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게 설레임을 줄 나이는 너무나도  예전에 지나갔습니다.

사실 50대 중반의 나이는 동성에게 조차  일면식이 없다면 다소 불편을 주는 모양이기도 합니다.

 

 

여인들에게 있어 쌍방의 의지와 관계없이 설레임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지  궁굼하기도 합니다.

화면상으로 보는것과 차이가 있겠지만 연예인 중에서 선택한다면 어떤사람 일까요?

그윽한 눈매 훤칠한키 그리고 밝은색피부의 미소년 일까요?

 

어린시절 또래소녀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설레이고

어쩌다 받은 작은 선물이나 편지에서 그녀의 숨결을 느낄때가 있었습니다.

세월은  모든것을 가져가고  아집과 무력감 그리고  검고 주름진   얼굴만  남겨놨습니다.

 

해외에서 생활할때의 일입니다.

한국사람들이 많지않은 지역이었는데  마트에서 지나치다 한국말을 하기에  한국분이세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아마 부부 인듯 몹시 당황해 하며 말합니다. 반갑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첫마디는 반갑습니다인데  전혀 반갑지않은 얼굴입니다.

 

즐거운 쇼핑이 되시라고 이야기하며 돌아서는데

한국사람 어쩌고 저쩌고 적개심에 찬 그런 말을 하지않나 하는느낌이 들었습니다.

그후로도 가끔만나는 한국사람 마다  서로가 데면데면 하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사교적이지 못해서 일 수도 있지만  반대쪽에서 사교적이지 못한것을 보면  아마 일반적인

한국사람간의 만남인것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하는일 없이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자동차의 홍수에 들고다니는 전화기를 보며 열중해 있습니다.

옛날에는 길을 가다가 무거운것을 들거나 끄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가는 길에도 도와주곤 했지만

엄두도 낼수 없습니다. 더구나 조금 한적한 길에서는 극도로 경계하는 눈길을 보냅니다.

 

신이 있다면 이것은 신의 잘못입니다.

날 좋아한다던 소녀의 해맑은 미소도  그미소를 바라보는 설레임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나는 눈물방울을 세고 그방울 수만큼 신에게 따지고 싶습니다.

신은 왜 인간에게만 생각을 주고 행복과 슬픔을 만들었냐고.

 

깜보님의 외로움론을 보고 한번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