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간 계약한 집이 내일이면 만기가 되기에 이사를 계획하고 일주일 정도 세부 일대를 돌아다녀 봤는데, 이사하고픈 곳이 없네요. 현재 살고있는 집주인이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데 마침 휴가차 방문하여 자기 집에서 머무르고 있기에 오전에 만나 4개월만 연장하기로 합의하고 내일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디파짓 없이 일년치를 선불로 지불하면서 깍기도 많이 깍았는데, 그 조건으로 한달이나 4달을 연장해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1년을 더 머물러 달라고 부탁을 해서 조금 난감하기도 했습니다만, 내일 함께 세부로 나가서 돈도 찾고 한국식당에서 한식을 하기로 약속하며 4개월 연장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뭐, 연장이 안되거나 집을 못구하면 짐을 아는 사람 둘(한국인 1, 미국인 1) 중 아무에게나 맏겨두고 네그로스를 시작으로 두어달 여행할 계획을 잡아놨었기에 큰 불안은 없었는데, 그래도 살 집이 확보되었다는 것이 나름 마음을 많이 편하게 하네요.

돌아다니다보니 참 위축이 많이 되더군요. 세부에는 가이사노 컨츄리몰이라고 있는데, 바로 그 뒷동네에 가봤더니 집도 별로던데 5만페소(2룸, 2CR, 2층집, 풀리 퍼니쉬드, 싸구려 인테리어), 방 3개 타운하우스인데도 7만페소와 9만페소(풀리 퍼니쉬드)를 부르기에 돌아다닐 엄두를 못내고 그냥 접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죠.

정말 마음에 드는 집(대규모 단지내 넓은 정원, 과실수들, 넓은 2층집, 3구 가스레인지 등 풀리 퍼니쉬드)을 25,000페소에 네고시어블이라고 해서 1년치 선불을 미끼로 네고 들어갔더니, 주인 왈 "라스트 프라이스"라며 아예 말을 못꺼내게 하더군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계약은 포기했지만, 주인과 직접 면담한 것은 아니기에 가을의 한국방문 후에도 비어있으면 그 가격으로 계약해볼까 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4개월만 연장한 것이기도 하고요.

어제는 밤에 갑자기 지방쪽으로 가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마음에 드는 집이 몇 있어서 텍스트를 날렸더니 대부분 응답이 없네요. 응답이 온 한 곳은 집주인 친구집에 차를 주차한 후에 걸어서 15분은 올라가야 한다는데, 이놈의 살림살이가 어느 사이에 이리도 늘었는지 하룻만에 한국산 세탁기와 원목책상 등을 처분하고 이사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일단 다음 주에 놀러가보고 마음에 들면 4개월 후에 이주를 고려해보려고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유달리 많이 가져본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었네요. 이유 없이 비싼 집들 앞에서 주눅이 많이 들기도 한 날들이었고요. 혼자 한달에 10만 페소 정도를 쓰면서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현지에서 별도의 수입이 없다보니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고는 갑자기 최빈곤층으로 내려 앉은 느낌도 가져보았고요.

집 구한다고 돌아다니다 저녁에 돌아와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필리핀에서 가족들과 함께 소규모 자영업을 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을텐데 가족의 안전과 건강먹거리라는 화두로 인하여 필리핀의 저렴한 물가를 느껴보지 못하는 분들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마음이 힘들 때 서로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필요할텐데 교민 상호간의 불신으로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오늘 저녁에는 족발에 쐬주 한병 까고와서, 타국에서의 각박한 삶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가며 살아가는 필리핀 교민사회가 될 수 있기를 꿈꾸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