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기억이 출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인과의 흔적이 불투명한 것은 소멸조차 불투명하고
술냄새 잔뜩 물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나,
멀쩡히 빈 머리가 무거워 돌아눕는 날이나
깨어나는 순간 담배 한 개비를 물듯
그저 습관처럼 살아있다면
지금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

당분간은 된 것이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긴장과 맞서 싸우는
지나친 의무감이 나이를 만들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아
쓸모없는 농담으로 헤헤거려도
어디서부터 삶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한뭉치 솜덩이에 끼니대용의 술을 적셔
대상없는 화풀이에 목을 찢어도 늘 그렇게 감감한
애당초 삶은 시작이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늘 끝이 보이지 않고
영원한 잠과 영원한 불면이 교차하는
어제도 내일도 모두 오늘을 맴도는 것인지 모른다.

언젠가 스쳐지난 듯한 바람 냄새 속에
언젠가 스쳐지난 듯한 상황 속에
분명 무언가 확실한 사건이 있었다는 짐작만 남고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궁금하기만 그지없는 공허 때문에
소주로 간을 적시고 살아남는
나의 기억은 어디에서 끝이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