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필리핀 생활에 참회록 15
내가 깨끗하거나 좋은 사람이였다는것도 아니다.
이 제목이 참회록인것은 나 역시 필리핀에서 수많은 잘못과 실수,후회 되는일, 의도 됬던 의도하지않았던간에 상처를 주고 받았다.
그 후회와 반성이 필고에 글을 쓰는 동기일수있다.
그러나 난 나름대로 필리핀에서 내 이름뒤에 사기꾼이니 도독놈이니 하는 단어가
붙어오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고 노력했다.
상식선에서 살아보려고 했다.
그 하나가 그나마 위안이고 , 쉽지 않은 필리핀생활에서 나만의 정당성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어본적은없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사생활은 학처럼 깨끗하게 살지못 하고,
술집도 가고 한국여자를 사귄적은있지만, 비지니스나 또는 개인적으로 내 이익만을 위해서
다른이의 피해를 주지않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인생의전부가 아니기에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되 스스로가 책망 될때가 많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 너무 부자 되는거 아니에요"
헬리가 기분이 들떠서 나에게 크지 않지만 뚜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수입한 물량보다는 딜러들이 원하는 수량더 많아 수량 분배에 행복한 고민을 했다.
화교는 우리랑 사업을 보는 눈이 다르다.
손님이 찾고 현재 이슈가 되는 물건을 서로 더 확보하려고 난리지만,
가능성만 있는 신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통망과 자금을 가지고있기에 가능성있는제품이 확실하게 팔릴때 까지 기다렸다가,
잘팔리기 시작할때
자금을 투입해서 판매하면 재고 부담이 없이 {화교들이 제일 중요시 여기는것중 하나가 제품의 빠른
회전률이다.제품에 자금이 묵히는것을 싫어한다.마진보다는 회전률을 더 중요시한다.}판매할수
있다.
얼마후 우리는 처음으로 40" 콘테이너로 주문했다.
이때부터는 한국전자사업도 격변기라 이전까지는 한국 생산하던 제품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우리 기계도 첫 중국생산이라 현대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중국 심천에 가게됬다.
누구의 초청으로 공항에서부터 환대받는데 익숙치 안는 난,
약간은 불편했지만 맘만은 뿌듯했다.
그때부터 여러가지이유로 { 앰프와 마이크, 스피커등을 다른 중국에 진출해있는 한국회사에서 구매르
시작했다.} 여러 회사랑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몇번을 이렇게 왕래한후 어느날 현대 중국 생산공장 사장님이 날불러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난 당연히 내가 가장좋아하는 베이징 덕을 자주 사주시고 하시는 남사장님을 좋아한다.
약간의 소문은 있지만 정말 비지니스맨이고 사업운영을 잘해 교포이지만 자수성가 한분이다.
식사를 하며 " 0사장! 현대에서만 물건을 다 사지 말고 우리도 필리핀에 수출한는 똑같은 제품이
중국에 팔고있으니 현대 주문량의 약30-40%정도는 우리 물건도같지 실지?"
하며 가격을 현대의 70%수준만 받겠다고 했다.
혹 하는 제안이다.
나 에게는 엄청난 금액이다
난 돈에 양심을 팔았다.
날 진심으로 도와준 임부장님이 생각나지않았다.
비지니스는 현실적이야 한다는 자위를하며, 그 돈으로 난 더 잘먹고 더 잘살았다.
지금도 난 그때의 날 용서 할수없다.
AI answer
Lorem ipsum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sicing elit. Aliquid pariatur, ipsum similique veniam. Quisquam, quod. Quisquam, quod. Quisquam, quod. Quisquam, quod. Quisquam, quod. Quisquam, quod. and the drug lord.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