전인 채... 곯아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그제서야 나만의 시간이 시작 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면 아내는 대뜸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몸은 괜찮냐고, 아픈 곳은 없는지, 보고 싶다는 둥...ㅎㅎ 아내와 아이들과의 따뜻한 밥상이 너무도 그리웠다.

 

강행군 덕분으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이 됐고, 얼마 후... 난 드디어 안양 병원으로 복귀를 했다. 부하 직원들과 간호사들은 자신의 일인양 기뻐해 주었고, 그때까지 퇴원이 안된 날 아는 환자들도 진심으로 반겨 맞아 주었다. 살 것 같았다. 마치 고향의 품으로 돌아 온 것이나 되는 양...

 

본격적으로 병원의 사무장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안양 병원을 비운 몇달 사이지만 밀린 일거리가 산더미 같았다. 밀린 일처리에 한달 정도가 후딱 지나고 조금씩 업무에 체계가 잡혀 갈 무렵...

난 어떤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쪽 신경정신과 병원 계통이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고나 할까?... 병원이 아니라 수용소 자체 였다. 적어도 당시 오너가 끌어가던 병원의 방침이나 운영체제 만큼은... 

치료가 주목적이 아닌 완벽한 수용이 전제 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용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병원측 입장에선 영리에 큰 도움이 된다.

 

환자들은 대략 세 분류로 나뉜다. 일반 의료 보험인 자, 국가에서 치료비의 7,80%를 지원해 주는 의료 보호 2종인 자, 그리고 국가에서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 주는 의료 보호 1종인 자... 

 

최하 단가의 치료약에, 싸구려 부식이 주류인 식단에, 열악한 환경의 병실과 병원 시스템,프로그램 등으로 환자들을 수용하면서도 매월 심사평가 위원회에는 최고 맥시멈으로 치료비와 숙식비 단가를 맞춰서 청구 하면, 그 청구서는 형식적인 심사 후, 말일 경... 막대한 금액의 지원금이 거의 의무적이다시피 각 병원으로 지급 되곤 했다. 병원측에선 돈을 벌수 밖엔 없다. 시스템 자체가 그런 것이다.

 

또 한가지!!! 처음 병원을 개원 하려면 병원의 규모나 치료진 인원, 병실의 크기나 갯수에 따라서 관할 구청의 보건복지과에서 환자의 치료 조건에 가장 알맞은 베드수(환자수)를 결정지어 주는데...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내가 몸담고 있던 병원은 물론이고, 신경정신과 계통의 각 병원들은 결코 그 지침에 따르질 않는 다는 것이다. 감히 단언컨데... 대부분 병원들이 최하 베드수의 삼분의 일이 넘는 인원들을 추가로 수용하고들 있을 것이다. 많게는 수배의 인원을 더...

 

그리곤 그 인원의 청구비를 맞추기 위해 편법을 동원 한다. 예를 들면 뻔히 몇달째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마치 입,퇴원의 변동이 있었던양, 두 파트로 나누어 청구를 올리는 것이다.한달에 두번 청구까지 가능하다는 평가원의 기준을 악용하여... 당연히 거기서 얻어지는 수익에 관한 세금은 포탈로 이어졌을 것이다.

 

결코 정의로운 사람이 못됐던 나 였기에 그들의 그런 편법, 불법 수용 행위를 규탄 하자는 의도로 이글을 써 내려가는 건 아니다. 이 나라의 현실 이란게 어차피 좀 더 배우고, 좀 더 알고, 좀 더 영악한 자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득세 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내가 진정으로 충격을 받았던 건... 현대판 인간 시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되면서 였다. 

 

환자들을 보면 간혹... '이들이 교도소의 재소자들 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오히려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갇힌 자들에겐 만기 출소 날짜라도 있기에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희망이라도 있다. 그런데 이들에겐 그런 희망조차 허락되질 않는다. 오로지 입원 동의서에 서명을 했던 가족과 병원의 관리자 사이에만 최종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병동 밖으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한달에 환자에게 처우되는 금액이라야 식대비등을 포함해 고작 십여만원에 불과할 뿐인데... 보호자들로부터 입원비 명몫으로 상당량의 금액을 받고, 또다시 나라에 청구해서 그보다 더 많은 액수의 지원금까지 받는다.

 

그것뿐인가! 한 환자를 한 병원에서 180일 이상 수용할 수가 없다. 국가에서 정해놓은 최근의 법이다. 환자를 오래 잡아 두어야 돈이 될수 밖에 없는 병원측에선 편법을 동원... 환자의 치료에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정서치료를 구실로 일회의 연장 신청을 하면 그게 또 허용이 된다. 결국 환자 하나를 병원에선 일년 동안 가둬둘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의 제재를 전혀 받지 않고도...

 

그리고 일년이 다가올 무렵이 되면 교묘히 그 시기에 맞춰 평소 친분이 있는 타 병원(같은 계통의)이나 요양원등으로 몇일간 위탁을 시켰다가 다시 데려온다. 서류상에는 일단 퇴원을 했다가 다시 발병하여 재입원 시켰다는 근거를 날조하여...

