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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필리핀 민다나오섬 바굼바얀 지역의 마을에서 한 남성이 총기를 들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다./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탕탕탕! 잠에서 깨기엔 이른 시간이었건만 난데없이 들리는 총소리에 놀라 잠이 달아난다.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 필리핀인 가드에게 물어보니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늘상 있는 일이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게다가 아침에 들렸던 동네 슈퍼마켓 주인장에게 새벽녘의 총소리에 대해 물어봐도 그의 반응은 가드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분명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일진대 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의 반응은 무어랴. 이는 필리핀이 총기 사유 허가제 국가라는 사실을 무색케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쉬이 접할 수 없는 총기가 필리핀에서는 얼마나 퍼져있기에 국민들 간에 이토록 암묵적 승인이 이루어진 것일까.  또 과연 이런 나라가 한 해 한국인 관광객 100만명을 맞이할만큼 안전한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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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필리핀 민다나오섬 사우스 코타바토 주의 무슬림촌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소유한 총기를 선보이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 필리핀의 특산물, 바나나 아닌 총?

 필리핀에서는 시골 마을 내의 시장에서부터 마닐라와 같은 대도시의 쇼핑몰까지 어디서든 쉽게 총포상을 찾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경찰청장의 허가가 있어야 소지 가능하지만 실제 상점에서의 구입은 돈만 준다면 초등학생도 총기를 구입할 수 있을만큼 거래가 자유롭다. 

 또한 부패가 심한 필리핀의 군대와 경찰에서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자신들에게 배급된 총기를 빼돌려 판매하며 총기 유동량 증가에 한몫 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해외 무장단체들의 필리핀 반군들에 대한 무기 지원과 서민들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제작하여 판매, 보유하는 총기까지 합친다면 경찰청에 공식 집계된 100만여정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규제받지 않는 총기의 대량 유통과 그 다양한 경로는 필리핀 내의 총기 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으며 강도, 살인과 같은 일반적인 범죄에서부터 테러, 전쟁과 같은 국가적 문제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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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필리핀 민다나오섬 사우스 코타바토의 산속 마을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수류탄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남성은 과거 자신이 필리핀의 한 무장단체에 소속돼 있었고 자그마한 권총부터 산탄총, 라이플에 이르는 무기까지 소유하고 있다며 자신외에도 지역주민 대부분이 각종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한 수류탄은 과거 무장단체에서 활동할 당시 필리핀 정부군에게 음성적인 루트로 구입한 수류탄이며 현재 무장단체들과 불법무기소지자들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류탄 등 허가 받지 않은 살상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주목할 만한 것은 필리핀 내에 유통되는 총기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군 부대 및 경찰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라는 점이다. 

 부패가 만연한 필리핀 군경세력 내에서 총기 판매는 하나의 주수입원으로 그들 사이에서 일익을 담당한 지 오래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총기를 파는 것과 똑같다는 얘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판매하는 총기가 매우 다양하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총포상에서 취급할 수 있는 무기들은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군경에서 빼돌리는 총기들은 일반적인 권총, 소총부터 기관총, 심지어 수류탄에 무반동포까지 그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누구든 돈만 있다면 사병 조직을 만들 수 있고 심지어 테러단체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더욱이 비싼 가격의 새 제품보다 다소 저렴한 중고품이라는 점 때문에 인기가 많으며 밀매로 이루어지는 특성상 집계가 어려워 얼마나 많은 양이 유통되고 있는지 파악이 어렵다. 

현재 정부와 반군단체간의 알력다툼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와 같은 모종의 거래가 이루진다는 것은 스스로 반대급부를 키우는 행위라는 점에서 모순된 결과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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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필리핀 민다나오섬 바굼바얀 지역의 마을에서 한 소년이 자신이 제작한 총기를 선보이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 필리핀은 총기도 가내 수공업

 필리핀 민다나오 섬 내에서도 위험하기로 유명한 어느 산 속의 무슬림 지역. 이 곳에서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이한 총기들이 많다. 바로 직접 수제작한 총기들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원주민에 가까운 열악한 경제환경속에 사는 탓에 값 비싼 총기를 구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총기를 포기하지 않고 직접 만들기에 이르는 데 그것이 바로 사제총이다. 

 총열밑에 연결된 단단한 플라스틱 물통에 그 속에 두가지 액체를 부은 뒤 잠근 다음 수차례 흔들면 두 액체가 반응하여 기화, 가연성 가스를 만들어낸다. 

 총열은 파이프따위로 만들며 총알은 쇠공과 같은 조악한 물건을 이용한다. 여기에 라이터에서 쓰이는 부스터를 방아쇠에 연결하여 당기는 순간 발화되는 원리의 총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파괴력만은 쉽게 볼 수준이 아니다. 시범으로 보여준 코코넛 사격에서는 단단하기로 유명한 코코넛 껍질이 앞뒤로 깨끗하게 관통될 정도였으며 살상력에 대해서 는 이것이 인간 두부에맞는다면 즉사를 면키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위험한 물건을 제작한 것이 17세의 소년이라는 점이다. 소년은 자신이 만든 총에 대해 이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개조한 총들과 석궁 등 각종 무기들을 많이 지니고 있음을 자랑스레 여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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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의 한 가정에 비치된 총기의 모습이다. 방아쇠 부분에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적힌 이 총기의 주인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방범과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구매했다며 총기의 가격은 한화 약 50여만원으로 불법으로 개조된 총기라고 밝혔다./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 한국에서 알려주지않는 필리핀의 진실

 현재 한국의 관광 책자, 여행안내 사이트 등 필리핀을 소개하는 매체에서는 필리핀의 치안 불안에 대해 과한 우려라는 표현으로 횡행하는 총기 문제를 일단락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본인의 부주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 필리핀은 그렇게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총기 허가를 대신 해주는 불법 알선업체가 난립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한달에 만 2명이 총상으로 사망하고 28명이 유탄에 의한 부상을 입었다. 

 일반인부터 접근하기 어려운 기업인, 정치인 등 살해 대상에 따라 가격을 달리받는 전문적인 살인 청부업자들이  공공연하게 영업하고 있는가하면 또한 경찰과 결탁하여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셋업 범죄'가 기승이다.

 특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살해 및 금품 요구 납 치는 매년 5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총기를 이용한 강력사건이 전국적으로 연간 10000건 이상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필리핀 경찰의 무미건조한 대응으로 인해 실제 발생건수  대비 검거율은 상당히 낮다.

 매일 아침마다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 상황이 뉴스를 장식하고 자국민조차도 접근하기 두려운 지역이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다. 

 게다가 마닐라, 다바오와 같은 도시 지역을 제외하곤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주민들이 상당수이며 범죄를 일으켜도 산 속이나 섬으로 숨어버리면 그만인 곳이다. 

 이러한 필리핀일진대 필리핀의 몇 안되는 도시에서의 겪었던 몇 안되는  경험을 침소봉대하여 필리핀은 안전하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위험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되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