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마르코스 일가 '가문의 부활' 노려…"젊은 세대에 피플파워 각인시켜야"

"'피플파워'(민중의 힘) 혁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젊은이들에게 평화적인 민중 봉기의 교훈과 가치를 잊지 않게 가르쳐야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필리핀 '피플파워' 혁명이 이번 주 30주년을 맞았다.

1986년 2월 22∼25일 필리핀 국민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부정 선거와 부패로 얼룩진 마르코스 대통령을 21년간 지킨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의 어머니인 코라손 아키노가 마르코스의 뒤를 이어 필리핀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 국가 전반의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영화배우 출신으로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2001년 뇌물 수수 혐의로 중도 퇴진하고 후임자인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은 2013년 공공기금 사취 혐의로 기소되는 등 부패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아키노 현 대통령은 2010년 취임 이후 부정부패 척결, 경제 성장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해 2014년 6.1%, 2015년 5.8%로 아시아에서 비교적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의 절반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약 25%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등 사회 곳곳의 그늘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필리핀 피플파워 기념비(EPA=연합뉴스)
필리핀 피플파워 기념비(EPA=연합뉴스)

 

마르코스 독재 유산의 청산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부정축재한 재산은 100억 달러(12조3천300억 원)로 추정되지만 환수 금액은 40% 정도에 불과하다.

필리핀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는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가 주로 소장했던 보석의 경매를 추진하고 있다. 마르코스 일가의 보석 컬렉션은 760여 점으로 평가액이 최소 10억 페소(259억 원)에 이른다.

필리핀에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고 그의 가족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정치적 기반을 넓히며 '가문의 부활'에 나서 민주화의 여정이 순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는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데 이어 오는 5월 대통령, 국회의원, 주지사 선거 등과 함께 치러지는 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정치 운명을 국민의 손에 맡기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마르코스 주니어는 차차기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멜다는 하원 의원으로, 딸 이미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로 각각 활동하며 연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절 인권침해 피해자와 실종자 가족들은 독재의 부활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마르코스 일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2015년 2월 25일 열린 필리핀 피플파워 기념행사(EPA=연합뉴스 자료사진)
2015년 2월 25일 열린 필리핀 피플파워 기념행사(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 피플파워의 교훈을 잊지 말고 후대에 각인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1986년 피플파워는 단지 시작으로, 여전히 진행형으로 봐야 한다"며 "젊은 세대에게 피플파워의 가치를 알리고 모든 국민이 5월 선거에서 그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드윈 라시에르다 대통령궁 대변인은 부통령을 꿈꾸는 마르코스 주니어를 겨냥, "독재의 유령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독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은이들에게 현재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도록 마르코스 정권의 계엄 시절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것을 촉구했다.

필리핀은 2월 25일을 특별국경일로 정해 피플파워를 기념하고 있다. 올해는 마르코스 독재 치하의 피해와 민중 봉기를 소개하는 피플파워 체험 박물관을 문 열 예정이다.

피플파워는 1987년 한국, 1988년 미얀마, 1989년 중국 톈안먼 시위 등 아시아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