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까자고 올리는 글인데,

처음 연재한 글을 너무 까서 인제 깔만한 소재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몇 편 더 써 볼 요량입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주꾸미 골목이 있습니다. 매운 주꾸미 볶음을 하는 가게가 하나 둘 씩 생겨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주꾸미골목이 되었네요. 그 주꾸미 골목 한 켠에 ‘해중천 반점’이라는 중국집이 있는데 중국 화교 분이 주인인 듯한 식당입니다. 약간은 작은 평수의 가게에 들어가면 어수선 하게 늘어놓은 잡다한 소품들과 여기저기 붙어있던 간자체 한자 차림표 등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죠. 잘은 몰라도 분명히 중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와서 왁자지껄 떠들며 술 한잔하고, 중국말 한국말 섞어 쓰시는 걸 보니 조선족들도 자주 오는 식당이었죠. 분위기가 마치, 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자장면 한 그릇이 500원으로 기억되던 시절에 팔각형의 갈색 잔에 엽차를 내고, 쏼라쏼라 알 수 없는 말로 주방에 주문을 넣으면 어깨가 넓은 주방장 아저씨가 주 방안에서 손으로 직접 면을 뽑아 자장면을 만들던 어릴 적 우리 동네 중국집을 떠올리게 합니다.

 

A4용지에 요리 사진을 풀칠해 붙이고 그 밑에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는 어색한 한글로 요리이름을 꾹꾹 눌러쓰고 그 종이들을 코팅해서 묶어놓은 것이 거기 메뉴판이었습니다. 물론 그 메뉴판에는 중국집이라면 으레 있어야할 메뉴들이 있었습니다. 자장, 짬뽕, 탕수육, 양장피...... 그리고 그렇지 않은 메뉴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돼지 간 볶음, 갈치튀김, 고보육... 등등. 당시 모험 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저는 그 중에 시켜 본 음식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는 곳도 직장도 그 근처였고 해삼탕이나 잡탕처럼 녹말이 들어간 걸죽한 요리를 좋아하던 저에게 중국 요리는 참 좋은 안주 거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칭따오 맥주를 처음 마셔본 것도 그곳입니다. 지금이야 웬만한 동네에 가면 중국식 양꼬치집이 한 둘 씩은 있고 청도 맥주도 많이 팔고 있지만, 제 기억으로 당시는 아직 한국에 양꼬치가 막 유행하기 시작한 때여서 칭따오 맥주가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식당은 튀김요리와 볶음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튀김요리는 바삭하게, 볶음 요리는 중국 음식의 불맛을 정말 잘 살려냈죠. 불에 볶지 않고 내는 재료와 볶은 재료를 함께 내는 양장피는 제가 먹어본 양장피 중에 최고였습니다. 서비스로 주시는 군만두도 이것을 서비스로 받아먹어도 되나 할 정도로 맛있었고요.

 

중국요리는 불의 요리라는 말이 있지요. 불맛이 중식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높은 화력에서 볶아내는 요리의 불맛은 일품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화력을 내기 위해 오래 전부터 석탄을 이용했습니다.

인구가 1억이 넘었을 것으로 알려진 송대에 그 수도인 임안에는 적어도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백성들이 모여 살았겠죠. 이런 이유로 땔 나무가 부족해진 송나라에서는 연료로 석탄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여건이 갖추어졌다면 어쩌면 송나라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석탄을 이용해 중화 요리를 하는 것은 꽤 최근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호텔 중식당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중국집은 석탄 화덕에서 자장을 볶고 탕수육을 튀겼습니다. 석유를 잠시 사용하다 80년대부터는 가스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불의 예술이라 불리는 중식요리에서 불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말하자니 입이 아플지경입니다. 설탕은 몇 그램, 식초는 몇 스푼, 이런 식으로 식재료는 계량화해 기록할 수 있지만 화력의 조절은 그게 쉽지 않은가봅니다. 오랜 경험과 경력에 의해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이 꼭 맞는 경우죠.

 

아직도 ‘전국 몇 대 짬뽕집 어디를 다녀오다’ 이런 타이틀을 내건 블로그 포스팅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대구의 진흥반점, 공주 동해원, 군산 복성르, 송탄, 영빈루 등등이 그 곳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네요. 저도 전국에 산재한 모든 곳에 다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서울 살면서 서울 쪽에 있다는 짬뽕집들은 다 다녀봤습니다. 맛있는 곳도 있었고 유명세에 비해 맛이 없는 곳도 있었지요.

 

이쯤에서 저는 궁금증을 하나 가져봅니다.

전국 몇 대 짬뽕은 있는데, 왜 전국 몇 대 짜장은 없을까?하고요.

돼지고기와 감자 양파 등등을 볶다가 춘장을 넣고 볶아주면 자장이 됩니다. ‘장을 볶다’라는 한자어 灼醬이란 말에서 ‘자장’이 왔습니다. 중국말로 하면 짜장이라네요. 지금이야 양파가 흔해서 자장에 당연히 양파를 쓰지만 예전에는 양파 대신에 파를 썼다고 합니다. 또한 자장면에 딸려나오는 반찬으로 춘장과 양파가 있는데 예전에는 이 반찬도 양파가 아니라 파였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자장면을 만드는 소스인 춘장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가 됬다고 합니다. 파와 함께 내던 첨면장을 파 총(蔥)을 써서 총장, 이래 부르다 춘장이 되었다는 설이죠. 이름이야 어쨌든 우리나라 중국집 사장님들이 선호하시는 춘장, 첨면장의 99퍼센트는 단일 브랜드, ‘사자표 춘장’입니다. 동일한 공장의 재료로 만드는 요리에 고기로, 야채로, 해물로, 변화를 준다고 해봐야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이겠죠. 바꾸어 말하면 자장면은 웬만한 중국집에 가도 평타는 친다는 말이죠. 자장면이 정말 맛이 없는 중국집이라면 안가시는 게 좋을 듯 하고요.

