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말레이시아, 필리핀계 주민 인권침해" 항의

대통령궁 "재판 없이 학살" 반발 …관계악화 조짐

(하노이=연합뉴스) 김권용 특파원 =

말레이시아 경찰이 최근의 유혈사태에 연루되지 않은 필리핀계 주민을 살해하거나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필리핀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경찰이 동부 사바 주(州) 대치지역 부근에서 은신 중이던 비무장 상태의 10대 소년 1명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나 양국 관계기 급속 악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ABS-CBN, GMA방송 등 필리핀 언론은 말레이시아 경찰이 최근 필리핀 부족과의 유혈충돌 사태가 발생한 사바 주(州) 셈포르나 지역 필리핀계 주민 33명을 구금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이들에게는 필리핀 무장세력을 선동한 혐의가 적용됐다.

앞서 필리핀 이슬람 부족들이 점거농성을 벌이던 라하드 다투지역에서도 필리핀계 주민들이 경찰에 체포되거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약 80만명의 필리핀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필리핀 정부는 성명을 통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말레이시아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필리핀 대통령궁은 자국 교민들이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비가일 발테 대통령궁 부대변인은 재판 없이 인명을 살해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신변 안전을 우려해 사바주에서 탈출한 필리핀계 주민들로부터 이런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도 관계기관과 공조, 말레이시아의 인권침해 행위를 수집해 향후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성명에서 말레이시아 측의 인권침해 행위는 충격적이라며 현지 관계 당국에 즉각적으로 적절한 시정조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사실무근이라고 관련 주장을 부인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한 고위 간부는 필리핀계 주민들에 대한 가혹행위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경찰은 전날 사바지역에서 수색작전을 벌이던 도중 부근 숲 속의 인기척을 확인하고 총격을 가해 소년 1명이 숨지고 30대 1명이 부상했다.

사망 소년의 국적 등 자세한 신상정보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바지역에 들어간 필리핀 이슬람 부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말레이시아 군경과 필리핀 술루족간의 충돌로 지금까지 경찰 8명 등 모두 62명이 사망했으며 술루족 85명이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