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귀국하면 다시 상세하게 써서 올릴 예정)

며칠 전 항상 하듯이 오후 4시쯤 작은 배낭 메고 루존 지역의 A시에 있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마땅히 반찬거리가 없어서 돼지고기 사다가 김치와 함께 잘게 썰어서 김치전이나 만들어 먹을 심산으로...

꽤 큰 시장인데 걸어서 15분 정도로 걸어서 다니기 알맞은 거리라 운동 겸 항상 걷거나 뛰어서 다녀온다.

해변과 시장이 걸어서 다니기 알맞은 거리라 이곳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거주한지 1년이 넘었다.

필리핀에서는 영어로 아파트라고 부르는데 한국처럼 몇 층짜리 건물이 아니고 단층 연립주택인데 전부 20가구이다.

입구에 24시간 경비도 있고 조용하고 저렴해서 이곳을 선택했다.

간단히 나에 대해 소개하면 나이 60세의 은퇴한 남자로서 여름에는 주로 한국에 있다가 10월쯤이면 필리핀에 와서 겨울을 지내고 4월이면 귀국한다.

물론 작년에는 여름 중간에 아파트 관리 겸 해서 두 번 단기간으로 다녀갔다.

부티 나게 사는 은퇴자로 오해는 말기를....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생활이 지내기 힘든 겨울이라는 계절을 피하면서도 한국에 살면서 사용하는 생활비와 거의 비슷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몇 년 되었다.

주변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은 없고 독신이다.

항상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주변 필리핀인들과 마찰 없이 지내고, 또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따갈록어로 대부분 의사표현과 1대1 대화는 가능하다.

하지만 필리핀인들 끼리의 대화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섞어서 따글리시로 하면 표현력에 있어서는 현지인 못지않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지만, 나이 들어서 시작한 새로운 외국어라 따갈록어 자체는 쉽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흰 머리카락도 별로 없이 모발상태도 좋고, 또 항상 절제하고 아침저녁 거의 매일 백사장을 달리고, 또 집에 돌아와서는 추가적으로 아령, 윗몸 일으키기 등, 열심히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50대 미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또 더욱 고마운 것은 작년 5월경에 알게 되어 문자로 안부 정도 물어 보면서 보내던 37살 필리핀 처녀(이하 “약혼녀”라고 칭하겠다.)가 작년 크리스마스 지나고 나서 이곳을 방문하여 처음 대면하여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인생관이 비슷해서 함께 살아 보자고 결정을 하고 돌아갔다가 1월 초에 다시 와서 10여일 이상 함께 지내다가 돌아갔다.

37살이나 됐는데 어떻게 아직도 처녀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녀는 상당기간 수녀원에서 수녀생활을 하다가 수녀원 사정으로 다시 환속하게 된 경우이다.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필리핀에서는 항상 있는 일이라고 한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여기로 이사 오기로 하고...

함께 며칠 지내보니, 절약정신 강하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나 정도로 빨리 그리고 오래 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함께 해변을 달릴 수 있고....

채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집도 사고, 차도 사서 그녀랑 행복하게 사는 온갖 무지개 꿈에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하늘의 축복 속에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충만한 기간 중에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내 오던 나의 필리핀 생활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라 대단히 당황스럽다.

드디어 필리핀 생활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정리해 보겠다.

시장 가운데에 위치한 돈육시장에서 돼지고기를 반 킬로 사서 배낭에 넣어 메고 시장입구를 빠져 나오는 중에 사건이 일어났다.

입구 근처에 있는 핸드폰, 모조 CD 등을 팔고 있는 소규모 잡화점 가계를 지나서 시장 외부에 있는 도로에 도착한 즈음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등을 건드리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처음 보는 필리핀인이라 누구냐고 물어보니, 처음 보는 푸른 색 노트북 컴퓨터(브랜드명: Sony)를 내 보이면서 바로 근처에 있는 핸드폰 가계 주인인데 한국 사람인 나에게서 샀다는 거였다.

그리고 컴퓨터 작동을 위한 기본 프로그램이 전혀 깔려 있지 않은 것을 만 페소 달라는 것을 깎아서 오천 페소(현재 환율 고려, 125,000원 정도)에 속아서 샀다는 것이다.

컴퓨터 도로 가져가고 오천 페소 내 놓으라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 기가 막힐 수밖에...

당연히 나는 이 컴퓨터를 본 적도, 판적도 없고 더욱이 당신(이하 “그놈”이라고 칭하겠다.)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말 했지만 우루루 몰려들어 둘러싼 필리핀인들 속에서 먹혀 들리는 만무했다.

그러다 보니 근처에 있던 경찰 2명도 오고...

경찰에 같은 말을 반복 했지만 당연히 내말을 들어 줄 리는 없고...

우선 조사를 위해 바로 옆에 있는 바랑가이(한국의 동(洞) 단위에 해당)사무실로 가자고 해서, 우선 그놈 가계를 보고 싶다고 우겨서 가게를 가 보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린 적 없는 가게인데, 그놈은 작은 의자를 가리키면서 내가 여기에 앉았었다고 우겼다.

바랑가이 사무실에 돌아오니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그놈의 아내)도 따라 들어오고 입구 주변에는 그놈 졸개들인지 여러 명 들여 다 보고 있는 상태에서 경찰이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돈만 약간 주머니에 넣고 시장을 보러 온 상태에서 신분증도 핸드폰도 없는 상태이다 보니 그놈은 더욱 기고만장해서 나를 사기치고 돌아다니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로 몰아 세웠다.

그놈의 아내까지 내가 맞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사무실 앞에 있는 필리핀인들도 함께 동조하는 듯 했다.