 

이에 비해 짬뽕을 만드는 방법은 채소와 해물 등을 팬에 볶다가 두반장이나 고춧가루를 넣고 더 볶습니다. 그리고 육수를 부어 끓이면 됩니다. 넣는 재료에 따라, 소스에 따라, 육수에 따라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가능합니다. 짬뽕에도 두반장이라는 콩으로 만든 중국 장을 넣기도 하지만 모든 재료를 첨면장으로 볶아주는 자장과 달리 두반장은 짬뽕에 넣는 양이 적고 또한 경우에 따라 아예 넣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은 미미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짬뽕은 자장에 비해 개성있는 변화가 가능해서 우열을 따지기 힘든 가지각색의 짬뽕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지만 자장의 경우는 ‘전국 5대 자장’이라 불리는 곳도 없고, 짬뽕전문점처럼 자장전문점도 따로 없나 봅니다.

 

제가 먹어본 짬뽕 중에 제일 맛났던 짬뽕은 대전 유천동에 있는 허름한 동네 중국집 짬뽕입니다. 사장님이 무슨 배짱이신지 주말엔 아예 가게 문을 여시지도 않고, 오후 5시 넘어가면 재료가 떨어져 오늘은 손님을 못 받는다 하여 발걸음을 돌린 적도 몇 번 있었고요. 이 집은 주문이 들어오면 면을 직접뽑는 다는 것입니다. 가게에 제면기가 딱 하고 버티고 있습니다. 아쉽게 수타를 하시지는 않지만 보통 짬뽕의 면발보다 가늘어 소면의 느낌이 나는 면의 식감이 부드럽고 고소한 짬뽕 국물과 잘 어울립니다. 짬뽕은 해물로만 만든 음식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짬뽕의 베이스를 이루는 육수는 소나 돼지 또는 닭육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징어나 홍합 등의 해물로만 짬뽕을 만들어낸다면 칼칼한 짬뽕, 비판적 견지에서 말한다면 불친절하고 날카로운 느낌의 짬뽕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부드럽고 고소한 국물의 짬뽕을 좋아합니다. 이런 고소한 짬뽕을 만들기 위해서 지방 성분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중국집을 지나다 보면 쇼트닝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깡통이 중국집 앞이나 뒷문간에 쌓여있는 것을 보신 분이 계실겁니다. 쇼트닝은 음식에 쓰이는 반고체 상태의 유지제품입니다. 지방질 100프로 목화씨나 쇠기름 콩기름 등을 섞어 굳힌 겁니다. 이 쇼트닝으로 볶아낸 짬뽕은 참 고소하고 부드럽습니다. 물론, 건강에는 안 좋습니다. 웰빙이라는 화두가 중요한 요즘 시대에 지방 100프로 쇼트닝이 맛나다고 말씀드리가 부끄럽지만 몸에 좋은 음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쇼트닝을 먹고 생기는 부작용을 잘 따져본 결과 스트레스가 더 안 좋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그냥 한 달에 한 두 번은 몸에 안 좋아도 맛난 것 먹으렵니다.

 

앙헬레스에 ‘KIMG가네’ 메뉴중엔 “중화”요리 뿐만 아니라 ‘중국’요리 같은 음식도 메뉴에 있습니다. 인테리어는 웬만한 동네 중국집을 넘어선 호텔 중식당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개인 룸도 있어 손님들을 모시고 가거나, 연애질에 바쁘신 분들을 피해 내실에서 식구들과 식사하기에도 좋습니다. 밑반찬(중국집 밑반찬이야 거기서 거지지만요)같은 테이블 세팅도 깔끔하고요. 지인들과 한 상 거하게 먹고 나면 한국사장님이 약간의 할인해주시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여기 메뉴 중에 고기짬뽕이라고 있습니다. 마닐라에서 먹어본 중국집 짬뽕은 웰빙 시대에 맞는 칼칼한 짬뽕이었지만 이곳의 고기짬뽕은 쇼트닝에 익숙한 입맛에 맞는 부드럽고 고소한 국물 맛이 좋았었죠. 이곳 주방에서 정말로 쇼트닝을 쓴다 아니다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레시피야 어찌됐든 제 입맛에 맞는 맛난 짬뽕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마지막으로 프랜드쉽 쪽 중국집에 가본 게 작년 9월 달이군요. 필리핀에서 산다는 것이 누구처럼 놀러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생활인에 입장에서 한국 돈으로 한 그릇에 6000원이 넘는 자장면을 먹으러 가려하면 이리저리 좀 재게 됩니다.

사실 자장이나 카레, 하이라이스. 파우더만 다르지 들어가는 고기 야채는 거지반 비슷하잖습니까? 냉장고에 자리차지하는 야채들을 깍둑 썰고, 고기는 있으면 넣고 뚝딱뚝딱 카레를 만들 듯, 하이라이스를 만들 듯, 자장을 만듭니다. 한국 수퍼에 가서 면도 사다가 삶아서 만들어 둔 자장을 한 국자 올려내면 중국집에서 먹는 자장면에 버금갈 정도의 맛이 납니다. 그릇당 재료비를 따지니 자장면값의 반의 반도 안되는 것 같네요. 자장은 이렇게 쉬운데, 짬뽕은 쉽지가 않습니다. 최근 새로 나왔다는 프리미엄 짬뽕라면들도 짬뽕라면이지 짬뽕이라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짬뽕이 생각 날 때면 어쩔 수 없이 발길을 프랜드쉽으로 발길을 돌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