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버지가 가르쳐준 애국가 (펌: 국민일보)
[‘코피노’에게 주님의 사랑을] (3) 아버지가 가르쳐준 애국가
- 2013.07.08 21:22
아빠와 추억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뿐
“버림받은 아이라 놀림당해 속상하고 창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북쪽에 있는 엥겔레스 시티는 필리핀 최대의 유흥도시이다. 한 곳당 300∼400여명의 여종업원이 일하는 수백 개의 클럽이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룬다. 업소 앞 곳곳에는 짙은 화장을 한 여종업원들의 호객 행위가 밤새 이어진다. ‘마사지’ ‘텐프로’ ‘두꺼비 KTV’… 등의 한글 간판이 잇따른 그곳을 보며 구약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올렸다.
이들 업소는 엥겔레스 시티의 한인타운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환락을 탐닉하는 한인들의 수요를 좇아 하나둘씩 모여든 것이 대규모 밀집지역이 됐다는 것이 현지 한인들의 설명이다.
메신저 인터내셔널(이사장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에 따르면 필리핀 전역에 있는 1만5000명의 코피노 중 엥겔레스에만 2000여명이 살고 있을 정도로 이곳은 코피노들의 주요 주거지역이다.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나 필리핀에서 생활하는 코피노가정은 유독 극빈층이 많다. 극복할 수 없는 궁핍은 ‘성매매 대물림’이란 충격적인 실태까지 낳는다. 필리핀에서 20년 넘게 사역하는 한기역 선교사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빈민가 출신으로 이들이 임신해 일을 못하게 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그럴 경우 생계를 위해 딸들이 유흥업소에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코피노 가정 중에도 그런 케이스가 종종 발견되곤 한다”고 우려했다.
메신저인터내셔널 엥겔레스센터의 사회복지사인 필리피노 리진(37·여)은 “미국·일본·중국인 남자와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도 많지만 그들은 적어도 핏줄을 인정하고 생활비를 지원해 준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임신 사실을 알면 소식을 끊어버려 한국 남성을 보는 필리피노들의 시선은 특히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 때문에 건강한 코피노 가정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리진은 설명했다. 그는 “코피노 가정 중에는 엄마가 교육을 많이 받은 평범한 주부이고 한국인 아빠가 함께 살며 가계를 책임지는 집들도 적지 않은데 주변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이들 가정마저 오해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라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사는 코피노들의 모습은 쉽게 목격된다. 지난달 말, 엥겔레스 외곽의 한 빈민가에서 코피노 3남매를 만났다. 좁은 골목길을 몇 번 돌아 찾은 이들의 집 앞에는 한국어로 쓰여진 자동차 표지판이 문패처럼 붙어 있었다. ‘경기 여주 바 0000’. 긴 생머리에 커다란 눈망울의 미선(가명·14)이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미선에게 “혹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노래가 있다”고 말했다. 한번 불러봐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검은 눈동자를 깜박거리며 망설이던 미선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애국가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한국어 발음이 또렷했다. 두 동생들도 따라 불렀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에 대한 짙은 원망 가운데서도 그리움의 끈을 놓지 않는 천륜에 가슴이 뭉클했다.
미선의 엄마 아이란(가명·34)은 1996년 한국인 P씨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관광가이드였고 남자는 한국 여행사 직원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2006년 현지에서의 중고차판매 사업이 망하면서 그는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떠났다. 이어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떠난 후 편지 한 통이 날아왔어요. 폐암으로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이후 친가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면서 거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구걸까지 하게 됐어요. 지금은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가정부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코피노들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반면 아버지의 나라 핏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미선은 외모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을 때가 가장 속상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 누군가 ‘너 코피노지?’라고 해서 ‘난 코피노가 아니야. 난 필리피노야’라고 말하고 울음을 터뜨렸던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코피노들을 돌보는 한인 관계자들은 “필리핀에서 코피노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란 인식이 퍼져 있다”며 “따라서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 못지않게 상처입은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정체성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엥겔레스(필리핀)=글·사진 이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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