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병은 망국의 오지랍병
주위를 둘러보면 피노이들 때문에 스트레스 안받는 사람이 없다.
특히 경제생활을 하면서 피노이들과 부딪히며 사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달한다.
사랑의 임무를 띠고 온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피노이들에게 당해본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텅 비우고 그저 의무감으로 일한다. 쉽게 말하면 포기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피노이가 좋은 사람들이다, 가난이 죄지 사람이 죄냐, 따위의 말을 한다면 따귀는 안맞더라도 철없다고 비웃는 소리는 들어야 할 것이다.
피노이들과 거의 부딪히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 그들 역시도 어떤 방식으로든 피노이들 때문에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산다.
예를 들면 어느 동네에 가면 한국사람 집 중에 도둑 안맞은 집이 없다고 한다. 어떤 집은 두번 이상이나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피노이는 좋다, 한국에는 도둑놈 없냐, 따위의 소리를 한다면 이 역시 뺨은 안 맞아도 욕은 얻어먹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주변에서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못봤다. 모두 하나같이 피노이들의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 피해사례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달래고 피노이들에 대한 울분도 달랜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참 희안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현실생활과는 반대로 피노이들은 좋은 사람이다, 필리핀은 살만한 곳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 일명 피빠들이 많은 것이다. 왜일까? 현실에서는 그런 철없는 사람들이 없는데, 어째서 온라인에만은 득시글거릴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온라인이라는 특성. 온라인에서는 이상적인 말에 대해서 비판을 잘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럴 듯한 말을 하면 그럴듯한 댓글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 댓글을 보면 글쓴이는 자아만족, 자기 존재감등을 경험하면서 점점 더 노스텔지어의 이상향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명명하고자 한다.
'착한 병에 들뜨다."
이 착한병에 감염된 자들은 모두가 다 자기편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서, 간혹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을 받으면 하나같이 훼까닥 돌아서 매우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공격성은 온라인에만 그치고 감히 현실로는 나오지 못한다. 물론 착한병 증세 또한 현실에서는 감히 나타내지 못한다. 현실에서 그랬다간 뭇매를 맞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둘째는 개인적 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 남을 사랑하고 포옹해준다는 것은 품격있고 바람직한 행동이다. 그러나 이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보다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어울리는 양식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가 감추어진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높은 곳에 있는 듯이, 자신이 강자인 듯이 말하고 싶어진다.
바꿔 말하면 현실에서는 남을 사랑하고 포옹해줄 주제가 못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그렇게 가장함으로써 - --본인은 그게 가장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남을 돕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주절거리지도 않고 비판을 받았을 때 팽 토라져서 앙앙대지도 않는다.
착한 병은 개인에게도 좋지 않지만, 전염성이 강해서 쉽게 전염이 되고, 전염되었을 때는 그 피해가 막대해진다. 치료 불가능한
''망국의 오지랍병''
으로 발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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