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입출국, 질 낮은 현지 수사력, 뇌물 삼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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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시내의 전경./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경찰청은 2014년 현재 집계된 국외 도피 사범 3132명 중 394명이 필리핀으로 도피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는 총 국외 도피 사범 중 12.5%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며 미국, 중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다. 

경찰청은 이 점에 대해 7000여개에 달하는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라는 점이 범죄자들에게 당국의 수사망을 빠져나가기 쉽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필리핀은 범죄자가 살기 좋다는 인식에서 그치지 않고 확신을 주는 나라다.

무비자 입출국이 가능해 기소 중지 상태인 용의자일지라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으며 필리핀으로 입국 후 7000여개의 섬 중에 아무 곳에나 마음먹고 숨는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또한 경찰은 극도의 부패로 수사 환경이 미흡한 탓에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뿐더러 이미 경찰 자체가 타락해 체포되더라도 뒷돈을 주면 그 자리에서 풀려날 수도 있는 나라다. 

한국인 교민 15만명, 해마다 한국인 관광객만 100만명을 맞는 나라 필리핀,.그 필리핀 속에는 수많은 한인 범죄자들이 활개치고 있다.

 

◆ 한국 범죄자들의 즐겨찾기 "필리핀"

 

필리핀에는 15만명의 교민이 상시 거주하며 매년 100만명에 이르는 한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클락, 앙헬레스 등 시내 곳곳에는 한인 타운도 있어 손쉽게 한인을 만날 수 있다. 국외 도피 사범들은 이점을 이용해 한인들에게 쉽게 접근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지 경찰과 공조한 뒤 범행대상을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는 셋업 범죄, 유학생이나 관광객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 납치 비즈니스가 그것이다.

지난 2012년 12월 클락의 한 호텔에서 한국인 이모(43)씨가 폭발물 소지를 빌미로 경찰서에 잡혀 간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필리핀에 와서 알게 된 신 모씨 등 한국인 일당 3명이 금품 획득을 목적으로 사전에 경찰들과 모의하여 일으킨 셋업 범죄임이 밝혀졌다. 

신 씨 일당이 범행 전부터 필리핀 실정에 무지한 이 씨를 범죄 대상으로 삼아 계획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체포된 살인범 최세용 역시 2007년 안양에서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하고 2억원가량을 빼앗은 뒤 필리핀으로 도주한 케이스다. 

최세용은 도주 후에도 그치지 않고 필리핀에서 납치, 강도, 살인을 저질렀는데 주로 혼자 여행 온 한국인 관광객을 목표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건은 11건이지만 최씨 일당의 은신처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30여개의 가방이 발견됐음을 미뤄 볼 때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지난 2008년 인터폴 1급 범죄자로 수배대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을 이용, 필리핀으로 유유히 도피했다는 점이다. 

이후 당시의 필리핀 이민국 블랙리스트에 최세용의 이름은 올라와 있지 않았음이 밝혀져 필리핀으로의 범죄자 도피가 수월함이 드러났다.

한국의 폭력조직도 필리핀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국내의 폭력조직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필리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력확장에 한계를 느낀 국내 폭력조직들이 해외로 나가는 추세에 필리핀은 단연코 첫번째로 꼽힌다. 

한국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 뿐더러 경찰을 매수할 수 있어 불법 행위를 통한 이권 사업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0년, 국내에서 검거된 경기 의정부지역 폭력조직 ‘연합 세븐파’는 필리핀으로의 진출을 위해 호텔과 식당 등을 인수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카티의 한 교민은 “95년도부터 조직폭력배들이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지금 마카티만 해도 한국식 가라오케인 KTV, 사설 도박장 등 일부 업소들이 한국 조폭들의 영업장”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필리핀에 진출한 폭력조직들은 대부분 사설 도박장을 개설한다. 이미 매수해 둔 경찰로 단속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속으로 사채업까지 겸업해 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필고’ 등의 필리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폭력조직들이 근처의 한인 상인이나 사업가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상납금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시물도 올라오고 있다. 

필리핀 한인사회가 한국 폭력조직들의 "무법천지"로 타락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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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도시 외곽지역의 모습./아시아뉴스통신=김동균 기자


◆ 그들은 왜 필리핀을 택하나

최근 들어 필리핀에서 한인 소행의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한국 범죄자들이 필리핀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필리핀을 주요 도피처로 찾는 것인가. 먼저 쉬운 입출국과 질 낮은 수사력, 뇌물이 삼박자를 맞춰 범죄자들에게 편의에 가까운 자유도를 제공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범죄를 일으키더라도 무비자 입출국이 가능한 탓에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넘어와 불법체류하고 있는 범죄자들이 대부분이다. 

현지에서의 수사 역시 필리핀 내의 CCTV, 공개 수배, 차량 조회 등 기반 시스템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불법체류 상태인 범죄자들의 신원파악도 안 되는 상황이라 한인 범죄자들의 수배와 검거는 운에 맡길뿐 적극적인 노력은 미약하다.

또한 불법체류를 하더라도 현지 경찰들에게 뇌물만 제공하면 오히려 신변보호까지 받을 수 있고 도피자들에 대한 국제형사사법공조 역시 이미 경찰 자체가 돈을 내주는 범죄자들의 편이다. 

이러한 필리핀 사회는 범죄자들에게는 더 없이 안전한 곳이 될 수 밖에 없다.

필리핀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영어가 통용되는 덕분에 비교적 의사소통이 쉽고 한인 사회권이 형성될 정도로 한인들이 많아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다는 점 역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범죄 도피자들은 필리핀에서도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외 도피 사범 현황을 발표한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과자들이 필리핀에서 사업자로 위장해 정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들이 필리핀 내부에서 다시 문제를 일으켜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 그럼에도 검거가 쉽지 않아.

 

한국인 범죄자들이 한인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검거는 쉽지 않다. 법 자체가 느슨해 돈으로 여권을 위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신분을 위조해 기존의 범죄 전력을 은폐하는데 필리핀에서 이를 일일이 색출해내기란 힘들다.

게다가 현재 한국인 관련 사건을 담당하기 위해 필리핀에 설치된 코리안 데스크는 인원이 1명에 불과해 한 해 10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 여행객을 모두 조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코리안 데스크에 단독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아 필리핀 경찰이 직접 요청하거나 필리핀 경찰이 한국 경찰의 수사요청에 동의하는 건에 대해서만 공조 수사 형태로 시작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아시아뉴스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