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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다문화가정 100여명 무료 스키캠프…“새해엔 친정 가고 싶어”
* 아! 아라이 : 아야! 아팠어


“아! 아라이!”(아야! 아팠어) “마똑나우.”(춥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엄마들은 신났다. 눈밭에 뒹구는 서로를 쳐다보면 웃음이 터져나온다. “스키장 처음 와봤어요. 눈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봐.”

필리핀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 니다 타바코(36)는 한국 생활이 10년째이지만 스키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필리핀 출신인 로잘린(48), 비비안(35), 레마(39), 아마벨라(40) 등도 눈 덮인 산을 올려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났다. 스키장에서 만나 서로 친해진 수진(11)양과 유미(8)양은 벌써 스키를 타는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하다. 

다문화가정의 엄마·아이들 100여명이 29일 강원 평창의 한 스키장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섰다. ‘스포츠를 통한 나눔’을 고민하던 국민체육진흥공단 경주사업본부에서 경기 안산·광명 등에 사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무료로 마련한 ‘다문화 스키캠프’ 덕분이다. 종종 강원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수십명 규모의 캠프를 열긴 했지만 100명이 넘는 대규모는 이번이 처음이다. 40여가구 가운데 중국·일본·러시아에서 온 7명의 엄마들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필리핀처럼 눈을 보지 못하는 나라 출신이다.

4~13살의 자녀들을 포함해 모두 초보자 강습반에 들어갔다. 러시아에서 온 마리나(30)도 초보자 코스에서 자꾸만 넘어진다. “러시아가 산이 없어요. 평원에서 다니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위주라서.” 남편 최성주(40)씨가 멋쩍게 웃었다.

“스키장은 멀고 비싸 생각도 못했는데, 필리핀 친구들이랑 애들까지 같이 간다고 해서 왔어요.” 추위에 약한 니다 타바코는 다른 엄마들처럼 내복에 스웨터로 중무장을 했다. 춥지만 처음 배우는 스키를 너무 즐거워했다. 

니다는 3개월 뒤면 남편 성을 따서 ‘민지원’이란 한국 이름도 갖는다. 그의 새해 소망은 “좀더 큰 집”이라고 했다. 작은 제조업체에 다니는 남편과 동네 공부방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니다, 그리고 아들 동진(9)군은 경기 안산에서 방 두 개짜리 전셋집에 산다. 

다른 필리핀 엄마들도 새해 소망에 대해 ‘수다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2000년 결혼한 로잘린은 “새해엔 가족들과 친정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2003년 필리핀 민다나오의 친정을 찾은 뒤로 아직 가지 못하고 있다. 다른 엄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핀에서 와 한국 이름으로 개명한 이지니(41)씨가 “새해 소망이라면 가족이 다 건강하고 화목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활짝 웃었다. 

평창/정유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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