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글을 처음 남기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태풍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태풍 관련 글이 아니라 누가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필리핀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제 사랑하는 필리핀 친구들과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났던 여타 사람들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글쎄, 저를 내세우려고 쓰는 글도 아니고 누군가를 비방하려고 쓰는 글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했던 경험들, 그것들이 여러분들의 것들과 조금은 다르기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 다닐때에도 제 과는 아니었지만 사회과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 공부를 많이 했고, 결론적으로는 사회과학 3과(정치, 경제, 사회학)을 모두 전공한 셈이 되었네요. 그래서인지 필리핀에 갈 때는 영어를 공부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필리핀 사회를 보고 흔히 제 3세계라고 불리는 국가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관심분야가 그쪽이다보니 자연스럽게 필리핀에서도 엘리트들과 많은 교제를 하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서 인맥을 넓혀나갔습니다.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University of Philippines(UP)에서 수학을 전공한 친구(A)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더불어 UP와 Ateneo대학교에 있는 '교환학생'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저도 그땐 젊음에 취해 낮에는 영어공부를, 밤에는 술과 파티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프랑스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B)와 UP수학과 A와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인 남자인 그 친구는 파리고등사범학교라는 그야말로 최고 엘리트 기관(미쉘 푸코, 들뢰즈 등)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친구였고 때문에 평소 프랑스 철학에 관심이 많은 저는 그 친구에게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무진 애를쓰던 중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미쉘 푸코에 대해서는 알았는데, 중간에 피에르 부르디외(프랑스의 사회학자)를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하자. 그는 부르디외를 모른다며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제 발음 때문에 그런가 하여 저는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부르디외를 보여주었는데 그래도 그는 잘 모르겠다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A는 수학과 였음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부르디외의 철학과 이론들을 그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친구도 영어가 능숙한 것이 아니었기에 다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종합해보면 필리핀 수학과 친구가 프랑스의 정치학과 학생에게 철학자를 알려주고 있는 그 모습이 저에게는 단연 충격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이 어떻게 보이시나요? 저는 교환학생들과 지내면서 의외로 이런 장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필리핀들의 엘리트들 말이죠. 참 똑똑하고 명석한 필리핀의 엘리트들. 마침 영화 '완득이'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나라가 가난 해서 그렇지, 저 여자(필리피나) 배울만큼 배운 여자야"라며 완득이에게 엄마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부분이요.

자, 그러면 이제 그 대화 이후에 결과를 봐야 되겠죠? 그 UP에서 수학을 전공한 친구는 어느 콜센터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그 콜센터 말이죠. 한 달에 50만원 남짓 받는. 반면 프랑스 친구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것 같은데... 글쎄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페이스북 업데이트가 없거든요. 아마 A가 들어간 회사 본사에 들어가 마케팅 전략이나 새로운 기획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죠. 

제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이것입니다. 제 3세계의 엘리트들의 종착점을요. 그리고 구 제국들의 잔재들이 아직까지 어떻게 남아서 그 종속관계를 유지시키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셨나요? 왜 필리핀이 계속 가난한지? 그것은 제가 볼 때 능력,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입니다. 

필리핀에서 엘리트들이 가야할 곳이란 이미 정해져 있죠. 그리고 구 제국들의 후손들에게는 아직도 많은 기회들이 널려있고요. 잘 정비된 인프라와 튼튼한 사회복지. 그것들이 약 50~100년 전 자신들의 선조가 제3세계로부터 수많은 자원들과 노동력의 수탈을 통해서 이룩해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채. 

그리고 또 다른 필리핀의 어린이들은 그 콜센터에 들어가는 것을 꿈으로 삼아 공부를 시작하겠죠. 대학에서는 학문의 증진을 위한 피터지는 연구가 벌어지는 대신, 코피 터지는 암기와 시험들이 즐비해지겠죠. 이런 사회에서 어떤 창조적 동력이 나올까요? 어떤 학자가 나오고 뛰어난 발명이 나올까요? 엘리트들을 단순 상담직에 앉혀놓고 그 고급노동력을 평가절하 시켜버리는 이 나라에서 엘리트들이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요?

사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대학교육 그리고 사회의 인재상이라는 것. 참 할말 많긴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줄일게요. 우리 모두 생각해봅시다. 필리핀인들은 다 이렇다 저렇다 그런 말들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생각해보시면 그들이 조금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다음 편도 써보고 싶네요^^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