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생기고 여러가지 기능이 늘어나면서

그 활용성이 참으로 다양해졌다.

당사자간은 물론 이제는 광고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해서

딩동~ 해도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지를 않게 된다.

 

운전중에 띵똥 거리는 메세지를 보지않고 그냥

무시한채로 손님을 만났다.

커피숖에서 이런애기 저런애기 하든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딸네미다..

평소에 전화를 잘 하지않든 딸이라 퉁명스럽게 받는다.

"무슨일이야?"

"아빠 석이 (아들이름) 메세지 봤어?"

아차...그 운전중에 띵똥 거리든 그거...

"아니 바빠서 아직못봤어."

갑자기 딸아이가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석이 취직 되었데.... (그냥 엉엉~울어버린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쨘  해진다.

알았다며 급하게 전화끊고 메세지 검색들어갔다.

"아빠...나 취직 되었어.." 

단한줄...

그단한줄의 짧은 메세지가 내가 세상에 태어난후

받아본 어떠한 좋은 소식보다도 더

고맙고 감동적일수가 있겠는가..?

 더 이상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세상에 감사함을 전해줄수가 있을까..

그감동을 조금이나마 늦게 느낀 내행동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전화기한테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였다.

화면을 바라보고있었다..

눈가에 촉촉히 젖어드는건  무었이였을까..?

아들..

내아들...

 

대학을 졸업하고  이력서를 내며 취업을 준비한지 어연 이년여..

보통의 회사들이 본사는 전부 서울에 있어 2차 혹은 3차 면접을 꼭

서울까지  가서 치르게한다.

처음엔 희망에 부풀어 KTX 타고 올라갔으나..

한번..그리고 두번 같은 낙방의 쓰라림을 자꾸 겪다보니

보는 내마음이 더 상한다.

보고있는 부모마음이 이렇게 쓰릴진데 본인이야 오죽할까..

안되겠다 싶어 달래주기 나선다.

" 석아...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온나 같이갈 친구가 없으면 혼자라도 가라..

 아빠가 돈주께...어디든 가라...일본이든 미국이든.."

대꾸도 않으며 쓸쓸히 자기방문 닫아거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아들의 아픔과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렇게 방안에틀어박혀 이년여를 공부만 해댔었다.

365일 어느시간이나 내가 집에 들어가면 마치 집지키는 유령처럼

파자마 바람으로 인사를 했었다.

그런 아들이 취업을 했단다.

것도 신이내린 직장이란데를...

 

그후로 나는 가끔 인간의 운명 혹은 미래는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는 그 누구도 알수없고

예측 불가능 하다는것을 깊이 생각해본적이있다.

 

이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 불의의 사고로 한쪽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그때 입원실의 아이침대 앞에서 가슴깊은데서 우러 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흘렸었다.

그후로,

나는 울어보지못했으며

감히 눈물이 나지를 않았었다. 더이상의 큰 아픔이 있을수 없기에..

남들이 그럣다.

부산에서 학교나와서 그회사를 들어갈수가 있냐고..맞는말이다.

아들의 스펙으로는 열번을 죽었다 깨도 합격 소리 들을수없다 나도 잘안다.

"사회적 균등기회" 를 외친 대한민국의 정책에 의거.

6급 장애인 아들은 그때의 상처를 보상받은것이다.

운명은 어떤 결정으로 어떤 미래를 보장받을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

벌써 3년전의 일이다.

 

오늘의 불행이 언젠가는 더큰 행운으로 닥아올수가 있음을 명심하고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