 

사고를 자주 일으킨다거나 소요의 원인이 되는 환자들은 미리 파악을 해두었다가 온갖 감언이설로 보호자들을 설득하여 다른 병원이나 요양소 등으로 넘긴다. 갓 개원한 병원에선 부득이하게 환자수를 채워가는게 일차적인 목적이므로 환자의 상태를 전혀 고려치 않고 마구 받아 들인다. 거기에 일정 금액보다도 더 많은 리베이트까지 제공 하면서 말이다.

 

리베이트...

난 한참 후에야 그걸 알게 됐다. 이들이 서로간에 리베이트를 주고 받으면서 환자를 사고 판다는 걸... 그것도 환자들을 마치 상품인양 등급까지 매겨 가면서... 일반 보험 환자들은 두당 40~50장, 보호 1,2종 환자들은 20~30장 씩을 주고 받아가면서...

어느날인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잔뜩 흥이 오른 오너란 양반이 내게 "너도 이젠 알아서 니 용돈 벌이라도 해라. 그 정도는 니 능력껏 하면 눈 감아 주마!"라며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양, 가르쳐 준 이른바 자신의 노하우 였다. 순간 확~ 욕지기가 끌어 올랐다. 화장실로 달려가 심하게 구토를 했다.

 

그때부터 난 안정된 직장 이라는 세속적인 것과 인간으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 사이에서 심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젠 업무 차원에서만이 아닌 나 자신이 원해서 술을 찾게 되었다. 아니, 술이 없인 단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퇴근 후, 초 저녁 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 네,다섯시나 되어야 만취가 되어 끝이 났고, 숙직을 하고 난 다음날 오전 퇴근을 하면서도 늦은 아침을 먹으로 들어간 식당에서 밥이 아닌 소주로 그날의 술자리가 좀더 일찍 시작되곤 했다. 일주일에 5일 6일을 그렇게 살았다.

 

몸이 성할래야 성할 수가 없었다.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감을 스스로도 조금씩 짐작할 수 있을 무렵... 첫 징후는 돌연 심장 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 스스로가 알콜 중독의 초기쪽으로 가고 있었던가 보다. 도무지 술에 취하지 않으면 맑은 정신으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점심 식사를 하면서 반주(?)랍시고 소주를 한병쯤 마시고 병원으로 들었갔다. 당연히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입에선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사무실 소파에 몸을 깊숙히 묻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원무과의 젊은 주임 하나가 들어왔다. 오너의 아들 이었다. 조심스레 목례를 하자마자 "계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짐작이 갔다. 못마땅 했을 것이다. 이유를 알면서도 괜히 심사가 뒤틀렸다. 당연히 내 대답은 퉁명스럽게 나갔다. "뭔데?"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은 더듬더듬 "저... 근무 시간중에 약주를 드시고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사님이 아시기라도 하시면..." 순간 열이 확 뻣쳤다. 

 

주체할 수 없이 욕부터 나갔다. "야이 어린 눔의 시키야! " 내게 단 한번도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던지라 녀석은 화들짝 놀라더니 시선 둘곳도 모른채 어쩔줄을 몰라했다. " 뭐? 이사님이 알면??? 너 똑바로 알아둬! 난 니 잘난 아버지의 부하 직원이지, 니 부하 직원이 아냐! 알아들었어? 넌 분명히 내 밑의 직원인 거야.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가르치려고 들어!" 내 고함 소리가 옆방 원장실까지 들렸던지 놀란 원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아니! 무슨 일 입니까?" 희여멀끔에 개기름까지 흐르는 원장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모르게 화는 꼭지까지 올랐다. 뭔가를 항변 하려고 꾸물거리는 주임놈을 향해 "이런 씨벌넘이! 세상살이가 돈이면 다 인줄 아나..." 탁자에 놓인 사기 재떨이를 집어 들었다.

 

"아이고! 계장님 왜 이러세요... 참으세요. 요즘 계장님이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으셔서 그런가 봅니다." 사태를 예상했는지 황급히 달려들어 내 팔을 부여잡는 원장의 얼굴이 보이는가 싶더니, 가슴에 심한 통증이 밀려옴을 느꼈다. "어억!" 난 가슴을 움켜쥐며 소파위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가슴이 온통 쪼그라드는 듯한 통증과 함께 눈 앞으로 오너의 얼굴이 어렴풋이 클로즈업 되어왔다.

 

결국 난 오너에게 내뱉고 싶었던 말을... 홧김에 그 아들놈에게 퍼부어댄 꼴이다. 무슨 말인가 더 소리치고 싶다는 건 의식 속에서만 맴돌뿐, 더이상은 통증이 입을 막아 버렸다.

 

욱욱~ 거리는 속울음과 함께 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사족 : 서두에서도 말슴 드렷듯 이글은 약 7년여전 저 백란이 운영하던 카페에서 만나게된 한 선배의 자전적 인생소설입니다.. 

글이 완성되면 재본해서 딸에게 물려줄거라고 하시던.. 허나 26편을 끝으로 글쓰신선배님의 글은 더이상 올라오질 않앗습니다... 

무슨일이 잇으신건지 그 후로 아직까지도 연락이 끈긴상태이네요..  

혹시라도 이글을 보신다면, 형님~ 다시 전처럼 맛잇는 감자탕에 소주한잔 할수잇는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