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라면은 뭘까요.
1963년 삼양식품이 만든 ‘삼양라면’이 바로 1호 라면입니다.
저랑 나이가 같습니다...

당시 전중윤 삼양식품 사장이 우연히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배고픈 서민들이
5원짜리 ‘꿀꿀이 죽’과 같은 음식을 사먹기 위해 줄을 길게 선 것을 보고
‘서민들에게 값 싸고 영양가 있는 한 끼를 먹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게 탄생 배경이었다고다.


라면에 대한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정부에 도움을 청해
5만달러를 지원받아 라면을 생산하게 된 삼양식품은
당시 기계값을 뺀 2만3000달러를 정부에 반납했을 정도로
양심적인 기업에서의 출발을 했다고 합니다.

서민을 향한 전 명예회장의 진정성이
당시 일본 라면업계의 대표 기업이었던
묘조(明星)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감동시켰으며
그 결과 기술 지원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중량 100g에 10원이던 삼양라면은 지금처럼
당시 이것저것 남은 음식을 비위생적으로 섞어 끓였던 꿀꿀이 죽이 5원,
커피값이 35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삼양라면의 10원이라는 가격은
 ‘영양가 있는 한 끼 식사 값’으로는 싼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밥과 국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한국인에게 국물과 면이 있는
라면은 친숙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삼양식품은 라면을 보급하기 위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무료 시식회’를 열기도 했으며 전 직원과 가족들이 극장, 공원 등에서
직접 라면을 끓여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맛보게 했다고 합니다.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10원이라는 판매가격을 7년여간 유지한 데다
초기에 벌였던 무료 시식회에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적자 운영을 했음에도
‘라면의 보급 확대와 판매 촉진을 위해서는 투자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당시 전 사장의 판단이었다.

초기에 저조했던 매출은 1966년 11월 한 달 동안 240만 봉지가 팔려 나갈
정도로 늘어났고  1969년에는 월평균 1500만 봉지씩 팔리게 됐다고 합니다.
처음 제품을 선보였던 1963년에 비해 300배나 성장한 것이죠.

그러나 노태우 정권 시절인 89년 삼양식품이 공업용 소기름을
라면 제조에 사용했다는 '우지 파동'이 일어난 것이죠.
이 우지파동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삼양 죽이기 작전'으로  밝혀지고
8년 뒤 법정에서 식물성 유지보다 비싸고 더고급이었다는것이 밝혀져
무죄 판정을 받았습니다만 당시 라면을 즐겨 먹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시장의 판도가 삼양라면에서 농심라면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외에도 ‘곡면’(1965년), ‘미니라면’(1967년), ‘칼국수’(1969년), ‘삼양짜장면’(1970년)을 줄줄이 선보였다.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냉면인 삼양냉면(1970년)도 만들었다. 1972년엔 끓인 물만 부어 3분 후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삼양 컵라면’을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