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12시 경. 
공항에 친구들을 배웅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탄 택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씁쓸한 담배를 피고.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안에는 1명의 운전수와 보조석에 앉은 교대근무자라는 1명.
가는 길이라 중간에 내려줄거라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몇분이 지나 리조트 월드를 지날 때쯤 낯설은 도로로 빠지는 것이다.
그때 미터기를 확인했는데 미터기는 켜져 있지 않았고, 보조석에 앉은 사람이 말한다.
올티가스까지 3500~4000페소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1킬로미터당 돈이 추가된다고 한다.

난 그런 돈을 낼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친구들과 공항가기 전에 식당가서 밥먹고, 택시비 하고 돈이 800페소 남아있었다.
동전까지 정확히 820페소.

나에게 흉기를 내밀지는 않았지만. 
'어디서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납치 당했구나! 내가 납치를 당했구나!' 

그리고는 같이 살고 있는 형한테 문자로 '형, 저 납치당한것 같아요. 택시비 4천페소 달래요.'
하지만 답장이 없는 형..

필리핀 살면서 들어보기만 했던 일이 내게도 일어난 것이다.
속으로 침착하자. 차분하게 대처하자.

내가 남자치고 길치라서 길을 잘 익히지 못한다.
그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첫번째, 인적이 드물고 차들만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그들은 나에게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미그레이션 폴리스로 데려갈 것이라고 협박한다.
난 가진 돈이 충분하지 않았고, 집으로 데려다 주면 돈을 갖고 나오겠다 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내가 집으로 가면 경비들이 있어 도움을 요청하면 되기 때문에 자신들도 못 받을 걸 알고 있었다.
그저 난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이동한다.
이동한다기보다는 같은 장소를 돌고 있는 듯 했다. 

이미그레이션 폴리스? 근데 거기가 무슨 기관이지? 
워킹비자 신청할때도 이미그레이션 가봤지만 경찰서는 못봤었는데.

그리고 당장 지불할 수 있는 금전적 상황이 되지도 않았다.
이 나라에서는 평소에 외출할 때 잃어버리거나 훔쳐갈까봐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쓸만큼만 가지고 다닌다.

두번째, 정말 돈이 없냐고 묻더니 카드로 돈을 빼라 아니면 핸드폰을 줘라.
난 핸드폰이 있어야 하고, 지금은 지갑이 없어서 카드가 없다고 했더니 보조석에 앉은 강도가 내 앞뒤 바지 주머니를 확인한다. 그래도 없으니 지기들끼리 따갈로그로 따갈 따갈한다. 핸드폰을 뺏어갈 줄 알았지만 뺏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옷? 하더니 그냥 뒤돌아 앉는다. 옷도 뺏지 않았다. 

세번째, 택시가 서행하는 앞차 때문에 속도를 줄인다. 이때 난 문을 열고 뛰쳐 내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뒷 좌석의 양쪽문은 안에서는 열리지 않는 문이었던 것이다.
걸렸다. 이들이 나의 행동을 보더니 당황해 한다. 나 역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며 쿵쾅쿵쾅하는 심장을 억제하고 있었다. 이때 난 이들이 흉기로 위협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이때 난 이들이 초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차를 타고 배회한게 30분정도 지났나? 
모르는 길로만 이동하더니 결국은 이미그레이션 폴리스로 데려가지도 않았고, 흉기를 내밀지도 않은채
가진돈만 달라고 한다. 

전재산 820페소. 800페소 줬다. 그리고 20페소도 줄까? 했더니 '그건 For you!' 란다.
속으로 웃기기도 했지만, 이 사람들 범행이 우발적인건가? 차문이 안열린거 보면 계획적인건데.. 
그리고 한번 더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20페소가 있는데 이 돈으로 올티가스까지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또 자기들끼리 따갈 따갈 하더니 보조석 강도가 쿨한척 100페소를 넘겨준다.
그리고는 보조석 강도가 내려서 뒷 좌석 문을 열어준다. 

이때 이들을 어떻게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나는 인적도 없는 공해만 가득한 고속도로 위에 서있다. 두렵기도 하고 놀랐지만 이들을 어떻게 하기에는 무법천지인 이 나라에서 감당할 수 없기에 그저 유유히 보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정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필리핀에 살고 계시는 한인 여러분들. 
혹시라도 택시 강도를 만났을때는.. 
문짝에 적혀있는 플레이트 넘버를 주변인들에게 문자로 알려주세요.
저는 당시에 이런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습니다.

필리핀 사건사고도 많이 보고 들었습니다. 
조심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언제 어디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년 가까이 살고 있는 제게도 이런 일이 생길줄은 상상도 않해봤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다치지도 않았고, 가볍게 끝난 에피소드지만. 
차분하게 대처하시고,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은 삼가하세요.

그럼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