나는 거의 매일 이 곳 시장에 와서 물건을 사는데 내가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겠느냐고 항변해 보았지만 그놈은 한국인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한국인은 그런다고 노골적으로 질시의 눈을 부라렸다.

황당한 것은 영수증이나 무슨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있는지 물어 보았지만, 전혀 제시하지 않고, 눈으로 본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나를 사기꾼으로 몰아치는 것이다.

우선 사정해서 경찰 동행 하에 내 아파트에 가서 신분증과 지인과의 연락을 위해 핸드폰을 가져 오자고 했더니, 내가 거주하는 바랑가이 사무실에 연락해서 바랑가이 사무실 직원 몇 명을 오게 해서 그들과 동행으로 아파트에 돌아와서 신분증과 핸드폰을 가져 왔다.

당연히 내가 거주하는 바랑가이 직원들은 이곳에 살면서 항상 걸어서 돌아다니는 나를 모두 여러 번씩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파트에 갔을 때, 경비더러 이미 퇴근한 아파트 관리인인 동갑내기 필리핀 여성에게 연락해서 시장 근처에 있는 바랑가이 사무실로 와 주도록 조치했다.

경찰이 내 여권과 2개월 이상 체류자들에게 발급하는 외국인 여행자 증명서, 필리핀 운전 면허증으로 나의 신분에 문제없음을 확인했고, 아파트 관리인이 도착해서 장기간 아파트 거주하면서 이웃과 잘 지내면서 살고 있고,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경찰은 별 볼일 없는 듯 바랑가이 사무실 주관으로 해결하라고 하고 가버렸다.

또 조사과정에서 그놈이 컴퓨터를 산 날짜가 약혼녀와 함께 있었던 기간 중이라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로 현 상황을 약혼녀에게 설명해주도록 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내일 아침 일찍 오겠단다.

함께 있었던 기간 중,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약혼녀만은 나의 결백을 100% 믿어 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 오천 페소 주어 버리고 한국에서 좋은 식당가서 식사 한 끼 한 것으로 치면 되니까...

나의 신분이 확인되고 아파트 관리인이 나의 신원을 보증하기 때문에 오늘이 금요일이고 이미 늦은 시간이라 월요일 아침에 만나서 다시 시비를 가리자고 해서 그러기로 하고 아파트로 돌아 왔다.

바랑가이 사무실을 나오기 전에 그놈은 그 이전이라도 오천 페소 돌려주고 컴퓨터 가져가면 없었던 것으로 하고 끝내겠다고 한 마디 덧 붙였다.

아파트 관리인과는 내일 사무실에서 만나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헤어 졌다.

아파트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별로 걱정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필리핀을 더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은 태평스런 생각도 들었다.

그놈이 주장하는 날에는 약혼녀와 24시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생활했으니까 같은 필리핀인들끼리 서로 얘기를 하면 충분히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이유도 있었고....

다음 날 아침, 평소대로 6시경 해변을 달렸고, 중간에 아는 필리핀인을 만나면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노라고 설명도 해 주었다.

9시 경에 약혼녀가 버스로 오는 중이고 곧 도착할 것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정문 경비에게 약혼녀가 도착하면 관리실로 안내해 줄 것을 부탁해 놓고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우선 관리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아파트 관리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현 상황에서 내가 컴퓨터를 팔았다 안 팔았다 시비를 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이미 나를 지목했고, 더 이상 시비가 확대되면 나의 안전에 문제가 된다.

그들은 조직이 있기 때문에 목숨까지도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오천 페소 주고 그 컴퓨터를 받고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고, 아파트 관리인 본인도 이런 상황이라면 오천 페소 주고 말겠단다.

때마침 약혼녀가 도착해서, 두 사람만이 진솔한 얘기를 나누도록 하기 위해 자리를 피해 주었다.

10여분 후에 다시 들어갔더니 관리인은, 둘이 돌아가서 함께 상의하고 빠른 시간 내에 연락 달라고 했다.

그러면 오늘이라도 그들과 연락해서 마무리하도록 조치하겠단다.

아파트에 돌아와서 약혼녀도 겁을 먹었는지 오천 페소 주고 끝내자고 나를 설득했다.

나의 양심이 알고, 그녀도 알고, 하느님이 알고, 아파트 관리인도 알고 있으니까 더 끌어 봐야 위험해지고, 또 사건이 확대되어 고소하는 상황이 생기면 변호사비 등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목격자 증인을 내 세울 것이고, 나는 증인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그녀 자신뿐인데 법정 증인으로서는 자격이 없다는 점도 강조하면서....

그러니 어쩌랴? 설득당할 수밖에.....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복수는 하느님에게 맡기고 잊으라고....

마무리 과정도 더 상세히 서술하고 싶지만 또 다른 한국인이 당하지 않도록 빨리 알리기 위해 내용은 다음 기회에 올리기로 하고 생략한다.

컴퓨터 받아와서 다시 자세히 보니, 제조국가도 없고 자판기에는 영어 알파벹과 일본어 히라까나가 함께 병행되어 있다.

약혼녀는 떠나면서 이제는 시장에도 가지 말고, 해변이든 어디든 혼자서 돌아다니지 말고 자기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약혼녀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내가 걱정이 되어 내일 당장 여기로 와서 함께 생활을 시작하겠단다.

어쨌든 오만가지 생각과 고민으로 마음이 찹찹하다.

병도 얻고 약도 얻었다고 해야 하는지.....

또 다른 필리핀인들이 같은 컴퓨터 한 대씩 들고 아파트에 몰려와서 도로 물어내라고 할 것 같은 두려움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