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려운 까닭은
살아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가 아니다

때론 어린아이들의 낯에서 읽히는 영악한 눈빛에 더 소름이 돋는다

연륜이 쌓여간다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지
알기 시작하면서 나이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도 술먹고 개되는 버릇은 못버리듯
세월과 품성과는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늘상 그래왔듯 너도 나도 조금 더 위장술을 익혀가는 게 삶이었다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처세술에서
비겁한 자기 기만과 눈속임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좀더 약발이 잘 받는 변명을 강구하고
이도 저도 합리화가 불가능할 때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한마디로
재단이 가능해지는 것이 두려움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와 속을 뒤집어 놓고 가는
저잘난 사람과의 술자리에서 꾸역꾸역 참고 듣던
시덥잖은 충고에 부아가 나버린 날
잠자리에 누워 그래도 어딘지 뒤가 구려 잠이 오지 않았던
그래 그런 것이 자꾸 쌓여가도 다음 날이면
변함없이 또 어제와 같은 일상 속으로 몸을 던지고
나 몰라라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객기일지 모른다는 생각

잡스런 생각 끈질기게 머리를 물고 늘어지는 고민이라는 생각
생각을 끊기 위한 생각, 생각 아직은 결정되지 않은
여분의 삶에 대한 충성도가 너무 낮아 보내는 날마다
파렴치가 주된 소일거리인 아직까지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두려운 까닭은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이 남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